[논평]
'보호' 빠진 비정규직 종합대책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관련 논평
오늘(29일) 오후 2시,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하 대책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안은 제목부터 ‘보호’가 빠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다. 소문난 잔치에 설익은 음식과 이미 내놓은 음식, 상한 음식이 뒤섞인 격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뜬금없이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 제시된 것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목적으로 비정규직 대책을 활용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번 비정규직 대책안은 옥을 얻기 위해 벽돌을 던진다는 포전인옥(抛塼引玉)의 계책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제시한 대책 중 상당수는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예정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 이미 시행중이거나 시행을 예정 중에 있는 대책들이 대부분
이번 대책안은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예정에 있는 정책, 정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담겨 있다. △최저임금 인상 및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 △체불노동자 생계보호, △중소·중견기업 기간제노동자 정규직 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 정규직 되려고 2년 기다리다 이제는 4년, 정규직 전환 실패하면 8년 걸려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는 이번 대책안의 핵심은 △사용기간(2년→4년, 35세 이상) 연장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35세 이상 노동자는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까지 늘리도록 했다. 아울러 계약해지 시 이직수당 및 퇴직급여(3개월 이상 근무자)를 지급토록 했다. 그런데 35세 이상에게만 이 제도를 적용하려는 의도나 고용효과 등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 왜 35세인가? 정부는 35세 이상이면 대부분 가정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통계청의 ‘생애주기별 주요 특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1976∼1980년 출생자의 미혼율은 남성 50.2%(여성의 미혼율은 29.1%)에 달한다. 2년짜리 계약을 견뎌내었던 것은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기간을 2년 더 늘릴 경우, 4년 근무 후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기에 오히려 안정된 직장으로 진입하지 못할 경우 35세 이상 노동자의 “미혼빈곤”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부 개선은 됐지만 보완이 필요한 대책도 있다.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갱신 횟수 제한(2년 내 3회), △차별시정 신청대리권을 노조에도 부여하고, △생명·안전 관련 핵심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도록 했다.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갱신 횟수를 제한한 방향은 타당하나 신규 노동자가 아닌 기존의 계약기간을 종전보다 더 짧게 할 경우에 대한 별도의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차별시정 신청대리권을 노조에게 부여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반드시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도 신청대리권을 갖는지 등 신청대리권의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 고령자,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맞춤형 대책 없어
정부 대책안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중소기업, 여성·고령층에 집중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준)고령자 및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특화된 대책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및 고용조건 개선, 최근 경비 노동자들의 문제와 같이 (준)고령층의 고용안정·처우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이번 대책에서 빠져 있다. 다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대책 및 65세 이상 용역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는 수준이 대책의 전부이다. 오히려 파견대상을 확대해 고령층 재취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역발상’은 (준)고령자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방치하다 못해 정규 고용시장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의미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 용역·파견·사내하도급 등 간접고용 문제는 기존 정책 재활용 수준도 안 돼
이번 대책안에서 용역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새로운 부분은 용역업체 변경 시 65세 노동자에 대한 실업급여 적용이 고작 대책의 전부이다. 지난 2012년 1월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제정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의 이행여부에 맞춰 보완할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다. 공공부문 대책으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준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행 지도를 강화하겠다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특히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분의 경우에도 시중노임단가 적용, 업체변경에 따른 고용승계 유도 등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파견의 경우, 정부는 고령자 및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는 파견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55세 고령자, 관리직·전문직에 대해서는 파견을 풀겠다는 것인데 ‘인력난’이 심한 업종의 파견 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오히려 파견대상 업무의 세세한 분류까지 확대할 경우, 그 여파는 고령자, 관리직·전문직에 한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직접고용’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간접고용 시장으로 내모는 대책이다.
사내하도급의 경우, 파견·도급 판단 기준 명확화나 기존 가이드라인 보완에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산업안전에 있어 도급인가제나 원청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책이 제시되었다. 사내하도급 문제는 대기업이 고용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으로 다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현대자동차 불법파견부터 시작해 완성차업계, 조선업 등 불법파견 문제가 현재진행중이다. 기준의 명확화보다 시급한 것은 대기업의 불법파견에 대한 철저한 감독행정과 엄중한 법적 조치다. 그러나 정부 대책안은 사내하도급 문제에 대해 “자율개선 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내하도급 문제나 불법파견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 특수고용직 사회보험 적용, 당연가입으로 해결해야
경제법적 보호 보다 노동법 적용에 대한 전향적 대책 필요해
이번 대책안에는 특수고용직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수고용직에 대해서는 산재보험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을 여당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안은 오히려 이 법안을 후퇴시키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
또 직종별 표준계약서 등 특수고용직의 경제법상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계약위반에 따른 민사상 책임만을 부여하기 때문에 갑을관계에 있는 특수고용직에게는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방안을 검토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경제법적 보호를 얘기하는 아이러니가 이번 대책안의 본질이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여전히 실효성 의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평가제도 개선 등 현실적 대책이 필요해
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의 단계적 축소 및 신규 활용을 제한하는 과거 대책의 재탕이다. 2015년까지 상시·지속 업무에 대해 6만 5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지방자치단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해지가 되거나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상태에 놓여 있다. 아울러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행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 입법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강구되어 있지 않다.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 사용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관들의 자율성이 아니라, 의무를 강제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 처우개선 노력 등을 경영평가 지표에 실효성 있게 반영해야 한다. 최근 공공기관인 산업기술시험원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험원은 재정자립도가 향상되어 비정규직의 인건비를 인상하고 복지를 개선했지만 오히려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비정규직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면 기관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처우개선에 있어서도 ‘시중노임단가’ 적용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는 수준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시중노임단가 적용에 대해서도 적용여부에 따라 미적용시 경영평가 감점요인으로 경영평가 항목을 개선해야 한다.
○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목적인가, 노동시장 활력제고가 목적인가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포함되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부분도 상당수 발견된다. 정부 대책안 중 일부 대책안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인지,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시장 개혁안인지 불분명하다. 이번 대책안의 부제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인데 정책 방향이 같은 방향인지 의문스럽다.
노동시장 단축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임금체계 개편 및 통상임금 범위 명확화, 해고기준 명확화, 취업규칙 변경기준 등이 비정규직 대책안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나아가 노동시장에 활력을 주는 정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국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이 논의는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로 막을 내렸지만, 이 문제는 비정규직 대책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주40시간제 도입만 해도 1998년 논의를 시작해 2000년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근로시간단축 관련 기본원칙에 합의한 이후로도 100여 차례의 회의를 거친 바 있다. 2003년 법제화되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통상임금의 경우도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의제다.
특히 통상해고의 기준 도입은 매년 늘어나는 부당해고 구제신청건수를 근거해 볼 때, 기준이 불분명해서가 아니라 노동시장이 불안정하고 기업의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이직 경험자는 263만 명(취업자의 10.8%)이고, 이 중 비자발적 이직자가 2012년 61만 9천 명이었던 것에 비해 2013년에는 10만 명이 늘어난 71만 8천 명이었다. 더구나 소득 하위 20%(소득 1분위)인 저소득층의 정리해고가 1분위 이직자의 이직 사유 중 정리해고가 2012년 2만 6천 명에서 2013년엔 6만 5천 명으로 늘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볼 때, 이러한 대책들을 비정규직 대책 속에 포함시킨 것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첨부 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