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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난 작가 故최고은씨를 기억하실 겁니다. 지병과 생활고로 힘들어 하던 최고은씨는 이웃에게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겠느냐, 번번히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메모를 남겼으나 이를 전해 주려한 이웃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에도 많은 예술인 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올해 초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송파 세모녀 사건의 작은 딸도 데뷔한 만화가였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가 만화를 그려 받을 수 있는 원고료는 1년에 불과 10만원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배역을 찾지 못해 인테리어 현장에서 생계를 유지해왔던 배우 故우봉식씨도 지난 3월, 안타까운 선택을 택한 바 있습니다.
생활고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참담한 사유로 매년 소중한 문화예술인 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것 입니다. 이분들의 문화예술·창작 활동이 살아생전에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거나, 최소한 적시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었다면 먼저 가신 분 들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이 지금보다는 더 풍성해 졌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일곱번째 <국민 쪽지예산>이 바로 예술인 복지법 제정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 중인 <예술인 창작 안전망 구축 사업> 예산의 증액 입니다.
2012년 문화부에서 실시한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6.5%의 예술인들은 창작활동관련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조사대상의 26.2%는 창작활동관련 수입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시 조사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에 가장 바랬던 것은 경제적 지원(34.7%)입니다. 현재 예술인들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 사업예산은 올해(200억 원)에 비해 불과 2.6%가 증액된 205억 원 입니다. 정부의 내년 전체 지출규모 증가율(5.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7.1%)과 비교하면 1/3 수준에 불과합니다.
내용은 더 심각합니다.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사업 중 예술인 긴급복지지원 사업은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매달 100만원의 긴급복지지원금을 최소 3개월에서 최대 8개월간 지원하는 것으로 창작안전망 구축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사업에 내년에 책정된 사업예산은 올해보다 30억 원 늘어난 110억 원입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1인당 3백 만 원을 3,500명에게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산도 대상도 늘어난 셈인데, 정작 1인당 지원 규모는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올해 긴급복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예술인은 1,814명입니다. 그런데, 1인당 평균 지원기간이 6.4개월입니다. 1달에 100만원씩 지원을 받은 것이므로, 금액으로는 1인당 640만원(100만원*6.4개월)씩 받은 셈입니다. 따라서 1인당 300만원씩 지원할 것을 전제로 책정된 올해 예산은 비현실적입니다. 실제 올해 지원 대상 중에 300만원을 지원받은 전체의 1.9%에 불과합니다.
정부 예산안대로라면, 긴급복지사업 예산 전체 규모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예술인 개개인이 받는 지원 규모는 크게 줄어드는 셈입니다. 따라서 내년에 3,5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올해 지원 수준(640만원)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224억 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이렇게 긴급복지사업 예산을 늘리기 위해 전체 창작안전망 구축 사업예산을 늘린 것이 아니라 사업 내 조정을 했습니다. 예술인의 기업·지역 파견 및 예술인 자녀 시간제 보육 등을 지원하는 예산이 17.5억 원, 사회보험 가입 지원 예산이 5억 원 감액 된 것인데,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괸 것입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처에서 예산을 짤 때,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 사업에 예술인 건강보험료 지원금 31억 원·예술인 전수조사 비용 22억 원 등을 포함시켜 총 300억 원의 예산안 초안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예산은 기획재정부 등과의 논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이후 ‘문화융성 구현'을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삼고 그 일환으로 예술인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핵심 예산인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 사업예산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예술인 복지 지원제도는 갈 길이 아주 멉니다. 해당 제도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구제책이 아니라 진정한 창작 지원을 위한 안전망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자 선정의 폭을 넓혀야 하고, 지원의 문턱을 낮추고 지원에 소요되는 시간도 더욱 단축되어야 합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는 아주 최소한의 지원 정책인 셈입니다.
따라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예산 산정과 조삼모사식의 사업 내 예산 조정이 아니라, 적극적 예산편성을 통한 예술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긴급복지지원 예산을 현실화 하고, 지난해에 비해 축소된 예산을 원상복귀 하는 한편 건강보험료 지원·예술인 전수조사 비용을 예산에 추가로 편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안에 추가로 200억 원의 증액하여 총 400억 원의 예산을 내년 예술인 창작 안전망 구축 사업예산으로 책정해야 합니다. 해당 예산은 아직 해당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상임위와 이후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는 예술인 창작 안전망 구축 사업예산의 증액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과거보다 증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성장률만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풍부한 문화예술과 이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한 단계 개선하는 아주 중요한 조건 일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문화예술 기반이 되는 우리 예술인들이 더 이상 생계고에 시달리지 않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때 까지,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이는 비단 예술인들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11.25.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회의원 박 원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