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 속 김정웅씨(71)는 굳어 있었다. 그의 왼쪽에 보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편안한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네 사람이 한 프레임에 잡힌 장소는 한국민속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속촌 건립 상황을 직접 보고받아 챙겼다.
한국민속촌은 1972년 설립 계획을 세웠으며, 1973년 9월20일 공사를 시작한다. 1974년 10월4일 완공해 일반에 공개됐다. 정부의 적극 주도로 설립됐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흥관광이라는 민간을 통해 운영되는 모순적인 형태였다. 기흥관광의 대표가 바로 김정웅씨다.
1973년 대통령비서실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민속촌 건립계획’을 보면 민자 유치를 통해 민속촌을 건립하고, 당시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이었던 김씨를 사업자로 지정해 민속촌을 건립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국가 정책사업이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민자 유치를 통해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
|
|
▲
ⓒ김정웅제공 민속촌에서 김정웅씨(맨 오른쪽)와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이 함께한 사진. |
10·26 사태 이후 정씨 일가 ‘사유화’
1973년 교통부의 민속촌 건립 사업계획 승인 조건을 보면 ‘건립공사는 당부의 감독을 받아 시행하고…시설물의 세부 배치는 문공부의 조정을 받아 시행할 것’ 등 교통부와 문화공보부의 관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국민속촌은 14억1200만원을 들여 건립했고, 이 과정에서 김씨가 7억3200만원을 부담하는 대신 운영권을 갖는다. 정부는 6억8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민간 사업자였던 김씨는 자기 재산을 거의 다 투자하고도 막대한 빚을 지게 된다.
‘막장 드라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김씨는 민속촌 설립 1년여 만인 1975년 7월 문화재보호법 위반죄로 구속된다. 김씨의 구속 이후 기흥관광(주)은 자금난을 겪다가 1976년 10월 세진레이온에 인수된다. 당시 세진레이온 사장은 정영삼씨(박근혜 후보의 이종사촌 형부)였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정씨의 ‘압력’이 상당했다고 주장한다.
한국고미술협회장을 3회나 지낸 김씨를 잘 아는 서울 인사동의 고미술품 전문가들도 김씨가 정씨에게 민속촌을 ‘뺏겼다’고 입을 모았다. 한 화랑의 대표는 “결국에는 뺏긴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에 부지를 30만평이나 확보할 수 있는 사람도, 민속촌 비품들을 실물로 갖다놓을 수 있는 사람도 김정웅뿐이었을 거다. 김정웅은 고미술계의 왕자였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민속촌의 소유주는 정원석씨(조원관광진흥 대표이사)이다. 정씨는 박근혜 후보의 이종사촌인 홍지자씨와 남편 정영삼씨의 장남이다. 정영삼씨가 민속촌을 인수한 이후에도 고증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정부 차원의 관리는 계속됐다.
그러나 1979년 이후 한국민속촌은 정씨 일가가 ‘사유화’한 정황을 보인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한국민속촌의 장소아이덴티티 변천과정(김영애, 2010)’을 보면,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한국민속촌은 정부 개입이 사라지고 사영화된다”라고 적고 있다. 김씨는 1979년 12월 이후부터 한국민속촌과 관련된 정부 공문서를 찾을 수 없으며, 전두환 정권인 1981년부터는 건축물, 토지, 경내 임야에 대한 취득세 면제 혜택도 사라졌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또한 김정웅씨가 한국민속촌에 이어 아시아민속촌 건립을 위해 예비로 마련해 두었던 민속촌 부지의 일부(20만 평)에는 골프장(금보개발·남부컨트리클럽)이 들어선다. 이 골프장의 주인 역시 정영삼씨의 아들 정원석씨다.
10월8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박원석 의원(진보정의당)은 “김씨는 당시 문공부가 승인한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으로 민속촌 운영 자격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영삼씨는 섬유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정씨가 민속촌을 관리하게 된 이유는 독재 정권의 친인척이라는 것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 의원은 민속촌 건립 당시 정부가 지원했던 6억8000만원의 행방이 불명확하며, 사영화되었는데도 정부 자금을 회수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정영삼씨가 민속촌을 소유하게 된 과정과 설립에 지원된 정부 자금 회수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정씨 일가가 승계하는 과정에서 편법·불법은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 일가친척에 대한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민속촌 홍보팀 김은정 팀장은 “오래된 일이라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고,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논란에 대해 박근혜 후보 측은 “이종사촌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종사촌 형부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전형적인 흠집내기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잘 알지 못하는’ 홍지자·정영삼 씨 부부는 2004년과 2005년 모두 8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박 후보에게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 설립자인 김정웅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는데, 그랬다면 이는 박정희 정권에서 그만큼 일가친척 관리가 부실했다는 방증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제왕적 리더십’을 등에 업고 일가친척들이 득세했지만, 이를 제지할 시스템이 전무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