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개혁’에 그친
정부의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
- 한국선급 재취업이 여전히 가능한 구멍투성이 개정안에 불과 -
- 지방선거용 졸속 입안 멈추고, ‘공직개혁위원회’ 설치해야 -
오늘 박근혜 정부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퇴직공직자 ‘재취업 제한법’이기 보다는 ‘재취업 면죄부법’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정부 입법예고안은 일부 제도개선의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안은 공직자 취업제한에 갖가지 ‘빠져나갈 구멍’이 담겨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관피아 척결’과 거리가 먼 ‘반쪽 개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정부안은 현행제도의 가장 큰 ‘구멍’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지난 6년간 567명의 퇴직공직자가 취업심사조차 받지 않고 각종 협회,단체,사기업체에 취업했다가 적발되었다. 그러나 취업제한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이 경미하고 실제 불이익을 받은 사례는 과태료 2건에 불과하다. 즉, 취업제한을 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관-경 유착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관피아 척결’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취업제한 대상기관을 소폭 조정할 뿐이어서 관료의 ‘밥그릇 챙기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태에서 ‘해운조합’은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어 있고, 한국선급은 정부 업무를 위탁받은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공직자 취업제한 기관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정부안대로 안전감독,인허가,조달 업무에 한정한 공직유관단체와 사립대, 종합병원, 대형 복지기관만 취업을 제한한다면, 한국선급은 여전히 취업 가능 기관으로 남고 관-경 유착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퇴직 전 취급업무를 소속 부서의 업무에서 소속 기관의 업무로 확대한다고 하나, 2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에만 적용되어 이미 밑바닥까지 퍼진 관-경유착을 해소할 수 없다. 공무원은 평균 18년동안 근무하며 그 기간 동안 순환보직 등을 통해 소속 기관 전체의 업무, 인맥과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다. 또한 현행제도에 따르더라도 2급 이상은 이미 소속 기관의 업무에 준하는 취업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부안은 벌써부터 관료사회의 저항이 드러난 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취업심사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관-경유착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심사결과를 공개하기로 한 방안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의 업무취급승인 심사결과, ▲고위공직자의 재취업 후 업무내역서, ▲취업제한 위반 적발 결과는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더 나아가 개인정보호법 등을 공개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개인정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관행을 고려할 때, 사회적 감시가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이다.
다섯째, 취업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위의 네 가지 조건이 해결되지 않는 한 본질적인 처방은 될 수가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취업제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취업제한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이번 정부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의 개혁의지가 이미 쇠퇴했고 관료들의 교묘한 저항이 힘을 받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지난 6년간 2,000명에 육박하는 관료가 공직유관단체,이권단체,대기업에 재취업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먼저 그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여 공개하고, 그 속에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한 범사회적 대화를 시작하여야 한다.
또 다시 안전행정부 주도로 ‘셀프개혁’만을 고집한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관피아로 인한 재난,재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방선거용으로 급하게 공직자윤리법안을 입안할 일도 아니다. 정부입법예고안은 당장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 ‘공직개혁위원회’ 설치 등 관피아 문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담긴 정부안을 제시하여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2014. 5. 29.
국회의원 김 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