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쌀 관세화 개방, 정부도 함께 막아야
- ‘민관 상생 협의창구’ 개설, 범국민 식량주권 보장기구 구성부터 -
올해도 ‘쌀’이 문제다. 2014년 최대 농정 쟁점현안이 될 전망이다. 올해 20년만에 쌀 관세화 유예 조치가 만료되기때문이다. 최근 우리 쌀 시장을 개방하면 관세상당치는 560% 수준이라는 민간용역보고서가 국회(농해수위)에 제출됐다. 쌀 시장 개방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본격화되리라는 신호다.
정부와 농민은 서로 정면 대치하고 있다. 정부는 관세화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과 2004년 쌀 재협상 결과를 논거로 내민다. “더 이상 특별취급(관셰화 유예)는 불가능하며, 2015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쌀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농, 전여농 등 농민단체는 쌀 개방 절대 불가, 전면전 불사 방침이다. “UR 농업협상의 후속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타결될 때까지는 관세화 유예가 가능하다”며, “의무수입물량도 추가로 늘리지 않는 ‘현상 유지(Stand Still)’도 가능하다”는 견해다.
정부에 이어 학계도 관세화 개방론 편에 서 있다. ‘쌀 관세를 얼마나 높게 확보할 것인가’에 따라 관세화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논리를 덧붙인다. 여기에서 관세는 국내외 가격차이인 관세상당치(TE)를 기초로 한다. 관세상당치는 우리나라가 계산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하면 된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는 인접 유사 선례인 중국의 수입가격과 국내 도매가격(aT) 상품을 기준으로 산출했다. 그래서 관세상당치를 560%라는 높은 수준으로 낙관적으로, 자의적으로 분석했다는 지적이 있다.
문제는 DDA 협상 결과에 따르면 관세는 얼마든지 유동적이고 가변적일 수있다는 점이다.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 쌀을 특별품목으로 분류해 관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선진국이 되면 관세를 390%로 내리고 의무수입물량을 더 배정해야 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제안한다고 수용, 채택되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개방론자들은 “쌀 시장이 개방된다해도 고관세 장벽으로 막을 수 있으니, 민간이 고관세를 부담하면서 쌀을 수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농민들을 계속 설득, 또는 기만하고 있다.
농민단체의 입장은 초지일관 단호하다. “쌀 관세화 유예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2015년부터 쌀 의무수입량(40만여톤) 또한 2014년 수준으로 묶어 놓자”는 개방 절대불가 원칙에서 흔들리지 않고있다. 심지어 관세화로 전환될 경우 한미FTA, 한중FTA 등과 연계돼 관세장벽 자체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위험도 크다고 경고한다. FTA협상을 근거로 미국이나 중국이 관세인하를 얼마든지 요구하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국제시장 변동에 따라 국내 쌀시장의 불안정성이 가중되면서 국내 쌀 농업이 급속히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따라서 정부의 관세화 개방대세론 주장과는 달리 “관세화 유예조치 종료 이후에서도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관세화 전환 재협상을 벌이지 않는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선택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서, “쌀의 의무수입물량은 2014년의 40만톤 수준에서 고정시키고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개방불가론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나 농민단체나 추호의 교감이나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둘 다 쌀 관세화와 개방 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자 상황이라는 점에는 동의를 하는듯하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설사 유예 상태가 연장된다해도 의무수입물량은 계속 늘어나 오히려 더 부담스런 상황이 될 수 있다. 반면 농민의 주장에 의하면, 쌀 관세화를 통한 방어장치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위험도 얼마든지 상존한다, 어떻게 결정되든 1차 피해자는 농민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2차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농민을 보호할 책임과 힘이 있는 농정당국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당장 농민단체와 ‘민관 상생 협의채널’부터 개설해야 한다. 허심탄회하게 농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농민을 대표하는 농민단체 등과 진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정부의 입장이 아닌 농민의 입장, 국민의 입장에 서서. 쌀 관세화 개방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슬기롭고 지혜로운 공생과 상생의 대안을 도출, 합의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농민들의 생존권과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는 범국민적 식량주권 보장기구도 구성, 운영할 필요가 있다. 쌀은 농민에게 생명이고 국민에게 주권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정책연구위원 정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