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정보원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을 폄훼하는 문서를 만들어 국회 등 정부기관에 출입하는 국정원 정보관들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배포하여 대국민심리전 등 국내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데 활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의 국정원개혁법안 마련과 관련하여 정부기관 등에 대한 정보관(IO) 상시 출입 폐지, 심리전 중단 등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금지해야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2. 23일 정의당 서기호의원(법제사법위원회)은 국정원이 작성하여 배포한 <「6.15·10.4선언」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가?>라는 문서를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다.
서기호 의원이 공개한 문서에 의하면, 국정원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약칭 2007 남북정상선언)을 각각 ‘뒷돈회담’, ‘임기말 대못 박기’ 등으로 폄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요구에 대해서는 ‘종북좌파세력의 잘못된 주장과 올바른 시각’이라는 Q&A를 통해 대응전략을 상세히 기재하여 ‘대외활동과 업무에 참고’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3. 국정원은 6.15선언에 대해 “북한에 돈을 주고 산 ‘뒷돈회담’”, “탄생부터가 투명성·정당성 결여라는 근본적 하자를 안고 있는 문서”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벗어난 헌법 위반(헌법 4조) 행위”라고 적시하면서 악의적인 만평까지 그려 넣었다.
(*헌법 4조 :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또한 국정원은 10.4선언에 대해서는 “불순한 탄생 배경(임기말 대못 박기)”라면서,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설정 합의는) 해상경계선으로서의 NLL 개념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NLL 불인정·무실화 시비 근거를 제공”했다고 악평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지난 10년간(98-07) 좌파정부로부터 약 70억불 상당의 지원을 획득”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지칭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兩 선언을 만들어 낸 햇볕정책은 이미 지난 대선(17대)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뜻인데 국민의 뜻이 ‘햇볕정책’을 버린 만큼 햇볕정책의 결정판인 兩 선언을 무조건적으로 이행하라는 주장은 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또한, 남북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종북좌파세력의 잘못된 주장”이라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은 잘못된 대북정책을 시정하라는 민의의 반영이자 국민의 명령”이라고 Q&A를 작성하여 대응논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4. 서기호 의원이 공개한 문서는 국정원이 2009년 7월 북한담당 3차장 산하 3국명의로 작성·배포한 것으로, A4용지 크기로 표지를 포함하여 23쪽 분량이다. 문서의 표지에는 “국가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재평가와 올바른 인식을 위해 아래 자료를 작성하였사오니 대외활동이나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국회·정당·언론사·정부기관 등을 출입하는 국정원 정보관(IO)들의 대외활동과 기타 국정원 직원들의 업무에 활용하라는 지침이다.
5. 서기호 의원은 “국정원의 문서가 배포되던 시기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가 국정원의 문서와 유사한 내용을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바로알기」라는 소책자 형태로 만들어 배포했다가 문제가 되어 회수된 적이 있다. 당시 국정원이 자료를 제공해주고 민주평통 명의를 빌려서 배포했다는 의혹이 있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국가보훈처 안보 교육 동영상(DVD)을 국정원이 제공해줬다는 의혹 사건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6. 서기호 의원은 문서 입수 경위에 대해 “제보자 보호 차원에서 밝힐 수 없다”고 하면서, “해당 문서는 컴퓨터 파일을 프린트하거나 복사한 것이 아닌 배포 문건 원본 그대로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더불어, 서 의원은 “제보자는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이 단순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하고나서부터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이고 공격적으로 준비된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제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혀왔다”고 언급했다.
7. 서기호 의원은 국정원이 문서를 만든 이유에 대해 “국정원의 의도는 과거 정부를 헐뜯어 국민을 분열시키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론을 뒷받침하려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8. 현재 진행중인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 논의와 관련하여 서기호 의원은 “국정원이 제시한 자체개혁안을 보면 공개한 문서가 대국민심리전 차원에서 준비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정원은 개혁안에 ‘방어심리전 업무 범위를 명확화하겠다’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이라는 부분을 포함시켰는데, 문서에 의하면 국정원은 6.15·10.4 선언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정원 자체개혁안대로 법안이 통과된다면 오히려 정치개입 근거를 제공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대국민심리전을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끝)
※ [참고자료]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