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활동 평가서
청년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 변현준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지난해 10월부터 청년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이하 설학위)의 위원장 직을 맡아 수행해온 변현준이라고 합니다. 당이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많은 분들이 당에 대해 의견과 평가를 남기고 계신데요. 저 역시 학생이라는 부문의 장으로서 그 위기를 크게 체감하고 있지만, 학생 부문이 마주하고 있는 위기의 구조를 충분히 짚어주시는 평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학생 부문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더해, 부족하나마 평가를 남겨봅니다.
특히 이러한 평가는 정의당 전체의 방향성에 대한 제언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소위 청년 여성만을 밀어주는 정치가 정의당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많이 듣습니다. 그 평가에 대해, 대단히 납작한 이해지만, 온전히 그른 이해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청년과 여성을 대변하기 위해 싸운 결과 얻게 된 표와 당원이 그 반대급부보다 산술적으로 적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년과 여성과 같은 약자를 대변하는 것은 산술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진보정당의 당연한 사명이고, 우리가 대신 살펴야 할 것은 왜 청년과 여성을 대변한다고 했지만 그들을 실제로 조직해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때 저는 학생위원회가 (그에 걸맞는 지원을 받았는가와는 별개로) 그를 위한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학생위원회에 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분석 및 토론은 정의당이 어떻게 해야 청년과 여성에 더욱 제대로 소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청년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에 대한 저의 평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토론은 정의당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기도 합니다.
다만 들어가기 전에 밝혀야 할 사실은, 저 자신부터가 오늘의 학생위원회를 만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 평가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가 평가의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지금 학위 내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깊이 있는 비판 – 어쩌면 폭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평가서를 쓰게 됐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여기서 가해지는 비판의 상당수는 저에게도 가해져야 할 것이며,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0. 정의당 학생조직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평가의 대상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당원 분들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설학위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다른 부문위원회들과는 대단히 다른, 매우 독특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서울시당의 학생위원회는 사실상 정의당 내의 유일한 학생조직입니다. 제가 비서울지역 사정에는 과문하지만, 그곳에는 자생적인 학생위원회 조직이 거의 구성되어 있지 않고, 그곳의 당원/활동가들께서는 대개 청년 조직과 함께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예외가 있다면 강원도당 학생위원회가 활발히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청년정의당 산하에 전국학생위원회가 구성은 되어 있으나 사실상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오히려 사실상 유일한 학생조직인 설학위가 청년정의당 본당에 직접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설학위는 심지어 비서울지역의 것까지 포괄한 학생의제를 대변할 것을 요구받지만, 그에 맞는 지원은 받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실 설학위 역시 본래 그닥 독자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평범한 광역시도당의 부문위원회와 같이 존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략 19~20년도부터 각 캠퍼스에서 자체적으로 모인, 혹은 의식적으로 모은 학생당원들이 구성한 캠퍼스 학생위원회(이하 캠학위)들을 기층단위로 한, 그러면서 여러 현안(특히 조국 장관 임명 관련)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목소리내는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말하자면, 현재 설학위가 (그 형식상이 아니라 실제 층위에서) 가지고 있는 목표와 조직 등은 19~20년도에 구성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20체제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새롭게 구성된 체제 하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설학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다양한 정치적, 운동적 시도들이 있었고, 수많은 사업들이 있었고, 당연히 많은 싸움과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위원회라는 공간은 다른 부문 위원회에 비해 조금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도 같습니다. 말하자면 “아마추어 리그” 같은 성격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처음 활동가가 되고, 성장하고, 당내에서의 비전을 모색하는. 물론 그 성격이 단지 약속이 아닌 현실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아마추어 리그”로서의 성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그 속에서 총 3번의 기수가 있었습니다. 첫 기수에는 채성준 당원님과 남상혁 당원님이 공동위원장을 맡으셨고, 다음 기수에는 지금은 군대에 계신 이도영 전 당원님께서 위원장을 맡으셨고, 마지막으로 제가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21년 늦봄부터 서울시당 학생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그 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위원회에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요. 반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동을 한 지금에 와서 볼 때, 사실상 1920체제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가지게 됐고,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자 합니다.
1. 환대의 공동체가 되지 못한 곳
객관적으로 설학위에 새로 진입한 혹은 진입할 의향이 있던 이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학위의 잘못된 내부구조가 그들을 “튕겨져 나가게”끔 했다고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지속가능한 재생산 구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설학위를 지속하고 새로운 사업들을 벌여 나갈 역량 자체도 증발해버렸습니다.
i. 민주주의
그 중 가장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는 이곳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일 것입니다. 일단 시스템이 상당히 비민주적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조직의 형태는 민주집중제를 따라 위원장과 그 집행위원회를 각 캠학위의 장들이 운영위원으로서 견제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조사 결과, 캠학위의 장들은 해당 캠퍼스 소속 당원들을 전부 만나지도 못한 상태이고, 정기적인 선거로 선출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아예 캠학위가 없는 소위 ‘미조직’ 당원들도 전체의 1/5 수준에 달합니다. 물론 이는 개별 캠학위 장들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인 조직 활동과 재생산을 이끌 여유/의사가 없는 이들을 억지로 그 자리에 앉혀둔 결과에 가깝습니다.
어쨌든 그 결과 새롭게 들어온 당원들은 실제로 설학위의 운영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며, 가입하고도 전혀 연락을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떠나가곤 합니다. 그나마 제가 취임 후 대대적인 명부조사를 통해 발견되지 않았던 당원 서른 분 가량을 찾아냈지만, 이들을 누가 ‘조직화’할 것인지에 대한 소관 문제로 다투다가(집행위에 대한 캠학위의 우선성을 주장하셨습니다) 증발해버린 당원 분들만 해도 제가 알기로 열 분이 넘습니다.
즉, 현행 캠학위 체제는 새로 진입한 당원들에게 전혀 소속감과 효능감, 그리고 민주적 참여의 경로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캠학위를 기층으로 두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캠학위 장 개인의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ii. 활동가
지난 반 년간 많이 덜해진 것 같지만, 설학위에서 지배적이던 활동당원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전업 활동가”의 그것에 가까웠습니다. “학업을 중단하고서라도”, “다른 길로 한눈팔지 않고” 매순간, 그리고 평생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미래의 활동가들이 펼치는 “아마추어 리그”. 그러나 이미 당에서 오래 계신 선배님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시겠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게다가 소위 간부와 대중의 이분법을 재생산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를 만드신 분들도 대부분 이미 졸업과 생업을 위해 떠난 상태이기도 하지요. 물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스스로 가꿔나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정말 존경을 표하지만, 저는 그것이 일종의 이상적 상으로 제시된 결과, 설학위의 재생산 구조가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입 당원들은 매우 당황합니다. 정의당은 전위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이기에, 자신의 고유한 일상을 가꾸면서 가볍게 정당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이 넘치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당연한 것처럼 헌신을 요구하고, 결국 그들은 지치거나 질려서 떠나갑니다. 한편, 이미 (대개 반쯤 억지로지만) 캠학위 장 등 간부 직을 맡기로 한 사람들에게도 비극은 똑같이 닥쳐옵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사업을 시도해보려 하지만, 조금 더 줄여보라는 조언 대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압력을 마주하고, 억지로라도 여러 사무를 맡고자 하다가, 결국 그냥 포기하고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물려줄 사람만을 찾게 됩니다.
만약 설학위에서 그렇게 헌신하면 그 다음 스텝이 존재한다는 비전이라도 있으면 상황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진보정당 20년 동안 정당 내에서 스스로 성장한 사례가 드물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실 것이며, 특히 뒤에서 말할 정파의 자장 밖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힘든 일일 것입니다. 물론 이 공간에서 그럼에도 정치적 길이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 당장 제가 그러하고, 이전의 두 학생위원장들도 비슷한 증언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에게 그 비전을 실현시킬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들은 그저 자신의 인생의 일부를 어떤 대가도 없이 바친 채 사라진 꼴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어느새 학생위원장을 맡는 일은 “멍청한 일”이 되어버렸고, 더 이상 그 자리를 지망하는 이는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이 “아마추어 리그”에 참여하려고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삶의 경로를 존중받으면서, 삶의 일부로서 참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과 일치되어 전부를 바치도록 요구하는 공동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반 년 간 제가 가장 열심히 바꾸려고 했던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인데요, 이미 그 과정이 너무도 진전되어서 저와 같이 (가볍게) 일할 활동가들 자체를 찾지 못했고, 그 결과 또 다시 제가 일을 홀로 다 짊어지고, 그 모습을 본 이들이 다시 설학위에서의 활동을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변명을 덧붙이고 싶네요.
iii. 남성중심적
앞선 두 가지 이야기가 혼합된,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보이는 문제입니다. 우선 아무래도 정당에 진입하는, 특히 운동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비중이 남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짚고자 합니다. 단지 그들이 더 헌신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꿈 자본을 키워나갈 수 있게 젠더화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관련해서는 이길보라 감독의 ‘벌새’와 관련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길어질테니 미주로 달겠습니다[i]) 그 결과, 그 “그들만의 아마추어 리그”는 (이하는 어디까지나 저의 패싱입니다) 남성 활동가들에 의해 독점됩니다. 실제로, 제가 취임하기 직전, 집행위원 9명과 운영위원 13명 중 여성은 1명 – 그것도 동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남성의 수적 비중이 그 공간의 성평등한 척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연관성이 높은 것 역시 사실이겠지요. 더욱 진솔하게 말하자면, 이미 여성들을 차별/배제해온 결과를 반영하기도 하겠고요. 설학위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다른 보편의 남성호모소셜에 비해 아주 직접적인 차별/혐오 발언은 자중되는 편이었지만, 앞의 “그들만의 아마추어 리그”로서의 성격과 결합해, 공식적인 회의 자리보다 술자리에서 / 담배를 피우며 중요한 결정과 합의, 물밑교섭이 이루어진다거나, 남성들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자 남성들)만 편히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 오가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요 – 물론 그것은 단지 젠더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 글의 1절에서 말하는 모든 문제의 소산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공간에서 여성들은 각자의 공간을 찾아 멋지게 생존해내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튕겨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그들에게는 더 안전하고 더 평등한 페미니즘적인 공간이 설학위 외에도 많았으니, 그들의 의지력 부족이 아닌 더 현명한 선택의 결과였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장혜영 의원이 평가서에서 남긴 바와 같이 정의당은 “정체성 정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것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 등의 정국에서 류호정, 장혜영 의원에 기대를 걸고 입당한 여성당원들이 많았음에도 상술한 바와 같은 불평등한 공간 속에서 그들이 이 공간에 소속감과 효능감을 가지지 못했고, 그것이 더욱 보편적인 지지로 발전하지 못한 탓이 매우 클 것입니다.
iv. 정파
매우 조심스러운 대목이지만, 앞선 여러 비판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형태로 설학위에도 정파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물론 정파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특정 활동가를 그의 소속 정파로만 판단하는 것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그러한 잘못된 편견(당내의 관용구대로라면 “정파 싫어 정파”)에 빠졌던 바가 있기에 제 주장에 신뢰성이 떨어질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설학위가 “환대의 공동체가 되지 못한 곳”이 된 이유에 정파의 잘못된 작동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생각하기에 부득불 이 단락을 씁니다.
“그들만의 아마추어 리그”로서 설학위는, 명백하게 정파 간의 협의와 소통으로 작동합니다. “정파의 이름으로 OOO에 비토하자”는 제안이 공공연히 나오고, 운영위원회에서 차질/갈등이 빚어질 때 “왜 그 정파는 통일된 주장을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며, 자신은 정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몇 년째 “쟤네도 정파나 다름 없다”는 규정을 지속하고, 전임 위원장은 후임 위원장에게 “운영위원회를 움직이려면 OO 정파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 역시 그러한 정파적 맥락 위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그것에 기승하고 그것을 이용하며 지금껏 설학위를 운영해왔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깊숙이 정파의 자장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만 정파에 소속된 적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말도 있다고 생각하여 말을 꺼냅니다.
정파의 존재와 작동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저 역시 과도하게 정파 자체에 혐오감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작동은 매우 문제적입니다. 특히 “환대의 공동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우선 정보와 결정권한의 독점이 심각합니다. 앞서 말한 “그들만의 아마추어 리그”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정파의 구성원이거나 그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굳이 아주 비밀스러운 합의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단지 운영위원회에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정파 구성원이 아닌 이들은 결정과정으로부터 배제됩니다. 또 그 정파들은 공개적으로 활동하거나 의사를 드러내지 않기에, 또한 상술한 민주적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운영위원회에서 내려진 결정의 원인과 사유는 일반 당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즉 정보의 독점이 일어납니다. 더불어 실제로 아주 중요한 합의는 물밑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또 조직을 재생산하고 활동가를 새롭게 양성하는 시스템도,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운동론과 대안사회에 대한 토론도 정파별로 분산되어 이루어집니다. 앞선 이유로 설학위가 자체적인 재생산 등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분산은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새로 활동을 하려는 이들이 그 타격을 가장 크게 받습니다. 정파 소속 당원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며 “정파에 들어오지 않으면 당 생활 오래 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이며, 그 말은 상당 부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나마 정파에 구애받지 않고 제게 조언을 해주신 전임 세 분 덕분에, 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 놓인 다른 당원들은 쉽게 “튕겨나가”게 되겠지요. 특히, 대부분의 정파들이 자신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일반 당원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채 지나가게 됩니다.
이 단락을 마치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설학위의 정파 문제”가 정의당 전체의 문제로 소급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나이주의적이라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학생 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에 비해 미성숙한 지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미성숙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가 공동체에 대한 동일시와 외부집단에 대한 적대를 포함한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와 같은 “정파싫어정파” 사람들의 그것을 포함해) 정파의 건강한 작동이 선배들의 그것에 비해 쉽지 않은 점이 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 비판이 정파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정의당의 정파를 비판하는 것도 아님을 꼭 주지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v. 소결
2절과 3절에서 언급하겠지만, 사실 설학위는 그 자신의 힘으로 입당자를 조직해낸 바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원순 성폭력 사건, 대선 패배 등의 거시정치적 순간들에 정의당 자체에 대해 기대를 걸고 들어온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처럼 입당을 시켜내는 일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설학위는 적어도 그 들어온 이들이 당에 마음을 붙이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했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거시정치는 항상 우리에게 웃음을 지어주지 않았기에 김종철 성폭력 사건, 청년정의당 당직자 성폭력 사건 등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 정의당의 청년 정치와 여성 정치에 기대를 걸고 들어왔던 당원들은 실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붙잡는 것이 설학위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역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거나, 그러지 못하는 중입니다. 지극히 비민주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된 “그들만의 리그”, 가혹할 정도로 요구되는 소위 “활동가의 조건”, 그에 공조한 남성중심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정파 운영은, 새롭게 정의당에 진입한 이들을 환대하기 보다는 “튕겨져 나가”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설학위의 재생산 구조는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기성 활동가들이 구축한 문화와 시스템에 신입 활동가들이 튕겨져 나가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동안, 기성 활동가들은 당초 강조하던 것과 달리, 재생산조차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생업이나 새로운 현장, 운동을 찾아 떠났습니다. 저를 비롯한 극히 일부 남은 생존자들이 그 극히 제한된 역량을 갖고 나름 무언가 시도해보았으나 이미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설학위의 위기는 이처럼 이미 들어온 이들에게 소속감과 효능감을 제공하며 설학위와 정의당의 구성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또 그 결과 초래된 전반적인 역량의 감소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제한된 역량이나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2절에서는 그에 대해 논해보려 합니다.
2. 현장과의 단절 속에 길을 잃다
그 내적 요인의 가장 본질적인 지점은, 설학위가 쓸데없이 많은 목표를 부여받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들어가며’에서 언급했듯, 설학위는 독특하게도 시당의 평범한 부문위원회가 가졌어야 할 역할을 한참 초월해 맡고 있었습니다. 또 캠퍼스운동과의 단절은 그로부터 얻어올 수 있었던 자원조차 설학위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설학위는 본당으로부터 서울을 넘어 전국 단위의 학생 의제 대변과 선거 등 참여를 요구받는 한편, 캠학위 차원의 토대가 텅 빈 상황에서 캠퍼스운동 및 사회운동과 말초적인 연대나마 수행해야 했고,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꾸리는 것은 물론 활동가 양성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 목표들 안에서도 다양한 지향들이 충돌하느라 더 분산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유로 가뜩이나 그 역량의 총량이 작아지던 상황에서, 분산의 결과는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그가 캠퍼스운동과 단절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설학위가 갖는 조직의 가능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배후로 두는 캠퍼스운동에 있습니다. 때문에 설학위의 실패를 논할 때, 필연적으로 그 배경이 되는 캠퍼스운동 역시 쇠락하고 있었다는 외부적 배경을 논하게 됩니다. 실제로, 설학위가 19-20체제로 정비를 마친 이래로, 캠퍼스운동 역시 전반적인 퇴조의 추세에 COVID-19까지 겹쳐 그 세가 매우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학 캠퍼스운동 은 같은 기간 설학위와 달리 결코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앙대학교의 뿌리와 탈곡기의 사례에서 보듯 위기 속에서도 운동의 기회를 찾아냈고, 성공회대학교 모모의 사례에서 보듯 어려운 조건을 뚫고 현실의 권리를 쟁취해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정의당의 이름을 숨기지 않고 과반과 단과대 학생회를 거쳐 총학생회까지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고, 또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신촌홍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등 새로운 유형의 캠퍼스운동이 등장하고, 전장연과 같은 급진적 투쟁에 공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각각의 운동에 모두 정의당원들이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럼에도 설학위와 정의당은 이들 운동과 충분히 연결되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을 돌아볼 때, 설학위의 실패는 단지 캠퍼스운동의 전반적 쇠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환원시킬 수 없습니다.
i. 캠퍼스운동과의 단절
이때 저는 설학위가 현장과 단절된 것에 대해, 그가 지나치게 정당 중심적인 길을 걸으며 캠퍼스운동과 괴리되어 왔다는 비판을 제기하려 합니다. 물론 설학위의 모든 구성원이 현장과 괴리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상기한 성공의 사례들은 모두 설학위의 구성원들이 중심에 서 있던 사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설학위의 일부 어쩌면 주류를 이룬 활동가들의 경향이, 그리고 설학위 자체에서는 문제가 뚜렷했습니다. 상당수 활동가들이 실존하는 – 심지어 적극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캠퍼스운동에 함께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정의당원들이 독자적으로 모여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독자적인 활동가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상징됩니다. 물론 정의당과 설학위라는 조직 역시 독자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만큼, 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캠학위로 상징되는 기층에서부터 조직을 쌓아올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정의당이 갖는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정신에 부합합니다. 물론 이미 1절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로 인해 그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캠학위라는 기층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기층조직보다도 더욱 근간이 될 현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곳에서 동지로서의 신뢰를 얻고, 그 안의 다른 활동가들과 협력하고 친밀하게 지내야 합니다. 해당 캠퍼스에 대해 함께 토론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학위의 몇몇 활동가들은 그런 운동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허공에 뜬 기층조직 – 캠학위를 짓고자 했고, 그 결과는 이미 정의당원인 자들만의 게토였습니다. 심지어 정의당원 중 이미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아마 캠학위에 그에 대한 토론이나 조력을 소구했을 이들은, 자연스럽게 “튕겨져 나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캠퍼스운동을 통해 성장한 활동가들로 하여금 정의당을 선택하게 만들 통로 자체가 사라졌고, 제대로 된 연대가 없으니 오히려 불신만이 쌓였습니다. 즉, 현장과의 단절은 그로부터 불신의 시선과 활동가 재생산의 실패 모두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해당 활동가들은 뒤늦게 현장과의 연결을 재차 시도했습니다. 1. 이미 정의당원이었던 자기 캠퍼스 구성원을 자체적인 방식으로 활동가로 양성시키고자 하거나, 2. 조금이나마 안면이 있는 캠퍼스운동 활동가들에게 입당을 권유하기 시작하거나, 3. 여러 집회에 열심히 쫓아다니며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의 경우, 현장에서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도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고 키울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니만큼,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기획된 것은 당연히 현재 캠퍼스운동에서 실제 요구되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신입당원들에게 새로운 활동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의의는 있었지만, 그렇게 현장과 괴리된 교육은 설학위와 캠학위가 할 수 있는 운동의 한계를 노정했고, 장기적으로는 설학위와 캠학위 자체가 “신뢰할 수 없는 이들”, “역량 없는 이들”로 인식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편 둘째의 경우 역시 매우 문제적이었습니다. 입당의 과정은, 그를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 속에 이루어지는 아주 조심스러운 권유이거나, 그 자신이 정의당원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행보를 보이는 와중에 파생되는 자발적 입당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런 입당 권유를 할만한 조건이 아닌 경우에도, 입당 이후에 약속할 수 있는 어떤 공간도 활동도 없음에도, 20년 전처럼 입당원서를 품고 다니는 일이 곧 미덕인 것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발견됐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입당이 잘 될리가 없을 뿐더러, 입당한 이조차 스스로가 그 입당을 권유한 이에게 도구적으로 대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절에서 지적한 “튕겨져 나가”버리는 문제가 겹쳐졌을 때, 상황은 생존자가 몇 명인지 헤아리는게 고작인 지경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끝으로, 셋째, 집회를 통한 연대의 경우, 당연히 최소한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운동을 경유하지 않았고, 입당이 활동과의 첫 고리였던 이들에게, 캠퍼스운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잠재적으로는 그들을 캠퍼스운동에 함께하도록 이끌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그것조차 부족했습니다. 이처럼 활동가 재생산의 일환으로서 집회 연대를 생각할 경우, 사전 세미나라든가 뒷풀이처럼 그 연대를 단지 ‘동원’이 아니라 계기로 만들어주기 위한 경험들이 뒤따라야 하는데, 많은 경우 그가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또 집회 연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목적해야 하는 것은 그 부족한 계기로나마 캠퍼스운동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인데, 운동에 대한 충분치 못한 이해 속에 그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현재 정의당은 유일한 정당도, 유일한 대안도 아니며, 수많은 실책과 잘못을 범하는 믿기 어려운 정당입니다. 또한 적어도 아직까지는 (비록 다 망해간다고 하지만) 캠퍼스운동에서 자연스러운 활동 속에 양성되는 활동가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정당에 소속되어 대변하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보다 겸손하게 임해야 할텐데, 가뜩이나 이대남들의 백래쉬로 정당과의 작은 연계만으로도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인데, 마치 캠퍼스운동은 이미 정의당에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착각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에 반대해서, 반드시 더욱 더 현장 속으로 들어간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를 설학위로 ‘조직화’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두지 말고, 먼저 진심으로 캠퍼스운동에 참여하며 신뢰를 얻고 동지가 되는 일부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캠학위라는 기층조직은 그 현장과 소통할 때에야 바로 설 수 있고,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정의당은 그 다음에야 존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ii. 토론과 활동의 부재
물론 설학위의 다른 한편에서는 캠퍼스운동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해당 캠퍼스의 학생사회 내에서 매우 신뢰받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쌓아가는 탁월한 활동가들이 분명히 정의당 안에 여럿 존재합니다. 감히 실명을 다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노학연대체를 지은 이들이나 학생회 내에서 진보정치의 블록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을 설학위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실제 활동에 설학위라는 조직이 유효하게 도움을 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그들은 설학위에서 토론을 나누고자 했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당 조직 자체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명분에 밀려, 그에 수반하는 토론과 활동은 설학위 내에서 (간간히 그 필요성이 언급만 되었을 뿐)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각 캠퍼스운동에서 이들이 맞는 다양한 위기가 있었을텐데, 그때에도 설학위는 그들의 곁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캠퍼스운동 현장으로부터의 목소리는 지워졌고, 캠퍼스운동 활동가들 역시 (정의당과 설학위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이 공간에서 토론하고 연결되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예 정당운동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있는데, 운동 전체의 미래로 보면 더 효과적인 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당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은 아닌 듯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에, 운동 전체의 정세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설학위의 모습 역시 한몫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그보다는 덜하지만, 입당과 조직화, 그리고 캠학위에 대해 아예 미련을 접고, 자신이 인정받는 활동가가 되어 간접적인 입당효과를 노린다는 이도 있는데, 역시 정의당의 학생조직 입장으로서는 조금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할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역시, 설령 그것이 한계적이라 할지라도,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토론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었습니다.
각 캠퍼스운동 활동가들이 정파와 캠퍼스와 지향, 부문을 초월해 각자가 처했던 조건과 판단, 결과에 대해 나누고 서로의 그것들을 비교했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유의미한 전략/전술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고민하고, 또 다른 조건의 공간에서는 어떤 시도가 필요할지 고안했어야 합니다. 특히 설학위는 그런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꾸려야 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다시 집행할 수 있도록 물질적/정서적 지원을 보냈어야 합니다. 그런 네트워크가 안정화되고 규모가 확대되었다면, 그때부터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들과 서로 간의 친목 사업들을 벌이며 공동체를 안정화하고, 또 자신의 캠퍼스에서 어떤 활동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이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줄 수 있었을 터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캠퍼스운동과의 공진화를 전제할 테고요.
그러나 그것이 없었습니다. 설학위의 전략전술은 철저히 정의당의, 설학위의 캠학위를 그 자체로 성장시키는데 철저히 정당의 일원으로서 활동가를 길러내는데 집중했고, 각자 캠퍼스운동에 분산되어 활동하던 이들이 연결될 기회도 지원받을 기회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철저히 실패하였다고, 그래서 그 결과 전략전술을 시정하기 위한 자원조차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제,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연결과 토론부터 시작해야 하겠지요.
4. 나가며: 지난 1년
이상의 평가는 제가 학위를 처음 목격하던 순간부터 지금 학위에 가장 많은 책임을 가진 이가 될 때까지 꾸준히 키워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자적인 시선에서의 비판을 견지하는 위의 글이 대단히 스스로의 책임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보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이 절에서는 저 자신의 활동에도 평가를 가해보고자 합니다. 학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매순간 (위에서 이미 보여드린) 특정한 평가와 목표 아래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고, 그는 여러가지 이유로 대부분 일정한 실패로 귀결되었습니다. 이 절에서는 평가자라기보다는 그 사업의 책임자로서 스스로의 시도들에 대해 회고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지난 7~8월 설학위는 방중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당초 활동가 교육 사업을 준비했지만 COVID-19로 인해 그를 진행할 여건이 아니게 되었고, 그 결과 ZOOM으로 간단한 당원모임만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활동가’가 아닌 일반당원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활동을 하고 세계를 변혁해갈 공간보다도, 기대를 갖고 지켜보는 곳이자 스스로가 머무를 공동체로서 이곳을 여기는 이들의 존재가, 그들과의 경험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 감각은 이후 9~10월에 진행한 권수정 의원과 서울시정 톺아보기 사업을 통해 조금 더 발전한 것 같습니다. 입당을 하고서도 정당의 효능감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던 이들이나, 캠퍼스운동을 하면서도 정당을 낯설게 여기던 이들이 시의회에서 실제로 역할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서로에게 공동체로서의 감각을 느끼게 되는 모습을 보았고, 그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데에 설학위의 목표가 정향되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11월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2가지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하나는 안전하고 평등한, 그리고 가벼운 커뮤니티를 짓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기존에 단절되어 있던 캠퍼스운동과 사회운동과의 연결고리를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를 위해서는 당시 기존 설학위에서 “튕겨져나가”게 됐거나 막 입당한 당원들을 집행위원회로 모았고, 개인적으로 대화나누고 함께 노는 것에 시간을 쏟으며, 공동체를 만들어냄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이때 평등한 문화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생각하고, 그 결과 나름의 성과를 냈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후자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단 당시 캠퍼스운동을 해본 경험이 적던 당원들을 활동가로 양성해 각자의 캠퍼스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 했고, 이에 2달간 각 의제운동의 현황에 대한 세미나와 기자회견/보도자료 등 실무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후자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당시 제가 캠퍼스운동 전체에 대해 갖고 있던 아쉬움 – 곧 자생적인 운동의 여력이 아직 살아있는 듯한데 (특히 전통적인 정파운동의 약세 속에) 그것이 연결되지 못하고 지속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반영해, 적극적으로 판을 깔고 자생적 운동들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존재하던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의 모델을 차용해 신촌홍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해 이대, 연대, 홍대, 서강대 등 신촌권역을 잇고자 했고, 각 학교의 자생적인 페미니스트 모임들을 모아 페미니스트 새터를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캠퍼스현장에서 정당과의 연계가 그 자체로 강력한 백래쉬의 빌미가 되게 되었고, 정의당의 학생조직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져 있던 외적 조건과, 후술할 대선과 관련한 내적 조건으로 인해, 이는 결국 설학위로부터 별개의 단위로 전개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1월 말까지는 순항했으나, 2월부터 잇따른 위기를 마주했습니다. 이전에 전국단위 (전임 위원장의 조언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던 대선에 휩쓸려 역량을 과할 정도로 투여해야 했고, 게다가 역사적인 패배 속에 많은 이들이 동력을 잃은 가운데, 개강과 함께 집행역량이 그 자체로 크게 떨어졌고, 게다가 제 실책으로 인한 내홍과 그로 인한 집행위원회 공동체의 결속력 약화까지 마주했습니다. 또 방중 프로그램 정도로 학생당원들이 곧장 캠퍼스운동과 설학위를 이을 가교가 되도록 만들기는 어렵다는 현실과 동시에 정당조직이 직접 뛰어들어서 판을 까는 방식의 운동은 현재의 조건에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으며 기존 전략의 실패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3월까지 큰 혼란을 겪었고, 때문에 3월 말과 4월 초 사이에 큰 틀의 방향 수정을 감행해야만 했습니다.
다만 그 수정이 단지 후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위기 가운데에서도, 대선 패배에 슬퍼하며 수많은 입당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현 시스템의 문제로 고된 수작업을 거치며[ii] 적어도 서른 명 가량의 신규 입당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4월부터 세워진 설학위의 새로운 방향은, 자연히 이들 신규 입당자들이 설학위와 정의당에 소속감과 효능감을 느끼는 구성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최대한 자주 당원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고, 설문조사를 통해 각 당원들이 설학위와 정의당에 기대하고 들어온 바를 알아봤습니다. 또 그에 사회운동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답변이 많아, 여러 모임을 집회 등에 대한 연대 방문으로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전처럼 단지 집회에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고, 전후로 세미나나 뒷풀이 등을 충분히 덧붙이는 방식이었고, 또 해당 운동의 활동가들과도 최대한 밀접해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11월과는 달리 도저히 모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의 여력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한다면 가능했을 일이지만, 5월에는 지방선거로 인한 당원 집합 금지가 걸리고, 6월에는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시즌이 찾아오며, 4월 한 달 공들여 새로 구성한 전략은 고작 한 달만에 그 시효를 다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대선 패배와는 명백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 지선 패배, 그리고 청년정의당 당직자의 성폭력 사건 등이 발생하며, 3월 대선 직후 입당했던 분들 중 상당수가 그 사이 공동체의 구성원까지 되지는 못했기에 신뢰를 잃고 당을 떠나시는 중입니다.
사실 지방선거 기간에라도 선거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했다면 이 정도의 타격은 입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선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러지 못했고, 이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이 선거 국면에서 당원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존 집행위원들은 3월 대선에서 충분히 무리했던 상황이었고, 당초 설학위에서는 이제 막 대선을 계기로 입당한 당원들이 신변노출 위험이 있고 체력적 소모가 큰 오프라인 선거운동까지 곧바로 결합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때문에 작년의 서울시정 톺아보기 사업과 유사하게 공약제안 사업을 진행해 후보 자체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 효능감을 확보하고, 그를 통해 신규 입당자들을 활동당원으로 만들며 오프라인 선거운동까지 이끌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후보께도 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선본으로부터 “본선거 이전이라도 정책담당자나 후보를 당원 행사에 보내줄 여력은 안된다”는 답변을 받고, 사업은 완전히 무산되었습니다. 물론 선거기간의 바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나, 아쉬움 역시 적지 않은 지점입니다. 한편 대학에 방문하여 간담회를 진행하는데도 학위에 어떤 사전 연락도 주지 않았고, 그 결과 다소 추상적이고 현장에 동떨어진 메시지가 나간 점 역시 선본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각설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 7월 전체당원모임을 열고 후속 간담회를 연달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 목적은 기존 설학위의 문제점에 대한 1,2절과 같은 평가를 공유하고, 제가 지난 1년 동안 그에 기반해 만든 시도들을 공유하고, 그 실패에 대한 판단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토론하기 위함입니다. 나름대로, 지난 1년간 당원들이 배제되지 않고 오히려 신입당원들, 그리고 여성/퀴어당원들이 주축이 되는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했고, 또 이들이 정파에 소속되지 않음으로서 배제되는 일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11월을 기점으로는 나름 성공적이었고, 4월에도 반절 정도의 성과는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권역별 당원모임의 시도 정도를 제외하면, 비민주적 시스템은 전혀 타파되지 못했습니다. 한편 또한 캠퍼스운동과의 연대를 위한 방안들을 새롭게 모색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활동 경험이 없는 당원들도 캠퍼스운동에 섞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고자 했고, 캠퍼스운동 행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운동을 함께 만들고자 했으며, 이곳이 의회정당이라는 점을 살려서 정책제안/공약제안 등의 형태로 캠퍼스운동에 정당의 의미를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반절 미만의 성과만을 남겼습니다. 첫번째는 분명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나 저 개인의 인맥과 네트워크에만 기댄 결과 많은 경우 그들이 실제 캠퍼스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못하며 무산되었고, 두번째는 정당 자체가 운동에 직접 나설 수 없는 제반조건이 만들어지며 전략수정이 절실해졌습니다. 또 마지막의 경우, 거시정치의 실패 속에 정의당 서울시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전무하게 되며, 새로운 루트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여러분께 공유드리고, 토론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토론을 통해 새로운 설학위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미시적인 수정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구성까지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분명 이 글에 대한 여러 비판점들이 있으실 테니, 주저 말고 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 웹진 인-무브에 게재된 단감의 「영화 <벌새>가 보여주는 여성 서사의 개방성: 저 남자 왜 울어?(https://en-movement.net/289)」에서는 엘렌 식수의 이야기를 빌려, 타자로부터 균열을 수용해내며 살아온 ‘은희’ 그리고 여성들에 대해, ‘아버지’와 ‘대훈’을 대조시킨다. 그들은 늘 권력자였고, 그렇기에 균열의 수용을 요구받아본 적이 없으며, 때문에 가족구성원의 죽음(의 가능성)이라는 큰 충격에, 문자 그대로 무너져버린다. 나는 20대 초반 남성 활동가들이 흔히 보이곤 하는 야망과 열정어린 모습이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것이 사회체제의 전복을 요구하는 비판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말하기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말하기에 비해, 훨씬 손쉽게 주목받고 관철되어왔다. 그들의 거대한 야망과 열정조차, 그들의 젠더 (혹은 비장애인, 선주민, 시스-헤테로로서의) 권력과 그에 기반한 삶의 경험에 기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ii] 현재 당원 명부 시스템에서는 해당 당원의 대학 재학 여부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학생 당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흔히 ‘대학생으로 추정된 연령대’의 당원들에게 전부 전화를 걸어 “대학에 재학 중이냐”는 사실 상당히 무례한 질문을 직접 던져야 합니다. 게다가, 대학은 서울시로 다니나 주소지는 본가로 설정해둔 이들은, 타 광역시도당원이기에 아예 조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시스템적 문제의 개선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