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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건강위원회] [칼럼] 이 연극을 끝내고 새로운 막을 올립시다


10년 만에 MBTI가 다시 유행하고 있습니다. MBTI별 성격, 연애, 이상형, 이제는 연봉 상승법까지 여기저기에서 보입니다. 그전에도 어떤 색깔 혹은 동물을 고르면 당신은 이런 성격이라는 심리테스트가 항상 유행했었지요. 이렇게 보면 사람이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마음에 대해 늘상 궁금해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고, 탈레스와 히포크라테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려면 책을 써도 모자랄 것이기에, 최대한 압축해서 중세에서부터 ‘마음’과 ‘정신장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훑어보고자 합니다.

마음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당연한 상식이 되었지만,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지는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사람들은 마음이 심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고, ‘나는 누구인가’는 아주 오래된 철학적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는 않지만 분명히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철학자들은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아픈 사람, 즉 정신장애인은 ‘귀신들린 자’ ‘마녀’ ‘사탄숭배자’로 생각하고 배척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음이 아픈 이를 도와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성의 합리성이 숭배되던 근대에 정신장애는 ‘비이성’의 극치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도리어 이 광인들을 정상인들로부터 분리하여 격리, 수용해야한다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장애인들을 쇠사슬로 묶고, 피를 뽑고, 관장을 하며 때로는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등의 고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프로이트가 마음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발전시키고 프랑스에서는 인도적인 정신장애 치료를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악마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제는 뇌를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까지도 정신장애는 특수한 이에게 내려지는 형벌과 같았고, 그렇기에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일반인들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사회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1978년 바잘리아법1)이 제정되기 전까지 정신장애인들을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법이 있기 전까지 이들에게는 투표권도 없었고 스스로가 받을 치료를 선택할 권리도 없었습니다. 1978년이 되어서야 정신장애인은 간신히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겨우 1995년에서야 <정신보건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각종 정신장애인 지원 시설이나 정신건강센터에 대한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법 제정시기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아직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곳곳에 정신건강센터를 만들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이탈리아에 비하면 한국은 오히려 정신병원을 늘리고 있는 추세이니까요. 게다가 당장 폐쇄한다고 한들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기반이 될 지역사회기관, 이를 강하게 추진할 행정가와 입법가가 없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마음’과 ‘정신장애’간의 간극이 굉장히 넓습니다. “오늘 좀 우울한 것 같아”는 말은 그나마 편하게 하지만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을 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폐쇄병동에 2주 입원했었다”같은 말은 저조차도 상담실에서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신장애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인데, 마치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인식합니다.

조금 더 하자면 ‘정신장애’와 ‘사회’와의 간극도 굉장히 넓은 듯합니다. 무려 100년 전에 이미 프로이트가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신경증과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16년째 자살률 1위인 나라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혹은 ‘정신이 이상하다’는 주제는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서만큼은 모두가 ‘정상’으로 보이고자 거대한 연극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MBTI가 이토록 유행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을 안다는 건 사실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제입니다. 그건 내 마음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까지 알게 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런 자신을 변화시킬 의무까지 가지게 된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내포된 의미가 사람들에게 거의 즉각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다, 사회부터가 나서서 아주 적극적으로 ‘마음’을 개인의 문제로만 해석하라고 합니다. 의지가 부족하고 나약하다며 힐난하는 정도를 넘어 병동이든 교도소든 구분 없이 감금해야 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저는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정신장애인’이라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이 연극에서 쫓겨날 텐데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내담자를 만나러 정신과로 출근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받아 다시 당으로 돌아옵니다.
 정신장애와 마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대다수인 지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낙인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은 항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변합니다. 일주일에 단 1시간, 단 한 명이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이 변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가능성을 최대한 오래 열어두기 시작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저는 정신과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의 변화를 보며 그런 상상을 하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병리적인 대상이 내담자가 아니라 체제라면, 상담자는 체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0년 전 학부 수업에서 이런 문구를 접했습니다. 흔히 심리학이나 정신의학과 같은 분야는 개인의 내적 문제에 치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진보정치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구조의 중요성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제 세계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격리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정신장애는 곧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19년 처음으로 매드프라이드(Mad Pride)2)가 열리며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며 회피해왔습니다.
이제 정의당이 체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진보정치가 응답해야할 때입니다.

모두가 ‘정상’이어야만 하는 연극은 이제 그만 끝내고 새로운 막을 올립시다.


 
2021년 5월 13일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 정채연



1) 정식 명칭은 180호 법으로,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사회전반의 개혁을 주도한 68혁명의 지도자이자 정신의학자인 프랑코 바잘리아의 이름을 따 바잘리아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 정신장애 당사자, 정신의료 서비스 생존자 그리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친’ 혹은 ‘광기 어린’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자 만들어진 축제입니다. 1993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아시아에서는 2019년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 앞으로 4주 간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에서 정신건강을 주제로 총 8회의 글이 발행됩니다. 당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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