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자료] 강은미 비대위원장 외, 성소수자위원회 긴급기자회견 모두발언
[보도자료] 강은미 비대위원장 외, 성소수자위원회 긴급기자회견 모두발언


일시 : 2021년 3월 5일(금) 14:00
장소 : 국회 본관 223호


■ 강은미 비대위원장

어릴 때부터 군인이 꿈이었던 스물세살 청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된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너무나 죄송합니다. 

변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계속해서 군에서 복무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육군은 심신장애 판정을 내리고 강제 전역시켰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국가가 내린 심신장애 판정에 이 청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부당함을 호소했습니다. 

열흘 전에도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대표 트랜스젠더 김기홍 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은 더 많을 것입니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다"
웹툰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이 트랜스젠더 친구에게 한 대사입니다. 

차별과 혐오, 편견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적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차별과 혐오라는 가해를 묵인하고 방치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또 다른 변희수가, 김기홍이 오늘도 '나'라는 존재로 그대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늦출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정치권에서 '보지 않을 권리'를 말하며 혐오와 차별을 방치하며 오히려 선동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혐오와 차별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보호막입니다. 누구나 차별받을 수 있고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웃을 위한 것이고, 내 가족을 위한 것이고,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더 이상 나중은 없어야 합니다. 더 이상 다음은 없어야 합니다. 정치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차별받고, 혐오를 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편견, 차별, 혐오와 맞서 싸우는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더 이상의 죽음이 이어지지 않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주시기를 촉구합니다.


■ 장혜영 의원(차별금지법제정운동본부 공동 본부장)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소셜미디어 창에 무심하게 쓰여있는 이 기본문구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정말,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꿈을 꾸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변희수. 직업은 군인입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한 사람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변희수 하사는 꿈꿨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한 사람의 군인으로 살아가기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부사관 양성 특성화고를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마침내 군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갖춘 탱크조종수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자 군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꿈을 이루는 데 그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녀에게 쏟아진 부당한 차별이었습니다. 그녀의 성별은 기갑부대에서 전차를 모는 그녀의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군의 차별적인 시각은 한 군인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정당한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했습니다.

그녀는 이 부당한 차별에 맞서 자신을 걸고 싸웠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녀의 정당한 싸움에 함께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UN도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는 그녀를 외면했습니다. 누구보다 앞장서 모든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야 할 국회는 그녀에게 쏟아진 부당한 차별을 외면하고 방치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들은 일부 기독교 세력이 조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자기 기득권 강화의 도구로 적극 이용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자신과 모든 시민들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혐오에 맞서 힘껏 싸우던 용감한 그녀를, 우리는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변희수 하사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변희수 하사의 싸움은 여전히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차별과의 싸움입니다. 차별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입니다. 이 폭력은 현존하는 위험입니다. 차별금지는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현존하는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시급한 국가적 책무의 문제입니다.

당면한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야 할 엄중한 책무를 국회는 지금껏 외면해왔습니다. 그 대가가 바로 지금의 현실입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이 죽음에 국회는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는 차별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시민들의 소중한 꿈을 짓밟고 일상을 옥죄며 목숨마저 앗아가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여러 부당한 차별을 법적 금지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차별로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전에 차별을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규정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이 담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21대 국회의 동료의원 여러분께 촉구합니다. 지난 2007년을 시작으로 14년간 무려 8번이나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아직도 단 한번 소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함께 나서주십시오.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차별받는 사람들에게도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일깨워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차별금지법의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초당적 의원 모임>을 시작합니다. 그 어떤 시민도 부당한 차별로 인해 두 번 다시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보편가치에 공감하시는 모든 의원님들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청드립니다. 의원회관 516호. 저의 의원실 앞에 변희수 하사를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있습니다. 고 변희수 하사가 꿈꾸던 평등과 존엄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청년들이 마련한 공간입니다. 21대 국회의 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의원회관을 자신의 일터로 삼고 계신 여러분께 이곳을 찾아와 함께 변희수 하사를 추모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모든 변화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변희수 하사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지키지 못했다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해주십시오. 그녀에게 가해진 부당한 차별에 함께 분노하고 차별에 맞선 그녀의 싸움을 기억하며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변화를 위해 행동해주십시오.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그녀의 죽음조차 혐오와 차별로 더럽히는 이들과 단호히 맞서주십시오.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게 느껴진다 해도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우리가, 바로 존엄과 평등의 미래를 여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차별의 오늘을 이겨내고, 반드시 살아서 평등과 존엄의 내일로 나아갈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021년 3월 5일
정의당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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