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뉴딜', 노동은 울고 자본은 웃는다
[장석준 칼럼] 이게 '뉴딜' 정부의 노동 입법인가?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1937년 1월, 미국인들의 눈길은 온통 미시건 주의 플린트 시로 쏠려 있었다. 그곳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은 벌써 수십일 째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공장 안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년 12월 30일부터 집에 가길 한사코 거부하며 공장 안에 머물고 있었다. 2년 전에 결성된 자동차노동조합(UAW)이 GM 사측에 맞서며 구사한 새로운 파업 전술인 '공장점거(sit-down) 파업'의 일환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GM이 자신들이 속한 산업별 노동조합인 UAW와 전국적 단체협상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측의 입장은 완강했다. 사업장별 교섭은 가능해도 미국 전역의 GM 공장들을 포괄하는 전국 교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UAW가 출범한 해에 통과된 새 노동법(이른바 와그너 법)은 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단체교섭을 장려했지만, 미국 최대 완성차업체 GM에게 그런 법 따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사측은 공장 점거가 불법이라는 점만 부각시키며 공권력 동원을 요청했다.
경찰력만으로는 이미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찰이 무장 구사대와 함께 공장 문 앞에 버티고 있었지만, 노동자 가족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문 너머 파업 대열에게 음식을 전달했다. 실탄까지 쏘며 해산하려 했지만, 분노한 파업 지지 시민들만 늘리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은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주방위군 지휘권은 당선된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된 신임 주지사 프랭크 머피에게 있었다. 대통령과 당적이 같은 민주당원이고 할아버지가 아일랜드 독립투쟁 중에 목숨을 잃은 가족사를 지닌 머피는 플린트 시의 실제 주인인 GM과 파업 노동자 사이에서 진심으로 고뇌했다. GM 경영진과 주주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와 군을 출동시키라고 협박했고, UAW가 속한 새 노총 '산별조직위원회(CIO)'의 위원장 존 루이스는 시내 호텔에 투쟁 본부를 차리고는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손자가 아니면 누가 노동자 편에 서겠냐며 압박했다.
2월이 되자 마침내 주방위군이 출동했다. 군대는 점거 중인 GM 공장을 포위하고 정문을 향해 기관총을 설치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측은 군의 공장 진입을 요구했지만, 머피 주지사는 더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공장을 포위한 주방위군은 사실상 노동자를 위협하기보다는 회사의 명령만 떨어지면 총기로 무장한 채 공장에 진입하려던 무장 구사대를 막는 역할을 했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공권력이 자본이 아니라 노동 편에 선 것이었다. 결국 GM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점거 파업 44일째인 2월 11일에 사측은 UAW 지부를 인정하고 전국 수준에서 UAW와 협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공장점거 노동자를 보호한 뉴딜 정부
실은 머피 주지사 혼자만의 결단은 아니었다. 자본의 나팔수인 주류 언론의 거센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방위군의 공장 진입 명령서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꺼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연방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 덕분이었다. 당시 연방 대통령은 바로 뉴딜 개혁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였다.
연방정부 안에서도 공장점거 파업을 무슨 수를 써서든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루즈벨트의 보수적인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 존 낸스 가너는 아예 연방군을 보내 파업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가너 부통령이 마침내 그의 반대편에 서서 여당 안에서 뉴딜 반대를 선동하게 되는 사태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연방 정부는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피 주지사의 결정은 이러한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한 셈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뉴딜 개혁의 핵심에 놓인 거대한 결단을 확인할 수 있다.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 소득이 상승하고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됐으며 미국 자본주의의 장기 번영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임금 소득이 오르기 위해 선행돼야 했던 심각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개선되려면, 우선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의 균형이 바뀌어야 했다. 자본 쪽으로 너무도 기운 저울의 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루즈벨트 정부는 이를 실제 단행했다. 산업별 노동조합 시대를 연 와그너 법을 제정했으며, 새 노동법 아래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의 힘을 거침없이 구현하려 한 CIO 소속 노동조합들의 공장점거 파업을 막지 않고 오히려 경영진이 산업별 단체협상장에 나오도록 압력을 넣었다. 덕분에 노동 진영은 안정된 일자리와 괜찮은 임금을 따낼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UAW 조합원 수는 플린트 파업 승리 이후 1년만에 3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 때문에 뉴딜이 지금도 '혁명적' 개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럼 '한국형 뉴딜'을 내세우는 대한민국의 현 정부는 어떠한가? '뉴딜'을 간판으로 내세우니 만큼 현 정부와 여당 역시 자본 쪽에 기울어진 저울의 방향을 고치려는 단호한 의지로 충만했다고 볼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도 노동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루즈벨트 정부의 와그너 법처럼, 집단적 노사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입법안을 내놓았다. 2020년 6월 30일에 정부가 제21대 국회에 제출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사업 및 사업장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의 기업별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사용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과 성실하게 교섭하여야 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강화하려는 입법안인 것만 같다. '한국판 와그너 법'인가?
그러나 이런 기대는 곧 산산이 무너진다. 개정안은 "단체협약에는 2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는 기존 법률 제32조1항을 "3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고 바꾸자고 한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함으로써, 사측이 노동조합의 새 단체협상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1년 더 늘려 주었다.
게다가 개정안은 "쟁의행위는 ...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는 기존 법률 제42조1항을 "쟁의행위는 ...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바꾸자고 한다. "전부 또는 일부"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점거 금지를 보다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생산 시설의 일부에서 농성을 벌이더라도 '점거'로 규정돼 금지 대상이 된다.
'뉴딜' 하겠다면서 노골적으로 자본 편에 서는 정부
원판 뉴딜 정부는 공장점거 파업을 응원하면서 개혁을 밀어붙였는데, 한국형 뉴딜 정부는 공장점거 파업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기존 법률이 규정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형 뉴딜'은 박정희 정권의 '한국식 민주주의' 이후 최대의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만 느껴진다.
이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들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고 한다. 공장점거가 주로 대기업 노동자들이 구사하는 파업 행태이기 때문에 이 개정 내용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에만 해당될 뿐 다수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과연 '과도하게' 힘이 센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도 여전히 공장점거 파업 같은 투쟁 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약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사측이 단체협상장에 나오게 만들기 위해 점거 파업 같은 수단에 더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파업 전야>만 봐도 빤한 사실이다. 그 영화에서 중소기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극악한 탄압에 맞서 마지막으로 기대는 수단이 다름 아닌 점거 파업이다. 정부 개정안은 지금도 이런 투쟁 방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 이미 강력한 노동조합과 오랜 역사의 단체협약을 지니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에게서 이 최후의 무기를 빼앗겠다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개정안에는 노동조합 활동의 폭을 넓혀주는 조치들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따낸 만큼 경영계도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게 협상의 상례가 아닌가? 정부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시대 리버럴 정권에게서 이런 허구의 평등 외에 달리 뭘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직도 '촛불 정부'를 입에 달고 사는 정부-여당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한때나마 '소득주도성장'을 외쳤던 정치 세력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한국형이든 뭐든 '뉴딜'을 간판으로 내건 정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본에 대해 노동이 여전히 압도적 열세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전 세계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힘을 과시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의 막강한 우위 속에서 분파적 생존을 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다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들까지 가세하는 노동 진영 전체의 대다수는 비슷한 발전 수준을 보이는 자본주의 국가 어디와 비교해도 불리한 세력 균형 아래 놓여 있다. 이를 풀지 않고 무슨 사회 개혁이고, 무슨 '뉴딜'인가?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런 한국의 노동자들에게서 공장점거라는 투쟁 형태마저 압수하려 한다. 1987년 민주 항쟁 직후에 잠시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동자들이 외마디 함성을 토하는 수단이 됐던 그 무기마저 박탈하려 한다. 아울러, 하다못해 '촛불'이나 '뉴딜' 같은 텅 빈 상징마저 저들 것으로 독차지하려 한다.
쓰다 보니, 도무지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혁명'과 '항쟁'을 입에 달고 살던 이들이 세운 정부가 하는 일이 이 모양이니 당신들이 쏟아냈던 그 말들이 현실이 돼 돌아오는 꼴을 보리라고 써야 하나, 아니면 그 따위 법률안을 정말 통과시킬 셈이라면 더는 '촛불'을 들먹이며 진영을 가르는 짓은 하지 말라고 써야 하나?
그저 머릿속을 맴도는 제헌국회의원 조봉암의 외침 하나를 인용하며 끝맺어야겠다. 제헌헌법의 자유권 조항마저 저들 입맛대로 농단하려는,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먼 선조격인 한국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조봉암은 이렇게 호통 쳤다.
"이 천하가 언제나 너희 천하가 될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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