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법무부에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본인은 이미 남은 공직생활의 사활을 걸었습니다.
1.먼저 드리는 말씀
저는 오늘 교정조직의 여러 지방청의 모집공고를 보고, 본인의 도서출간을 위해 조각조각 끄적여 둔 한 부분이 떠올라 그 부분을 발췌하여 많은 선후배님들의 조직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한 동참의지 내지는 공감과 도움의 요청, 또는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갈 동료들의 고뇌에,사고의 기준이나 예시를 제시하고자 이를 게시합니다. 어찌 보면 이제까지 수많은 이들이 주장한 내용의 반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의 반복은 사사로이 느낄 실증여부를 떠나 공히 새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공무원이라는거대 집단 모두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분열이 아닌, 오로지 조직에 대한 발전입니다. 가끔, 진실로 생산적인 동료들의 의견에 대해서, 조직의 분열을 거론하며, 글쓴이들의 고민의 시간을 폭력적으로 손쉽게 매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조직의 분열이 아닌 글을 쓰는 이에 대한 당신의 분노일 뿐이며, 자신의 위치와 생각의 깊이의 차이를 망각하여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논쟁하는 기초된 사실 또는 가치의 출발점을 잘못 판단하거나,1차 방정식과 고차 방정식처럼 특정 변수의 존재를 망각하거나,자신과 글쓴이가 가진 CPU의 해상도 차이를 간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저는 오로지 미래의 조직을 위한 글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2. 논점의 일탈로 비롯될 반론
저는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시 세평의 고려여부의 옳고 그름을 논의 하는 게 아닙니다.우리는 평소에도 항시 평가에 노출되고 무의식적으로 상시적인 수정 반영을 반복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는 실제로 개인적인 느낌을 기초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러한 평가의 중요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인 만큼 일반적인 사실이고 진리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를 세평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처럼 곡해시키거나 오도하여 비판 되어 져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아직도 인사권자가 세평을 신경 쓰지 않고 이상한 사람을 뽑게 되면 책임질 거냐 라고 댓글을 쓰시려 하신다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십시오.
3. 하고 싶은 말
인사공문에 선정방법에 명시한 내용은 '업무능력과 세평' 입니다.
제 이야기의 핵심은 굳이 이것을 표면적으로 명시하는 행위에 대한 의문에서의 출발입니다.여기서 인사권자가 공시한 세평은 통상인의 상념으로 충분히 일반의 평균치를 기대할 수 있는, 상시적으로 노출되어있는 요소입니다. 저는 그것을 굳이 표면적으로 공시한 인사권자의 기준의 세평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자 합니다.
4. 본인이 생각하는 세평의 의미
인사라는 과정에서 저 같은 사람은 필터링해야 함은 직장이라는 시스템 이전,인간사회에서도 이미 일반사람들의 직관만으로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기능을 합니다.게다가 저희 조직 구성원 대부분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갖고 있으며,실제로 집단의 사고에 있어 의견교류가 활발한 편입니다. (단, 수평적인 의견 교환에 한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늘 생각하는 품위유지, 예의, 도덕성, 인간성, 사회성 등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을 포함 할 수 있는 세평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를, 공히 명시한다는 것은 인사시스템에게 들려지는 이야기, 다시 말해 인사 시스템 내부에서의 주관적 해석을 교정조직의 승진경로에 대한 이정표로 삼겠다라는 공언입니다.
굳이 이전 시대에 있었던, 구인 시 ‘용모단정, 키 160이상’ 이라는 저질적인 내용을2019년 현 시점에 구인광고에 적시 한 것과 같은 일인까요?그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5. 세평에 대한 1차원적인 생각
이전 이 글의 기초된 세평에 관한 글을 작성하였던 몇 년 전, 워낙 조직에 1차원적이고 유치한 문제가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것 역시 아주 조악한 이유들,내가 왜 떨어 졌느냐 라고 따질 때를 대비해 만들어 둔 조항이거나, 무능한 관리의 순간적인 실수에 대한 후임자의 무분별한 답습, 또는 인사권자에 대한 충성의 약속이행의 담보 등을 생각하며 출발 하였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이 터프한 이유로만 유지가 되고, 그것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지지 않고 인습하듯 관행화 된 것이라면, 이런 인사시스템은 애초에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 그 정도의 인사시스템이라면 이미 그 존재의 의미를 잃고 실질적인 기능을 잃었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조직은 무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그것에 대한 내부적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세평이라는 것이 조직 내에서 일련의 작용을 하고 있음이고, 그것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6. 세평의 역할
첫째, 세평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올리는 것은, 우선 그 주관적 색채가 강한 단어에,객관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당위성과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부여합니다. 공고문에 명시하여,인사 결정 과정에 필요한 절차에 지극히 주관적임에도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고, 개입된 주관은 시작부터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입니다. 의도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저는 이것은 절차적 정당성에 오히려 의심을 품게 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둘째, 세평의 평가는 조직 전체의 평균의견인 냥 포장됩니다. 결코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주장 할 만 한 범위의 표본 집단의 의견 수렴과정은 거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에도 애초에 가능성을 배제하고, 권한 있는 자들이 한정한 범위 내에서,또 다시 그 중 취사선택한 부분이, 우리 조직의 합리적인 최소 표본치의 평균 여론이라고 포장되어, 조직 내부의 약속인 것처럼 일반성을 부여하여 비판 없이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근거로 사용되어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평이라는 단어는 인사권자를 중심으로 한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의 주관적 평가를, (물론 그것이 1인의 의견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이 실로 최선이 아닐지언정, 적어도 개별적으로 합리적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한 오차범위 내의 평균여론이라는 해석을 유도해, 일련의 법령이나 약속처럼 객관성을 갖춘 의사결정으로 그것에 대한 일반화의 근거로 사용됩니다.
7. 세평의 파급
이것이 무서운 것은,
첫째, 그 결정은 다시 여론 (그것이 유사 여론임에도) 의 한 축이 되어 그것을 기초로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산 하며, 서로를 보충하면서 두루두루 사용됩니다. 결코 객관성을 부여할 수 없는, 한 낯 소수의 가치판단이었음에도, 절대 다수인 범위 외의 대다수들은 그것에 대한 객관성과 일반성을 비판 없이 수용하며, 자기검열의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또한 그 과정이 스스로 직접 데이터화 되고 누적이 되어 판단주체(세평 생산자)의 의도를 지속적으로 뒷받침 하게 되고 필요시 세평으로 다시 사용될 일종의 만능 프리미엄 툴 이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무지를 전제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요점은,위에서 밝힌 저를 포함한 다수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고, 경제적인 개개인은 조직의 평균의 분포 값에 대한 믿음이 당연할 만큼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무원이 직업공무원제나 계급제도에 대한 의심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 일선의 세평 생산자들에게 일정한 심리적인 지위를 부여합니다. 일정한 상위 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의견에, 저와 같은 다수들의 의견보다 가산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앞날을 좌우할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이 그 생산자들에게 있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인사시스템이나 주변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미래의 권한과 특권을 암시하는 동시에 현재의 권한도 준 것이죠. 일종의 권력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특이한 것입니다. 애초에 권력집단이 후계자를 정해 준다라기보다 하부 조직에서 적당한 그 위치를 알아서 구성하면, 일정한 권한을 내려준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쉽게 말해 알아서 충성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궤변일 수도 있습니다만 후계구도를 정하는 모든 제도하의 구성원은 달리기의 시작점부터 인간을 바라보고 뛰도록 설계 되어있습니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 후계자 구도에서는 성과나 능력보다, 인간적인 이해관계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기존 권력구도에서 볼 수 없는 권력의 핵심으로의 집중이 아닌, 권력의 근처를 향한 일정 집단들의 자발적 노력의 결과 역시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셋째, 세평의 생산자, 취급자, 다시 말해 인사권자와 그의 일선 인력 풀의 주장들은 언제든 집단의 의지로 포장 되어 확대되면서, 그 밀도는 의도적으로 약해집니다. 그것은 다시 권한 있는 자에게 언제나 유리한 방향으로 집중시켜 해석될 여지를 남겨주고, 그에 따른 신뢰도의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우려나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조직, 문제의 정점인 권한과 책임의 조화, 또는 일치의 문제인 것이죠.
이러한 세평이라는 단어를 공문서에 적시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대단한 용기입니다.어찌 보면 오마카세입니다.
8. 반성 우리 조직이 능력 중심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저 역시 최근 제 주변 이모 교위를 만나고, 그의 식견, 도덕성, 지식, 표현력, 통찰 등에 감탄하고, 인생을 통틀어 저런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인사시스템이 실질적 기능을 한다 치면, 지금처럼 만년 야간근무자가 아닌 자연스레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어야 하는 그를 보며, 저의 주제에 맞지 않게 인물이 너무 아깝고 우리 조직의 손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 하지만 이번은 충격적인 수준의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현 제도 하에서 개개인의 능력차는 결코 권력중심과의 거리에 비례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예를 들자면, 오로지 일선에서 야근만 10년 한 본인의 역량이, 위와 같은 핵심적인 업무를 30년 담당한 누군가와의 역량과 동일 이상이거나, 오히려 본인의 잠깐의 직관이 다수의 마라톤 회의의 결과물보다 무한대로 뛰어날 수도 있다는 소립니다.우리는 이미, 능력을 이유로 비난을 해서는 안 되는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것은 반대로 일선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알아야겠죠.
하지만, 실제로 저 역시 그래왔고 우리가 간과해 왔지만 매우 중요한 것은,우리 조직은 현재 저들의 노력으로 쌓아 올려왔습니다. 사실 상 그 분들이 대부분의 많은 일 (업무의 중요도나 영향력의 상하를 계량화 하여 정책이라고 부를 수준의 일)을 해왔고, 단적으로 말해 저와 같은 다수들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되 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 들은 우리가 술자리에서 퇴근시간이5분 늦어짐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욕설과 잔을 기울일 때, 가족과의 행복을 뒤로하고 회사에서 쌓여만 가는 업무를 처리했을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을 위시한 불만을 싸지를 때, 당신의 도덕적 기준의 파괴를 인내했을 것이며, 그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할 경우 조직의 분열은 감정적인 옷을 입게 되며,실제로 큰 분열을 일으킵니다. 해서 결코 역량의 탓을 하지 않아야 하며,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조직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직을 위한 길입니다.
9. 우리가 가야 할 길
적어도 세평이라는 오만하고 구시대적인 단어는 빼야 합니다.쉬운 말을 길게 쓰냐 하실 분들, 우리들은 쉽다고 생각하지만 세평을 기획한 이는 꿈에도 모를 소립니다. “저 공문을 밖에 사람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창피할까.”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그 세평을 기획한 사람보다 뛰어나다. 제 이야기에 동의하신다면 적어도 저는 기획자보다는 뛰어나신 분으로 여기겠습니다.우리가 이러한 점을 조언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세평이라는 항목이 없어져도 그것이 해온 기능은 유지될 것입니다.이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이것은 본인 자신에서부터 사고와 표현의 해상도를 늘려 나가자면 충분히 가능합니다.또한 그를 벗어나는 순간 수많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집니다.
10. 맺는 말
우리들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개인을 희생시킴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하지만, 그것이 본인이 속한 다수, 단체의 이익을 추구함일 경우에는 관대함을 보입니다.게다가 그것에 대한 가치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갈수록, 출구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무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폐쇄된 조직일수록 파동이 큽니다.하여, 태생적으로 폐쇄된 조직인, 의견의 상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계급제도에 있어 첫 번째로 능력위주를 부르짖게 되고,두 번째로 그 위치, 권한에 따른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그러한 위치의 인사를 세평으로 평가하겠다고 생각한 기획자는 그 세평의 생산자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 확장하기를 바랐을까요.당신과 당신이 좇아온 권한, 그리고 당신을 좇을 미래의 기획자의 직관까지가 아닐까요.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지속적으로 후배들의 미래에 미루는 것이 아닐까요.누군가는 끝내야 할 일이지만 귀찮아서 그냥 두었던 이 일을 본인이 한 번 고민해 봤습니다. 출간 하기전 세평이라는 단어가 없어질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