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노동인권안전특별위원회, 고용노동부의 불법적인 52시간제 유예조치에 대한 법적대응 경고 기자회견문
일시: 2019년 11월 20일 오후 2시
장소: 국회 정론관
정부는 삼권분립도, 노동 존중 정신도 모두 저버린 보완대책 당장 철회하라
지난 18일, 정부는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입법 관련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시행규칙 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보완대책’은, 정부 스스로 ‘보완’의 외피를 쓴 채 헌법을 위반하고 국회의 입법 기능을 침탈하겠다는 선포에 다름 아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자던 정부였다.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오랜 사회적 논의와 여야합의로 이루어진 법률개정이었다. 연장근로시간의 상한규정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법률개정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 끝에 이루어졌다.
장시간 노동은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고 과로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어왔다. 임금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인 근로시간은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라는 헌법의 정신이 제대로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정부의 보완대책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주52시간을 초과하여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사유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고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은 ‘특별한 사정’에 대하여, “사업장에서 재난이나 재난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인간 존엄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정하도록 한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석, 적용하기 위한 장치이고, 이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정 당시부터 같은 내용으로 유지되어왔다.
정부의 대책에 의하면, ‘특별한 사정’에 일시적인 업무량 증가 등 ‘경영상’ 이유를 포함하여 인가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는 사용자의 ‘경영’에 관한 사유로 헌법의 정신을 반영한 근로기준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더욱이 인가 여부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근로자는 인가 여부 결정 과정에서 사업장의 상황에 대해 사용자와 대등하게 입장을 밝히기도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특별연장근로 시 근로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정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받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근로자가 연장근로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것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뿐만 아니라 특별연장근로에 대한 인가를 받을 경우, 해당 근로시간의 상한은 존재하지 않아 사실상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의 강제가 가능하고, 사용자에 대한 제재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정부의 보완대책은 입법 기능에 대한 침탈이다. 개정법률의 취지는 실질적으로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를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데 있다. 그러나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경영상 이유’를 예외적 인가 사유로 추가하게 되면, 오히려 주 52시간 상한제를 명문화하기 전보다 특별연장근로를 훨씬 폭넓게 허용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이는 주52시간 상한제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국회의 입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처사로,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하여 행정입법이 국회의 입법 위에 군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계도기간 부여는 또 어떠한가. 개정 근로기준법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법 시행시기를 달리하여 300인 이상 사업장은 법 개정일이 아니라 2018년 7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법률을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서 시행시기를 사업장 규모별로 차등을 둔 것은 규모에 따른 준비기간과 계도를 위한 기간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미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두 차례 유예기간을 부과해 법 시행을 9개월 늦췄다. 법률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임의로 법 적용을 유예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50인 이상 300이 미만 사업장에 대해 2020년 1월 1일 법 시행일을 초과하여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는 것은,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국회가 정한 법 시행일을 정부가 늦추겠다는 것으로 심각한 권한 남용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 개정과 시행으로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를 정착시키고자 했던 개정 법률을 행정부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부에 경고한다. 더 이상 헌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존중의 정신에 역행하고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도입의 뜻을 퇴색시키지 말기를 바란다. 정부가 계도기간 부여라는 명목으로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법 적용을 미루고자 한다면 정의당은 당사자들과 함께 법의 엄정성을 훼손하는 정부당국을 직권남용으로 고발조치할 예정이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를 위한 시행규칙 개정을 강행한다면, 이는 행정입법을 통해 국회의 입법기능을 침탈하는 행위이므로 시행규칙의 위헌?위법성을 다투는 모든 법적인 대응을 통해 정부의 과오를 폭로해낼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이름으로 법적 근거도 권한도 없이, 노동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반노동정책을 중단하고 ‘보완대책’을 당장 철회하라.
[붙임]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관련 정부 보완대책의 법적 문제점
※ 문의 : 최용 정의당노동본부 선임국장
2019년 11월 20일
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 권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