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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토론게시판

  • 정의당 학습소모임 “정의당 좌표 찾기(동대문구, 진보정당사)” 6회차 모임




*정의당 경희대학교 학생위원회와 공동으로 강연을 열었습니다. 학생, 지역 당원, 학위원 등 여러 분이 함께하셨습니다.

장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일시: 2019531일 금요일 1830- 21

 

참석자: 김현근, 남우석, 임호빈, 최재식

 

주제: 진보정당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연사: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

 

학습 내용

- 진보정당이란 무엇인가

(1)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정당

(2)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중심에 놓는 정당

(3) 보다 근본적인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정당

(4) 진보의 다양성과 진보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정당

진보정당은 이 모두를 일정하게 포괄해야 한다.

 

-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와 그 의미

(1)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진보정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2) 과거의 논쟁들을 통해 진보정치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3)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를 분열의 역사가 아닌 역사발전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4)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위해 공부한다.

 

- 고민할 주제들

: 진보정당의 민주주의, 노동정치, 진보대통합논쟁, 야권연대, 진보의 재구성, 진보정당 성장전략, 사회주의 논쟁과 민족주의 논쟁, 사회운동정당이냐 의회주의정당이냐의 선택 등

 

- 진보정당 운동의 전사

(1) 1950년대 진보당: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 주창

(2) 4.19 혁명 즈음 혁신계

(3) 5.16 군사쿠데타 이후 60-70년대 진보정당운동의 암흑기

 

- 80년대 진보정당 운동사

(1) 박정희 사망 이전 사회운동의 중심은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러나 5.18 광주민중항쟁과 근대화를 거치며 자본주의가 이식되는 중 성장한 노동자 계급의 형성 등을 계기로 80년대 들어서 한국 사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2)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서 노동자와 민중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1985년 서노련, 1987년 인민노련의 등장. 진보정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3) 19876월 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서노련은 후에 전노협, 업종회의, 민주노총 등으로 나아간다. 인민노련은 백기완선거대책본부로 들어가 87년 대선에 참여하여 민중후보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백기완 선생이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노태우가 집권하게 된다. 인민노련은 이때 둘로 나뉘어 한 축은 1988년 민중의 당을 결성하고, 다른 한 축은 계속해서 인민노련 활동을 한다. 민중의 당은 1991년 지선을 거치며 해산된다. 계속해서 인민노련에 남았던 이들은 1991년 한국사회주의노동당(한사로) 준비위를 결성한다.

(4)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1989년 출범한다. 이 단체는 1987년 이후 활발해진 부문운동의 결합체로, 전선체 운동을 전개한다. 내부에서 전선운동과 정당운동 중 어느 노선을 택할 것이냐는 논쟁이 시작되고 이들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1991)과 민중정당건설추진위로 갈라진다. 민중정당건설추진위 내부에서도 독자노선과 야권통합노선간의 논쟁이 생기고, 일부는 제도권 야당으로 들어가고, 일부는 1990년 민중당을 창당하게 된다.

 

- 90년대 진보정당 운동사

(1) 90년대 초반 진보계열에는 세 축의 운동이 전개된다. 한 축은 전국연합, 한 축은 민중당, 한 축은 인민노련에서 이어져 온 한사로 계열이다. 전국연합은 그대로 이어진다. 민중당은 91년 지방선거에서 한 명을 당선시킨다. 한사로는 1992년 한국노동당을 발족시킨다. 이후 한국노동당과 민중당이 민중당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하고, 1992년 총선에서 해산을 당한다.

(2) 민중당이 다시 분열한다. 일부는 제도권 정당으로 들어갔으며, 남은 사람들은 진보정치추진위를 결성하여 1992년 대선에서 백기완 선생을 후보로 내세우고 23만여 표를 얻는다. 이들은 다시 진보정치연합을 결성하지만, 유의미한 세력은 되지 못했다.

(3) 1993년 이후의 운동은 전국연합, 민주노총, 진보정치연합, 정치연대 이렇게 네 축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모든 사회운동의 중심은 민주노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9612월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 반발 투쟁의 법적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고, 제도권정치로의 진출을 모색한다. 그리고 1997년 대선에 노동자 후보를 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치위원회를 구성한다. 운동의 다른 축들도 여기에 동참하게 된다.

(4)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된 진보운동의 축들은 국민승리 21을 만들어 1997년 대선에 권영길 후보를 낸다. 권영길 후보는 30만 표를 득표한다. 다음 해 열린 지방선거에서 국민승리 21은 기초의원 18, 광역의원 2, 기초단체장 3명 등을 당선시킨다.

(5)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된다. 전국연합은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 00년대 이후 진보정당 운동사

(1) 00년대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 민주노동당은 시간이 흐르며 일정하게 성장하였지만 그 속에서 당내 논쟁은 심화되고 있었다.

(3) 2001년 군자산의 결의를 계기로 전국연합 등의 계열이 민주노동당에 결합하기 시작한다.

(4)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급식 정책을 띄우고 큰 반향을 얻는다.

(5)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2004년 총선 이후 민족적 관점을 가진 세력이 세를 불리면서 북한 문제와 당내 민주주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6) 2006년 지선과 2007년 대선 사이 당내에서 연정과 협치 논쟁, 일심회 사건 등이 일어나고, 특정 세력이 지지하던 권영길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당내 패권주의 논쟁과 다수파의 전횡 문제가 드러난다.

(7) 결국 2008년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나뉜다.

(8) 이후 진보신당이 다시 진보신당 잔류파와 통합연대로 갈린다. 통합연대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2011년 통합진보당을 창당한다.

(9) 통합진보당도 2012년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나뉜다.

(10) 이후 진보신당은 사회당과 통합하며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5년 노동자정당추진회의가 결성되고, 노동정치연대가 되어서 노동당 일부, 정의당, 국민모임과 함께 정의당으로 모인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해산되었다. 이후 통합진보당 계열의 세력은 민중당으로 모인다.

(11) 현재 진보정당으로 불리는 정당으로는 정의당, 노동당, 사회변혁당, 민중당, 녹색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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