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청년들, 불의한 경제에 맞서
정의로운 산업정책을 고민하다
한국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산업, 과학기술 정책 (교재학습)
교재 : 이정동 - 축적의 시간
장소 : 서울대학교 사범대 강의실
일시 : 2019년 5월 2일 저녁시간
두 번째 모임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정동 교수가 저술한 책 '축적의 시간'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이정동 교수가 현재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비상근)의 자리에 오른 만큼, 이 책에서 제시된 한국 산업구조의 현실과 차후 필요한 산업정책의 방향성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및 앞으로의 정책적 패러다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서울대 공대의 교수들을 이정동 교수가 인터뷰하는 내용을 정리한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책의 구성은 이정동 교수가 인터뷰의 방향성을 총평한 부분, 그리고 각 전문가와의 인터뷰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모임에서는 총평의 방향성에 대해 공통적으로 정리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두세 대목 정도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한국이 더 이상 급속한 산업화 시대와 같은 ‘빠른 추격자 전략’을 쓸 수 없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제철 분야는 이미 한국이 나름대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선도 분야라고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선도 분야가 소수의 주종목에 집중되어 있기에 대략 10여 개 정도의 선도 산업 분야가 있어야 급변동하는 경제상황에서 거시경제의 리스크가 적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10여 개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산업을 골라 지원해야 할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직계열화를 다룬 두 인터뷰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재료공학과 김형준 교수와 최근 작고하신 기계공학과 주종남 교수가 수직계열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제조업에서 이윤이 새어나가는 모든 틈을 막고 대기업이 이익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전 공정과정을 수직계열화해 버리면,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유연성도 떨어지고 새로운 혁신에 제한이 올 수밖에 없다. 여러 협력업체가 모두 선도 기업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직계열화가 아니라 협력업체 자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산업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조업 전반에 대한 지적을 하신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의 인터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흡사한 측면이 많았는데 김태유 교수는 사회에 이익이 되는 산업, 그리고 사회에 비용이 되는 산업을 분류하며 서비스업이나 금융업 등에 대한 지나친 투자 분위기를 비판하고 제조업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 의료산업 등이 사회의 비용이 되는 산업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으나 최근 금융이나 서비스업 개발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서비스 만능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제조업을 비롯한 실물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은 분명히 의의가 있다고 보인다. 특히 대기업 자본이 최근 제조업에 투자하지 않고 의료민영화를 노리며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 이것이 국가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좋은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구조의 변동, 그리고 선도 종목 제조업의 쇠퇴 국면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다수 민중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동시에 다수의 소득을 보전하면서 산업구조에서의 내수 부문을 탄탄히 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제적 경제 부문이 커진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안정적인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좌파 진영에도 필요하다. 특히 그런 지점에서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이 재벌 대기업의 의사에만 의존하는 정책도, 현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각광을 받고 있는 시장만능주의적 정책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재벌 중심 경제에 대한 문제점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로 기우는 현재의 상황에서, 고용과 사회적 안전을 목적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산업정책에 대한 판짜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다양한 산업에 대한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를 다각화하고, 서비스업이나 금융에 의존하기보다 제조업의 강화에 힘쓰며, 동시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대신할 기술적으로 활성화된 협력업체들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탄탄한 산업 기반을 토대로 이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을 고안해 가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