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이 석 원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정책자문위원
JT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의 인기가 높다. 이 드라마는 과도한 입시 경쟁을 소재로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스릴러물이다.
드라마 속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모습은 이렇다. 명문대 진학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며, 이를 위해 엄청난 돈과 위험부담을 감수한다. 아무리 중요한 가치와 상황도 입시 앞에선 뒷전이다. 개인은 없고, 친구는 경쟁자일 뿐이며, 가족은 안식처가 아닌 합격을 위한 서포터로 전락한다. 그래도 괜찮다. 명문대 진학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학에 실패한다면 철저하게 실패작 취급을 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병든 인식이 가족을, 개인을,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망가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 (20회 중 18회), 드라마는 끝을 향해 가면서 개인과 사회가 망가지는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이다. 누군가 죽고, 슬퍼하고, 자책하고, 숨기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등등.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극 중 상황인데도 우리네 삶이 떠올라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보다 더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카메라가 예서의 방을 비출 때, 언제나 스터디 룸이 장면에 담긴다. 이 스터디 룸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람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1인용 독서실 공부방이다. 6년 전, ‘사도세자 책상’으로 불리며 화제가 됐고, 지금은 ‘예서 책상’으로 검색어에 오른다. 또 카메라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힘내라며 간식을 가져다줄 때, 유명 회사의 홍삼 팩 상표를 장면에 담는다. 최근 화에서는 안마의자를 보여주며 집중력과 기억력을 좋게 해준다는 대사를 담는다. 그렇다. PPL 장면들이다.
PPL 때문에 극 중 흐름이 끊긴다는 흔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한국의 교육 상황을 꼬집는 드라마에서, 교육 상황을 이용한 상품이 광고되는 슬픈 아이러니에 대해 말하려한다. 앞서 언급한 상품들이 그 예다. 아이가 오로지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책상, 입시 강행군과 스트레스로부터 버티기 위해 먹는 청소년용 홍삼, 쉴 때마저도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마의자까지. 전부 공부를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광고하는 상품들이다. 입시 합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식과, 입시로 불안해하는 심리를 이용해 회사들은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를 하고, 실제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주문량이 많아 배송 스케쥴이 미뤄질 정도라고 한다.
한국 교육이 극심한 경쟁 가운데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조명해왔다. 경쟁 때문에 발생되는 비극적인 일도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사회의 다른 한편에서는 극심한 경쟁을 해결하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경쟁의 수혜자를 우상화하고, 후발 주자들로 하여금 수혜자를 꿈꾸게 만든다. 이때, 경쟁을 도와주는 상품들이 해결사처럼 등장한다. 두뇌가 좋아진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단기간에 성적이 오를 수 있다 등의 표현과 함께, 만점 받은 아이의 비결은 이거라더라, 명문대 학생들은 전부 이거만 사용한다더라 등.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의 후기까지 합쳐진다면, 그 효과는 더 강해진다. 그렇게 상품이 판매되고 회사는 이익을 얻는다. 그 뿐이랴, 소비자의 심리를 건드려 경쟁을 더 견고히 하고, 경쟁을 해결하려는 열망과 필요성을 갉아먹는다. 이토록 변화에 무기력해져 가는 사회는 더더욱 경쟁을 도와주는 해결사를 필요로 하고,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누군가 극심한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사회적 비극을 부추기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병들어 있을 때,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그 사회를 고발하고 해부한다. SKY 캐슬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자물이 사회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더군다나 이를 이용한 누군가의 돈벌이 홍보만 된다면, 이들의 홍보가 비극을 더 부추기고 있다면..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