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왜냐면] 국민연금 보험료, 사업주 부담 상한액 폐지부터
김 형 모
정의정책연구소 정책자문위원
630조원이 넘는 거대 기금인 국민연금은 일견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낸 돈에 비해 많이 주겠다고 ‘사전약속’을 한 상태라, 추후 지출은 급격히 늘어난다. 그래서 후세대는 본인이 태어나기 전 체결된 약속 이행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다수 선진국의 연금제도가 한국보다 적립금이 턱없이 적지만 훨씬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낸 돈과 받는 돈’의 비율을 균형 있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획기적인 기초연금 강화만이 현 노인세대 빈곤은 물론 후세대에게 선택권을 주며 국민연금의 한계를 극복할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일단 국민연금 개편에 맞춰, 재정 수입 확대와 보장성 강화를 위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직장가입자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이 우리보다 보험료를 많이 걷는데, 그 대상은 임금근로자 중심인 경우가 많다. 한국은 대기업 고용 비중이 낮고 기업규모 간 임금격차도 심하다. 여기에 영세 자영업자 등 보험료 납부를 버거워하는 계층과 체납·납부유예 등 사각지대에 있는 이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률로 매겨지는 연금보험료 인상은 서민과 다수 기업에 소득·법인세보다 훨씬 큰 부담이다. 지금 필요한 대안은 ‘지불능력 있는 대상’에게 더 거둬 재정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에 월 468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근로자는 기존 상한액 기준대로 보험료를 내고, 해당 근로자의 고용주는 실제 임금 수준에 맞게 보험료를 내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월급 1500만원인 직원을 둔 고용주는 4.5%인 67만5천원을 납부하게 된다. 물론 직원 본인이 내는 보험료는 21만원, 본인 소득인정액도 468만원이다. 즉 수입은 늘지만 지출은 늘지 않는 소득상한액 조정이다. 단적으로 고용·산재보험은 소득상한 자체가 없고, 건강보험은 9925만원이다. 2016년 기준 근로소득자 가운데 국민연금 소득상한액과 유사한 연 5천만원 초과 소득으로 산출해보면 연간 5조5575억원을 더 거둘 수 있다. 물론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고령자 등을 고려하면 5조원에는 못 미치겠으나 적어도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이 10% 이상 늘어나리라 추정된다.
둘째, 국민연금공단 운영비는 100% 국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출범 초기에 운영비는 전액 국가가 책임졌으나 현재는 거의 보험료로 충당한다. 올해 예산 총 4776억원 가운데 100억원만 국가 지원이다. 사실 기초연금을 늘리고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가입 지원이 더 중요하기에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직접 예산 지원은 후순위 과제다. 하지만 다수 국민이 가입한 공적연금 관리운영비 정도는 정부 부담이 필요하다. 건강보험도 예상보험료 수입의 20%를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보험료 수입의 약 1.2% 수준인 공단운영비 국고 지원은 국민연금 신뢰 향상과 기금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공무원(사학)연금 간 소득재분배값을 일원화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은 자체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다. 바로 ‘가입자 평균소득’(A급여) 반영이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가입기간 소득이 4배 차이가 나더라도 실제 받는 연금 격차는 2배 이내다. 공무원연금 역시 이 효과가 상당하다. 그러나 반영되는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은 공무원 497만원, 국민연금 227만원이다. 반영되는 평균 금액 자체가 다르니 연금수령액의 큰 격차로 이어진다. 공무원연금의 소득재분배는 소득이 낮은 하위직 공무원 연금액을 고소득 공무원들의 양보로 분담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공적연금의 소득재분배가 ‘자기들끼리 나눠 먹기’라면 공적연금이 아니라 ‘직종별 공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간 전체 합산 평균소득이나 ‘전체 근로소득자 평균소득’ 등을 소속 연금과 상관없이 동일한 소득재분배값으로 적용하자. 이럴 경우 지출 총액은 비슷해도 효과는 더 크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건 ‘정률 인상’이라 많이 받는 이들이 더 많이 받지만 가입자 평균소득은 ‘정액 인상’이라 저소득자에게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당한 수준의 공무원연금 적자부담 감소도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2028년(40%) 이후 소득대체율 인하 검토도 필요하다. ‘기초연금 확대, 퇴직연금 내실화, 가입자 평균소득을 통한 재분배’가 병행된다면 이후 명목소득대체율 인하에 대한 긍정적 공론화도 가능할 것이다.
연금 개혁은 통계와 숫자에 가려진 ‘국민의 삶’과 미래 세대의 입장까지 고려하기에 쉽지 않은 숙제다. 지불여력이 있는 계층부터 책임을 키우며,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재분배 강화로 공적연금 본연의 구실을 실현하길 희망한다.
***'이 칼럼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정의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