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었기에 절망도 없었다
백 상 진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위원
어느 세입자의 일이다. 집주인이 월세를 12만원 인상하겠다고 통보해왔다. 계약 기간은 종료됐고 이사할 사정은 되지 않으니 기댈 수 있는 덴 인정(人情)밖에 없었다. 엄마뻘의 집주인에게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 통사정 했다. 돌아온 건 자신도 올해부터 월세를 내게 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얼마 후, 그는 동갑내기의 여성이 새로운 집주인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 집주인과 새로운 집주인은 모녀관계였다.
또 어느 세입자의 일이다. 새로 계약한 집의 노부부는 2개월 이상 월세가 밀리면 명도소송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전에 살던 세입자가 2년 동안 단 한 번도 월세를 내지 않은 채 야반도주했기 때문이다. 임대료가 유일한 노후대책인 중장년 임대인과 불안정고용으로부터 시달리며 월세 보릿고개에 쫓기는 청년 세입자. 월세를 둘러싼 지옥도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만든 세상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자신의 노력으로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평생 가져보지 못한 세대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조급해했지만 이 이슈에 가장 무감했던 이들은 바로 3명 중 1명꼴로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청년들은 방 한 칸에 살면서도 매달 50만 원씩 1년에 600만 원을 월세로 내고 있는데, 30억 원 부동산 가진 사람 종부세가 그것보다 적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이 메시지에 대한 환호의 바탕에는 실효성 있는 청년주거대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청년 단독가구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나마 발표된 ‘주거복지로드맵’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집주인이 임대주택 등록을 하지 않거나, 먹고 살기 급급해 청약통장을 만들지 못하거나, 청년전세임대주택에 당첨되지 못한다면 도로 정책의 사각지대에 노출되는 구조다. 워낙 경쟁에 익숙한 세대이니, 노력한 게 없으면 혜택도 못 보려니 싶다. 그러나 주거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며, 핀셋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투기 수요 억제’의 뒤편에서
청년주거 무대책의 바탕에는 문재인 정부의 물적 기반이 있다. 심상정 국회의원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 고위공무원의 절반(47%)은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하고 있으며, 3명 중 1명은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 자녀세대 단독가구 중 절반(56.9%)은 월 소득의 20% 이상을, 3명 중 1명(37%)은 월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며 시름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투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정책 입안자들 앞에서, 자신의 집값이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는 부모세대 앞에서, 투기 대열에 서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 사회 대다수 청년들은 절망할 기회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청년들의 주거불안은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난한 집 제사처럼 돌아오는 이사는 삶의 사회적 기반 자체를 와해시킨다. 단골식당도, 미용실도, 헬스장도, 동사무소도, 선거구도 2년마다 밭갈이되는 조건에서 청년들의 시민으로서의 삶은 요원하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담보인정비율(LTV) 같은 지표만으로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도울 수 없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 자산 대비 보증금 비율, 평균 정주 기간 따위를 주거정책 입안의 중심 지표로 두어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세상의 조건
한때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기성세대가 지난 시대의 과실을 향유하는 동안, 어떤 집단은 희망이 없었기에 절망도 없는 거대한 어둠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어떤 시대정신을 실현해야 할까. 그것이 분명 청년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월급보다 월세가 빨리 오르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이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청년들의 굳은살을 벗기지 못한다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사회에서 그 누구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을 것이다. 자취 10년, 6000만원의 월세를 내고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