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당 유성구 지역위원회 학습소모임
[유성에너지 정의] 2차 학습모임 보고
일시 : 2018. 9. 28. 금 늦은 7시~10시
장소 : 유성구 사랑방
내용 :
-박현주 당원, “대전의 핵문제” ppt강의
* 연구로 하나로의 잦은 사고와 3만 드럼에 달하는 방사성폐기물,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대전 반입, 비상계획구역의 설정, 그동안 유성에서 일어났던 탈핵운동의 역사를 짚어봄.
-오수환 당원 <한권으로 꿰뚫는 탈핵> 1,2장 발제
<원자폭탄과 버려진 한국인 피폭자들>
1945년 8월 6일(월요일) 오전 8시 15분, 미국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일본 히로시마시 9,600m 상공에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우라늄으로 제작된 리틀보이는 43초 뒤 580m 상공에서 폭발했고 TNT 2만톤의 가공할 파괴력으로 도시 중심부 12㎢를 초토화 시켰다. 미국은 9일 오전 11시 1분 나가사키시에도 플루토늄 핵폭탄 ‘핏맨’을 떨어트렸다. 1만 8,000m 상공까지 치솟은 버섯구름과 함께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일순간 잿더미로 변했다.
*한국인 피해규모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두 도시에서 한국인 7만명이 피폭돼 그중 4만명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두 도시에 한국인이 얼마나 있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인 피폭자들이 처한 현실
* 한국정부의 무관심
원폭1세는 일본정부로부터 수당과 진료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1세들이 밀항까지 감행해가며 일본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여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나마 원폭1세의 처지는 2세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2세는 그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피폭의 유전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아무런 여과 없이 수용한 결과이다.
한국은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2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 2011년 경상남도가 원폭피해자지원조례를 제정하면서 2,3세까지 지원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 한국인 피폭자들의 법적 투쟁
일본은 1957년 원폭의료법, 1968년 원폭특별조치법, 1974년 피폭자원호법을 제정해 의료와 생활지원을 했다. 한국정부의 무관심으로 방치되던 한국인 피해자들은 도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결론 : 한국의 원폭문제를 풀기 위한 제언
정부와 국회, 위헌적 상황 더 이상 방치 말아야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일본법을 적용받는 기막힌 상황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실효성 없는 실태조사가 아니라 진실과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는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피폭 2세 문제, 의학을 넘어 인권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핵실험과 핵보유 현황>
‘절대 무기를 가지면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욕망과 ‘핵무기와 인류의 생존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씨름해왔다.
2000회가 넘는 핵실험! 2013년 12월 현재까지 2,111회 핵실험이 실시됐다. 대게 핵실험은 기폭장치의 성능 확인, 핵폭발 규모의 파악 및 데이터 수집, 경량화와 소형화를 위해 실시된다. 내폭형 기폭장치를 주로 사용하는 플루토늄 핵폭탄은 핵실험을 거쳐 무기화가 되었고, 총류형을 사용하는 우라늄 핵폭탄은 실험을 거치지 않고 사용되기도 했다.
원자폭탄보다 파괴력이 수십 배나 강한 수소폭탄 실험도 번번이 이뤄졌다.
지금까지 2,000번이 넘는 핵실험의 대다수는 미국과 소련(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실험한 것들이었다. 북한도 자신의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문제 삼으면 이점을 지적하곤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실시한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기도 하다.
*토론 결과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남북 화해의 분위기에서 북한의 핵시설 폐기는 유의미하다. 그러나 남한도 파이로프로세싱 등 재처리 연구를 중단해야 형평성이 맞을 것이다. 진보적인 성향의 시민들도 남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은근히 찬성한다. 정의당은 어떻게 탈핵 평화를 선도해낼것인가, 핵무기 보유나 핵잠수함 보유를 바라는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 열띤 토론은 인근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자정까지 계속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