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부대표 정혜연에게 묻다
-20대 청년과 정의당,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방선거 이후, 지지하기를 주저하는 청년들 앞에 고민이 많아진 정의당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득표율 3위의 성과를 얻었다. 몸집이 훨씬 큰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6월 3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의당은 8.0%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 그 이전의 지지율보다 조금 상승한 수치다. 하지만 세대별로 정의당에 대한 온도 차가 존재하는 듯하다. 정의당은 20대 청년들에게 4.8%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 전체 정당지지율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치다. 지난 대선 ‘청년이 당당한 나라’라는 슬로건까지 걸었던 정의당에게는 조금 아쉬운 결과다.
앞으로 정의당은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혹시 정의당이 아직 잘 몰랐던 청년들의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정의당의 청년 부대표 정혜연은 이번 지방선거 기간까지 ‘청년’과 ‘정의당’ 사이의 거리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6월 23일,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정의당 정혜연 부대표와 함께 그 고민을 나눠보기로 했다.
-이 날, 정혜연 부대표는 주름진 노란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왔다. 그 셔츠의 옷깃이 뒤집힌 지도 몰랐다가 옆에 있던 친구가 지적해주고
나서야 옷을 다시 여몄다. 며칠 내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김중회
Q. 얼마 전에 지방선거가 끝났다. 서울에서는 정혜연 부대표가 공언했던 대로 10%에 가까운 정당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정의당도 나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혜연 개인에게는 서울시의원 낙선이라는 아쉬운 결과가 돌아왔다. 이번 지방선거, 정혜연에게는 어떤 선거였나?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그간 정치가로서 고민해왔던 메시지, 정책들을 처음으로 원 없이 제안할 수 있었다. 그 메시지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해본 과정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당원들과 통화하는 일이다. 선거과정에서 생활에서의 고민들, 당의 진로와 방향에 대한 당원들의 생각을 들었다. 지도부로 있다 보면, ‘혹시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데, 당원들과 통화하면서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 과정 자체가 매우 기쁨의 과정이었다.
본선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하게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모아내고 이들과 함께 우리의 노동현장, 삶의 현장을 바꿔나가야 함을 몸으로 느낀 선거였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정을 이해해주기는 할까?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분노
Q. 일하는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시 25개구 25일 대장정’을 했다고 들었다. 도대체 25일 동안 어떤 일을 한 건지 설명을 들어봐도 될까?
-지난 지방선거 기간, 당시 정혜연 서울시의원 후보의 SNS 배너였다. @김중회
하루에 서울의 한 구씩 돌면서 25일 동안 서울의 알바 노동자들을 만나는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편의점뿐만 아니라, 배달노동, 바리스타, 독서실 알바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정의당을 알리고, 그 청년들로부터 사는 이야기와 정치에 대한 생각들, 일하면서 힘든 점을 듣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개선책을 제안했다. 불안정 단시간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자는 정책제안을 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120% 가산 정책을 설명하려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고용 실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 커피전문점의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을 ‘꺾기’ 위해서 노동자를 5시간 정도만 사용한다. 노동시간이 추가되면 전문점이 부담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금을 최대한 아껴서 전문점은 월 100여만 원 정도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한다. 그렇지만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 이상씩 하는 소위 ‘투잡’의 경우도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이에서는 만연하다. ‘투잡’ 사이에는 꽤 많은 시간과 비용과 체력이 소모된다.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도 없다. 불안정한 고용에 대한 부담을 온전히 저임금 노동자 개인이 떠안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시정하기 위해 최저임금 120%가산 정책을 제안했다. 호주 등지에서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실제 일하는 사람들을 문제를 듣고, 정책제안을 하는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Q. 새벽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청년들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나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만난 사람 모두 인상 깊었지만, 특히 길게 이야기 나눴던 배달 어플 노동자가 있었다. 배달 어플 노동은 비교적 최근 등장한 노동의 형태이기에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고, 이분들을 만나고 싶어 무작정 여러 번의 배달을 시키고 명함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한 분이 시간을 내주시어, 그분의 인생과 라이더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을 들었다.
-배달 어플의 라이더들이 한 번에 껴입는 내복들을 쌓아놓고 높이를 재어보았다. 30cm나 되는 내복을 껴입어야 노동이 가능한 현실이었다. @정혜연
날씨 때문에 5~6겹의 내복을 입어도 동상에 걸리곤 하는 일이었다. 폭우, 폭설로 위험한 도로상황이어도 일을 쉴 수 없었다. 회사가 이런 날은 배달을 막아야 하는데 손님에게 그냥 주문을 받아버린다.
배달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어 배달 건수 당 요금을 받으며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배달노동자들 사이에선 짧은 동선의 배달을 맡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한 건이라도 처리하려면 1,2분이 아깝기 때문이다. 목숨을 담보로 배달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혹여 궂은 날씨에 다치기라도 하면, 산재도 보장받지 못하고, 쉬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해 돈도 벌지 못한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정의당의 후보를 만나 라이더로서 겪는 어려움을 전한다고 하니, 정치하는 사람들이 듣겠냐고 했었다. 정치가 진지하게 이야기 들어줄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정혜연 전 서울시의원 후보@정혜연
Q. 20대 청년들에게 다양한 삶의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과 ‘희망이 없는 미래’다. 2017년 4월 통계청 자료기준 20대 청년의 실업률은 11.4%로 계속 올라가는 상황이다. 2012년 기준 청년가구 중 주거비가 소득의 30% 이상 차지하는 가구 비율은 69.9%라고 한다. 그만큼 청년들의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20대는 부모보다 더 가난한 세대이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지난 몇 십년간 지속적으로 심각해졌고, 그 불평등은 부모세대에서 자녀세대로 세습되었다. 그래서 20대, 세대 안에서의 불평등은 매우 심각하다. 또한 안정된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 알바 등 불안정한 일자리가 확산되면서, 새롭게 일자리를 찾는 20대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거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환경,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등 대한민국의 모든 모순들이 20대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기존의 직장 중심의 대한민국의 복지제도가 청년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게 만들고 있다. 20대들은 복지의 경험이 아예 없다. 복지가 확장됨과 동시에 이들의 임금을 올리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는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을 양질의 일자리로 이끌어내는 것이 긴급하다.
Q. 이번에 5대 시민권 공약을 제시했다. 교통, 먹거리, 냉난방, 인터넷, 모두 한 사람의 일과를 차지하는 것들이다. 한 사람의 일상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공약인건데, 이런 공약을 만든 계기가 있는가? 어쩌다 이런 공약들을 만들게 된 것인가?
-정혜연 전 서울시의원 후보의 ‘시민 기본권 플랜’. 서울시는 ‘모든 시민의 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약과 함께 남겼다. @정혜연
지금까지 복지공약은 분야별로 산발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쉽게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복지 공약을 시민들의 권리로서 통합적으로 제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삶의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들을 위한 긴급한 복지를 통합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왔던 것도 있다. 나의 20대에 함께 한 많은 친구들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주거에서부터 먹을 것, 인터넷 이용 등 생활의 모든 것들에서 허덕여야 했다. 나 또한 교통비가 없어 걸어 다녀야 했던 20대가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하여,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청년들이 ‘진보’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는 시대, 정의당을 청년들의 놀이터로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선거유세에 나선 정혜연 부대표@정혜연
Q. 정의당을 ‘청년들의 놀이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아직도 청년들에게는 무겁게 여겨지는 ‘정치’의 한 영역인 ‘정당’이 ‘청년들의 놀이터’가 된다는 것이 아직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떤 맥락에서 한 이야기인가?
놀이터를 생각해보면, 늘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함께 갈 친구들을 찾아서 가고 싶어 한다. 정의당을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문턱 없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친구에게도 정의당을 소개하는 것이다.
“정의당 너무 좋더라. 너도 같이 하자.” 이런 말이 청년들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만들고 싶다.
Q. 정의당의 정치인들이나 당원들이 그럼 청년들의 ‘놀이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정혜연은 그렇다면 20대 청년들의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이 있는가? 친구라면 서로 가깝다고 여길 수 있어야할 텐데?
사실 나는 굉장히 노잼이다. 그래서 친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대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정의당에서 잘 풀어나갈 것이다.
이제 청년들은 더 진보적이냐 진보적이지 않느냐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들을 내어 놓는 것을 원한다. 진보정당은 그렇게 청년들이 다양한 생각들을 내어놓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정의당을 청년들이 자유롭게 영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나 또한 함께 영유해나갈 것이다. 그러면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커다란 연대를 통해 청년, 노년, 소수자의 삶을 개선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지금 20대 청년들은 알바를 전전하고, 평생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을 대변하는 비정규직 노조도, 정치세력도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를 가깝게 느끼기 어렵다. 정치가 자신의 삶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정혜연 부대표는 인터뷰를 마치고 “‘유능한 진보정치인’이라면, 소수자의 권리도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정혜연 부대표는 동의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보정치가 바꾸고자 했던 것들은 결코 ‘일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혜연 부대표는 ‘청년’이나 ‘노년’, ‘다수’와 ‘소수’의 삶 모두 우리 사회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혜연 부대표는 ‘시민의 연대’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혜연 부대표는 ‘커다란 연대를 통해 평범한 다수와 소수의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한다. 정치를 신뢰하지 않고, 진보정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이다.
‘젊은 세대는 진보, 늙은 세대는 보수’라는 구문이 무색하게 진보정당인 정의당에게 20대 청년들이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오랫동안 겉잡을 수없이 재생산되어온 한국사회 격차는 현재 청년세대에게 집중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수준과 직업부터 청년들의 학교와 일자리까지 청년들 사이에서는 모두 비교의 대상이자 삶의 격차를 실감하게끔 하는 지점들이 되고 말았다. 청년들 사이의 격차는 수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고, 동시에 청년들의 분노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갈등과 분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이슈가 청년층을 둘러싸고 있지만, 청년들의 선택은 정치가 아닌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평등과 ‘실업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 서로의 처지를 둘러싼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청년들의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현재 청년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희망’보다는 ‘불신’과 ‘상처’만이 남은 상황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정의당’과 ‘청년’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이제는 ‘정치’와 ‘청년’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들이 정의당의 앞날에 놓인 ‘숙제’가 된 현실이다. 정의당의 정치인들과 당원들이 이제 고통 속에 신음하는 청년들이 남겨 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와 정의당의 미래가 달렸다.
정의로운 청년기자단 5기 김중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