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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한국일보 [손호철의 사색] 노회찬과 선거법 개혁, 손호철 이사장
[손호철의 사색] 노회찬과 선거법 개혁
 

표의 등가성 심각하게 훼손하는 선거법

득표율, 의석수 일치하도록 개정에 나서

진보정당 성장 위한 공정경쟁 이뤄내야

 

진보정치의 아이콘인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우리 곁을 떠났다. 정치자금법을 어기고 돈을 받은 것은, 그의 말대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 그가 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특히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넘어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을 앞서기도 하는 등 도약하고 있는 시점에, 즉 분단에 의해 극우로 왜곡된 한국정치 지형을 바로 잡아 ‘제대로 된 보수’ 대 ‘제대로 된 진보’의 경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국면에,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그를 기리는 가장 확실한 길은 그가 꿈꾸었던 북유럽과 같은, 강하고 튼튼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한국 정치를 좌우의 두 날개로 나는 ‘정상적인 정치’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비민주적인 선거법을 개정하여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모든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고 그 한 표가 똑 같이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제도는 농촌의 표가 도시의 3배로 평가받는 등 표의 등가성이 크게 훼손되어 왔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선거구별 인구 격차가 2대 1 이상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정의당 같은 군소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표에 대한 차별은 이 위헌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총선을 기준으로 보면 군소 진보정당에 투표한 표는 거대 보수정당에 투표한 표의 4분의 1로 취급받고 있다.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로 인한 민의 왜곡의 극명한 예는 이번 6ㆍ13 지방선거다. 정의당은 이번 서울시의원 정당투표에서 10%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전체 의석 110석의 10%인 11석을 얻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 의석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단 한 석밖에 얻지 못했다. 정의당에 투표한 한 표는 한 표가 아니라 10분의 1 표로 밖에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같은 비민주성을 바로잡기 위해 2016년 총선부터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의석수를 득표율과 일치하도록 연동시키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적극 반대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도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개악에 합의해줬다. 어디 그뿐인가. 촛불 시민혁명 이후 실시된 이번 지방선거도 기초의원 선거개혁안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합해 좌초시켜버렸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의 반대의 피해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번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25.4%를 득표했다. 자신들이 반대했던 독일식 제도를 도입했더라면 25%인 28석을 얻었을 것인데, 실제로는 6석을 얻는데 그쳤다. 정의당처럼 10분의 1은 아니지만 득표율의 5분의 1밖에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가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는 대의민주주의다. 그러나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병들어 있다. 정치의 기능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국회와 같은 제도정치의 틀 내에서 조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이 같은 조정에 실패해 왔다. 그 결과 사회적 약자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직접 뛰어나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표를 줄이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이 선거법 개혁에 적극적이다. 가장 큰 장애는 거대 양당이다. 그러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히는 등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놀라 이제는 전향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작 걱정은 기득권층이 된 더불어민주당이다. 노 의원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서라도, 모두 나서 이제 선거법 제대로 바꾸게 만들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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