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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프레시안] 민주주의는 회사 입구에서 멈춘다, 김형모 정의정책연구소 정책자문위원

민주주의는 회사 입구에서 멈춘다

 
[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민미연 포럼] 무권리 상태로 방치되는 중소영세기업부터 시작해야
 

 최근 고교 졸업생들, 특히 특성화 고교를 중심으로 노동인권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다. 꼭 알아야 할 노동법을 비롯하여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부당함과 차별, 인권침해 등에 대한 내용을 교육시키고 한 명의 직업인이자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지식을 배우는 교육이다.

더불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 의무화된 지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명문화되어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1년에 한 번 정도인 일회성 교육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러한 교육 덕분에 사람들의 인식도, 성 희롱 문제에 대한 경각심도 더욱 커지고 사회풍토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직장 내 노동인권교육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회사 입구에서 멈춘다

'민주주의는 회사 입구에서 멈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존엄한 권리를 가지며 1인 1표라는 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참정권 행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정치제도로 채택하고 있지만,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사회와 달리 회사는 자본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가 우선되고 사람 자체의 권리보다는 이윤추구가 핵심이 된다. 그러다 보니 조직운영 자체가 지시와 통제, 상하관계가 우선이다.

고용과 피고용 관계에서 노동자의 모든 생존권을 쥐고 있는 게 사용자이다. 어지간한 계약·납품관계에서 맺어지는 '갑을관계'보다 회사 내 '갑을관계'는 여타의 관계보다 절대적이고 힘의 균형이 완전히 기울어진다. 노동자에게 소득의 원천은 오직 임금이고 이를 지급하는 건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법에서는 노동3권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이 뭉치고 교섭하고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장의 절대다수는 노동조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용자나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회사 내에서 하소연할 통로도 없고 오롯이 개인의 힘으로 저항하거나 그저 사표를 내고 실업자가 되는 거 외엔 방법이 없다. 물론 법과 제도라는 게 존재하지만 현실은 가깝고 법은 멀다. 교묘하게 자행되는 부당행위들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입바른 소리라도 하는 직원은 '조직 생활도 모르고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존재'가 되며 '그럴 거면 공무원 하거나 대기업에 가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또한 많은 영세·중소기업인들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 월급 제때 주면 되지 무슨 노동법이고 인권 타령이냐'라는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다
 

직장 내 교육이 풍토를 바꾸고 현실을 바꾼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고교생(졸업예정자)들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은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 물론 이 방법도 확대되어야겠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변화는 사업주와 경영진의 인식, 그리고 해당 회사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메마른 사막을 적시기 위해 컵으로 물을 붓는 행위밖에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다. 어떠한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배우면 어떻게든 조심하게 된다. 강력한 금연정책으로 한 때 '술집이나 PC방 금연하면 망한다'고 했지만, 금연 때문에 망하지도 않았고 과거처럼 아무 데서나 흡연하는 건 법 위반 문제를 떠나 '교양 없는 행동'이라는 인식과 사회적 풍토가 확립됐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으로 과거에는 죄의식을 갖지 않고 일상화됐던 행동들이 '잘못된 행위'임을 깨닫게 되고 서로 조심하는 풍토가 정착되고 권리의식도 향상되었다.

많은 사업주들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정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능력과 창조력을 발산하기 위해선 직장 내에서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확신과 수평적 관계가 수립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허물고 수평적 관계가 수립되며 정보가 공유될 때 직원 개개인이 중심에 서서 창조력을 발산할 수 있고 이는 조직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20~30대 젊은 직장인일수록 직장에 바라는 최고의 희망사항은 인간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수평적 직장과 비전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직장이다. 이러한 것이 실현되려면 노동에 대한 존중, 직원 개개인의 인권 배려가 바탕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업주와 경영진의 인권감수성도 훨씬 향상되어야한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권력이 커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이나 소통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자신만이 옳고 내 말만 하며, 구성원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상당수의 사업주(경영진)들이 회사 내에서 보이는 행태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장 내 따돌림을 비롯해 직장 내 직원 간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 내 노동인권교육, 중소기업부터 법제화해야

최근 논란이 된 주52시간제나 각종 모성보호와 관련한 법률 등 대다수 좋은 제도들은 공공부문과 대기업 먼저 시행된다. 그러나 직장 노동인권교육은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있는 비노조 중소영세기업부터 우선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해 강사료 등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본 교육 역시 의무 교육으로 법제화하면서 강사료 등에 대한 예산 지원도 함께 진행된다면 어려움 없이 실현되리라 판단된다.

특히나 노동조합 조직 확대의 어려움과 대기업, 공공부문 중심의 '귀족노조' 프레임으로 고민하는 노동계는 무엇보다 직장 내 노동인권교육 법제화를 적극 주장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사실상 접점을 찾지 못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교육과 상담을 통해 합법적이자 안정적으로 만날 기회가 되며, 이는 노동조합의 확대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업장들에서는 근로계약서도, 취업규칙도 없고, 연차휴가를 제대로 사용하거나 시간외근로수당을 받는 건 사치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폭언과 부당한 업무지시, 교묘한 괴롭힘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속이나 근로감독의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의 인식과 풍토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꼭 필요한 실천이라 생각한다.

중소영세기업부터 시작되는 노동인권교육 법제화로 무권리 상태로 방치되는 절대 다수의 직장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고 직원 개개인이 존중받는 일터가 되길 소망한다.

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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