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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준 칼럼(프레시안 공동)] 가난한 자가 돈 벌어 부동산 부자에 바치는 세상

가난한 자가 돈 벌어 부동산 부자에 바치는 세상

[장석준 칼럼] 부동산 불로소득 개혁과 정치 개혁, 한 몸이다

 

 

장 석 준(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어떤 사회든 개혁을 추진할 때는 힘을 가장 집중해서 넘어뜨려야 할 장벽이 어디인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이런 핵심 공격 방향을 식별해낼 수 있는가? 물론 사회 현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고, 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정책가들도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개혁 과제의 목록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매긴다.

그러나 이 모두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핵심 공격 방향이 선명히 식별되는 것은 오직 실제로 개혁이 시도되는 과정을 통해서다. 일단 여러 방면에서 개혁을 시작하고 난 뒤에야 난마처럼 얽힌 사회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사슬이 무엇인지, 그 사슬을 끊으려면 어느 고리에 타격을 집중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실천 속에서 이렇게 최우선 개혁 과제가 뚜렷해진 뒤에는 긴급하게 모든 관심과 역량을 이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것은 부동산 불패 신화의 타파다. 특권층은 막대한 부동산 투기-임대 수익을 챙기고, 중간층은 이를 따라 하려다 가계 부채의 노예가 되며,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는 그나마 번 돈 대부분을 집주인과 건물주에게 갖다 바친다. 영국 사회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최근작 <자본주의의 부패(The Corruption of Capitalism)>(2017)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금리생활자(혹은 불로소득자)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라 규정했는데, 한국이야말로 그 전형이라 할만하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개혁 조치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 힘을 잃거나 왜곡되고 있다. 얼핏 부동산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영역에서도 그러하다. 가령 최저임금 인상은 프랜차이즈 가맹비에다 건물 임대료가 겹친 지대 수탈 때문에 엉뚱하게 영세 상인과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변질되고 있다. 부동산을 통한 약탈 구조를 손보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한 사례다.  

양당 구도 탓에 더욱 심각해진 부동산 약탈 구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분명 정치의 실패도 있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지금처럼 규모가 커지고 뿌리가 깊어지기 전에 정치의 응전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 한국 정치는 부동산 광풍의 제어에 실패했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양당 중심 정치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는 줄곧 두 거대 정당의 각축장이었다. 현 민주당의 뿌리가 되는 세력과 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정치 무대를 독점했다. 물론 제3당이라 할 만한 도전도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양당 구도를 주기적으로 흔들었을망정 이를 다당 구도로 바꿔내지는 못했다. 이제는 상식이 됐지만,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중심제와 소선거구 중심 국회의원 선출방식(모두 전형적인 승자독식제도)이 결합된 정치 제도가 이런 양당 구도를 뒷받침해주었다.

또한 한국의 양당 중심 정치는 '좌파가 배제된' 양당 구도였다. 미국,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양당 중심 정치라 하더라도 두 거대 정당 중 한 쪽이 중도좌파다. 그래서 한국의 양당 정치에 견줘 제도 정치의 이념 스펙트럼이 왼쪽으로 더 넓게 뻗어 있다.

이런 한국 정치 지형을 배경으로 2000년대 중반에 부동산 열풍이 일었다. 이 거센 바람의 진원은 물론 재벌, 금융 자본, 부유층이지만, 이들만으로는 결코 태풍이 될 수 없었다. 주택 담보 대출로 중간층의 상당수가 투기 대열에 합류했기에 지금처럼 거대해질 수 있었다. 즉, 부동산 시장을 매개로 부유층과 중간층 일부의 동맹이 구축됐다. 이들은 승자독식제도로 실시되는 각급 선거에서 1위 후보를 결정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이 동맹이 촛불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사회적 토대였다.  

이런 부동산 불로소득 동맹 입장에서는 한국식 양당 구도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정치 지형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양당은 각급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부유층-중간층 동맹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부동산 규제 같은 이야기를 함부로 꺼냈다가 밉보이기라도 하면 경쟁 상대에게 권력을 내주고 만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이명박 드라마가 결국 이런 이야기였다. 비록 이명박처럼 노골적으로 투기 세력과 일체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대립하지는 않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양당 구도의 한 쪽 축이 중도좌파인 나라들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0년대에 시리자-포데모스-제러미 코빈식 도전과 격변이 닥치기 전까지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제3의 길'이라는 깃발 아래 금리생활자 자본주의를 용인하거나 부추겼다. 하물며 한국의 양당 정치는 왼쪽 한계선이 미국식 리버럴을 넘지 못한다. 부동산 기득권 동맹에게는 백전백승의 정치 지형이라 할까.  

아니, 이것은 너무 야박한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야당으로 있던 10여 년 동안 범민주당 세력은 과거보다 사회운동에 더 열린 입장을 보였다. 부동산 약탈 구조에 반발하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민주당 정책을 일정하게 관통했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 주장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택 정책을 총선이나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존재했다. 민주당은 늘 부동산 불로소득 동맹에 '맞서서'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이익과 반대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고려'해 정책을 수립했다. 임차인 권리를 신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부동산 시장에 충격을 줄만한 강경책은 기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양당 경쟁 게임을 벌이는 정당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유권자 집단과 대립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어차피 국가 정책은 서로 갈등하는 여러 사회 세력의 주장들을 모두 고려하며 짜나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기득권층을 억누르기만 할 수는 없고 약자들의 주장 역시 100% 다 수용할 수는 없다. 일정 선에서 여러 세력들이 서로 타협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식 주택 정책 접근을 비난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수권 정당으로서 정책 입안 단계에서부터 여러 계층의 이해를 다 고려해 최종 타협책에 가장 근접한 정책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실은 여기에 한국식 양당 정치의 근본 문제가 있다. 설령 위에 가정한 것처럼 민주당이 계층 간 타협 방향을 충분히 고려해 주택 정책을 짰을지라도 여전히 커다란 한계가 있다. 이 경우에도 부동산 신화의 패배자들은 자신의 권리로 무장한 주인공은 아닌 것이다. 정책가의 머릿속에 이들의 그림자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정치 무대에서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실체는 아니다. 그런 실체는 여전히 부동산 기득권 동맹뿐이다.

한국식 양당 정치에서 나올 수 있는 어떠한 정책 결론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부동산 약자들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다당 정치에서 만들어지는 합의다. 승자독식 선거제도 아래서는 약자들이 기득권 동맹의 기세에 눌려 영향력을 펼치기 힘들고 아예 동맹이라 할 만한 실체로 발전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 유권자의 10% 이상만 세입자-임차인을 강경하게 대변하는 정당을 밀어도 정치 무대에 새로운 사회 세력이 당당히 모습을 내밀게 된다.

어쩌면 이런 다당 구도에서도 정당 간 최종 합의는 다른 정치 지형에서 정책가들의 머리를 거쳐 나온 정책과 비슷한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지점에서 전자는 후자보다 우월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잠정 합의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한계를 드러내면 곧바로 기득권 동맹에 맞설 능력을 지닌 대항 세력이 살아 꿈틀거린다. 그래서 기득권 동맹과 대항 동맹 사이의 팽팽한 세력 균형이 정치 무대를 지배한다. 당장의 어떤 정책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력화다.  

한국식 양당 정치는 바로 이 세력화를 지속적으로 차단해왔다. 덕분에 부동산 불로소득 동맹은 늘 눈에 드러나 보인 반면 이에 맞서는 약자들의 운동은 무대 바깥에서 목청만 높이는 형국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정말로 불패의 역사를 이어가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양당 중심 정치는 오늘날 한국 사회 부동산 적폐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어도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진보정당, 정치 개혁을 위해서라도 우선 '부동산 약자 정당'이 되자

이 대목에서 진보정당도 성찰이 필요하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부터 지금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은 거대 양당이 각축하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진보적 주거 대안을 마련하며 전월세 세입자나 임차상인 편에서 싸우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부동산 약자 정당'이라고 인정받았냐면, 그렇지 않았다. 진보정당의 노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진보정당 스스로도 그렇게 인정받길 부담스러워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진보정당이 부동산 약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기는 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상가 임대차 보호법 제정 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정당도 다양한 부동산 계층을 위한 종합 처방 중 하나로 이들 정책을 나열했을 뿐이다. 오로지 집 없는 이들 편에 서서 부동산 투기-임대 소득 전체와 대립각을 세우는 정치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진보정당 역시 알게 모르게 양당 중심 정치의 관성에 물들었던 탓일까? 혹은 추상적인 '노동계급'을 지지 기반으로 여겼던 탓일까? 노동계급 안에는 자가 소유주도 있고 세입자도 있으니 세입자만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레짐작한 탓일까? 

이유가 뭐든 이제는 진보정당도 입장과 전략을 재고해야 할 때다. 진보정당운동은 이미 노동 정책 측면에서는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규정을 꺼리지 않다. 그렇다면 '부동산 약자 정당'이 되는 것 역시 주저해서는 안 된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동산 불로소득 제한과 사회 환수, 임차인 권리 강화, 더 나아가 토지 및 주거 공개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여론전을 펼쳐야 한다.  

이것은 진보정당운동의 또 다른 긴급 과제인 정치 개혁과도 긴밀히 얽혀 있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 제도 개혁을 이야기하며 흔히 논거로 드는 게 다당 정치가 양당 정치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더 많은 호응과 지지를 받으려면, 다당 정치의 효능을 대중이 직접 체험해야 한다. 물론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 가결을 성사시키면서 그 효능을 한 차례 경험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중의 삶과 직결된 사회 개혁에도 다당 정치가 훨씬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실증해야 한다.  

그 한 방안이 바로 진보정당이 '부동산 약자 정당'으로 나서는 것이다. 기성 거대 정당과 달리 부동산 불로소득 동맹에 공공연히 전쟁을 선포하는 정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당이 제도 정치 스펙트럼 안에 뚜렷이 존재할 경우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는지 실감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부동산 신화를 뒤집을 힘이 더 강해질 뿐만 아니라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 또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렇듯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서 사회 개혁과 정치 개혁은 별개가 아니다. 둘은 서로 결합될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진보정당운동이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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