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심상정 당기위에 제소되다
: 독자노선과 연합노선의 갈등 표면화 하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실패는 ‘연합노선’과 ‘독자노선’ 사이의 동요로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지방선거 판은 촛불민심이 이미 결정지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야권 단일후보로 한나라당을 낙선시켜야 한다는 것. 이런 구조 안에서 진보신당이라는 행위자의 활동반경은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반MB연대’를 기조로 일관되게 ‘연합노선’을 취했던 민주노동당이 기초단체장 3명을 포함, 광역·기초의원 136명을 당선시켜 큰 성과를 거둔데 반해 선거 후반에 ‘5+4’ 야권연대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독자노선’으로 기울었던 진보신당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고 패배했다.
진보신당은 침울한 분위기에서 지방선거 평가를 준비했다. 선거 직후 6월 19일 전국위원회에서는 '지방선거 평가와 진단을 위한 토론문'과 '지방선거에서의 해당행위에 관한 특별결의문(안)' 안건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그러나 평가와 진단보다는 당의 ‘독자 완주’ 방침을 어기고 야권연대에 응해 사퇴한 이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터져 나오며 차분한 복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징계결의안은 부결되었으나 일부 당원들이 심상정을 경기도당 당기위 제소했고 당기위는 1심에서 1년간 당권 정지를 선고했다. 당기위는 심상정후보의 사퇴 ‘절차’의 적절성만을 두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상정의 후보 사퇴는 ‘정치적 행위’로서 당기위 제소 같은 ‘사법적 심판’으로 좁혀 놓아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심상정은 이의신청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결단과 문제제기가 당의 지방선거 선거방침과 향후 당의 진로에 대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전당적으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당이 변화해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이지 못하면 정당으로서 성공하기 어렵고, 국민들로부터 힘을 얻지 못하면 우리 당은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지금 우리가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밖으로부터 변화를 강제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의 소신에 따른 정치적 행위가 당원들의 활발한 토론 속에 엄중하고 진취적으로 평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징계 근거로 제시된 당론위배 결정으로 인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당적 논의가 위축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심상정의 이의신청은 ‘연합노선’과 ‘독자노선’에 관한 토론의 계기였다.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전술로서 연합정치를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후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연합정치’를 수용하는 다수 당원들의 여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상정은 중앙당 당기위 2심에서 ‘경고’를 받았으나 정치적으로는 이미 복권되고 있었던 것이다.
심상정은 진보정당이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이지 못하면 정당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때 정치적이란 말은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 결과물을 성과 있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는 막스베버가 말한 ‘신념 윤리’를 바탕으로 하되 ‘책임 윤리’를 자각한 정치인의 자질이었다. 심상정 뿐만 아니라 부산시장후보로서 야권연대를 끝까지 성사시키고 사퇴한 김석준의 경우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유권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과 당의 미래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
‘딴지일보’의 김어준은 심상정의 사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난 그때(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직을 사퇴한 때)가 바로 대중정치인 심상정이 탄생한 첫 순간이라고 생각해.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에게 결여된 게 바로 그거거든. 조직의 논리와 정서에 매몰되어 정작 조직 바깥 대중이 원하는 것과는 광년 단위로 멀어져갈 때, 그래서 조직의 요구와 대중의 필요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을 때, 조직의 이념이나 정파의 노선보다 대중의 마음을 우선으로 읽어낼 줄 아는 정서적 통찰력, 그 감성과 직관의 대중적 소통 능력, 그리고 그걸 스스로 결정하는, 단독자로서의 정치적 에고, 그런 게 절대 부족하다고... (진보 진영은) 스스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적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소명을 조직과 조직의 합의로부터 할당받아서는 자발적 권력의지가 거세된 조직원으로 활동한다고... 심상정의 사퇴를 사망이 아니라 탄생이라고 한 건... 25년 노동운동 끝에 조직의 조합원이 아니라 정치적 단독자를 선언한 최초의 순간이었으니까[닥치고 정치18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