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늙은 너구리’ 잡은 심상정
:국회초년병 심상정, 이헌재 굴복시키며 재경위 군계일학으로 떠오르다
금속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국회 상임위 중 재경위를 선택했다. 노동전문가인 심상정으로서는 국가 살림 전체를 들여다보는 재경위가 다소 버거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당시 상황을 취재한 <프레시안>의 기사는 심상정 의원의 활약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04년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은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불러 앉혀서 “파생상품시장을 통한 정부의 외환개입으로 1조8천억원 대의 대규모 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나 중앙은행은 파생상품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통례인데 무엇 때문에 개입했냐”고 따졌다. 심 의원은 “투기를 막으려고 투기에 나선 것이냐”고 질타한 뒤, 다음 재경부 감사일 이전까지 외평기금 종목별 이자 지급 상세내역을 제출토록 요구했다.
심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자 이 부총리는 “정상적 외환거래로는 환투기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일시적으로 한 것”이라고 파생상품을 통한 시장개입 사실을 시인했다. 금융계에서는 “국회의원 초년병인 심 의원이 백전노장인 이헌재 부총리를 초토화시켰다”며 “재경위 의원들 가운데 단연 군계일학”이라고 놀라워했다.
심 의원은 국정감사에 앞서 재경부로부터 받은 2004년 1~8월의 외평기금 이자지급액과 외평기금 발행잔액 자료를 꼼꼼히 분석했다. 외평기금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는데 이자지급액은 이미 2003년 지급액의 두 배나 급증한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심 의원은 1조8천억 원이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핫머니들의 투기판인 파생금융상품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들어 발생한 손실이라는 사실을 간파, 재경부를 몰아침으로써 마침내 이헌재 부총리로부터 백기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심 의원의 이 같은 활약은 능구렁이 관료들에게 호통만 치던 기존의 국정감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특히 재경부 ‘모피아’의 실세로부터 백기 항복을 받은 심상정의 활약은 일약 심상정을 ‘정책국감’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그간 재경부는 공개적으로 부인해 왔으나 심상정 의원의 외통수 추궁으로 환율조작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도 파생금융상품에 뛰어들어 2조에 가까운 천문학적 손실을 끼친 국제 금융투기세력의 호구라는 맨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심상정과 재경부 모피아의 길고 긴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