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민주노동당, 당내 독립언론의 성장과 갈등
: 주간 ‘진보정치’, 월간 ‘이론과 실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라는 주간지와 ‘이론과 실천’이라는 월간 기관지를 갖고 있는 정당이었다. 특히 ‘진보정치’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 전부터 준비를 해 독립된 편집권을 갖고 독자재정으로 운영되는 기관지로서 민주노동당 당원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를 응원하는 지지자들까지 시선에 넣는 대중적 진보언론을 지향했다.
‘진보정치’ 창간을 주도한 이광호 편집장은 당 창당 이전부터 기관지를 준비해온 이유에 대해 “노동자들과 향후 진보정당과의 결합을 이루기 위해 기관지가 가장 중요한 몫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래로부터 시작한 셈이죠.”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오늘> 2000.6.29). 그리고 당의 기관지이지만 독립된 편집권을 갖는 ‘진보정치’의 위상에 대해서는 “어찌 보면 기관지는 내부언론이지만 당의 입장, 방침만을 알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로서의 장치이거든요. 이러한 취지가 훼손된다면 언제라도 거부하거나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며 당의 공식입장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일방통행식 당보와는 분명히 차별된 독립 진보언론임을 명확히 했다.
2000년 3월 24일 창간된 ‘진보정치’의 뒤를 이어 2001년 7월 27일 월간 ‘이론과 실천’도 창간되었다. 최영민 편집장은 “<진보정치>가 대중적 정치신문이라고 한다면 <이론과 실천>은 보다 선진적인 당원과 진보적인 지식인, 사회운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대적으로 심층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매일노동뉴스> 2001.7.31.)
‘진보정치’의 초대 기관지위원장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금수 이사장, 편집위원장은 이광호 전 민주노총 편집실장이 맡았고 주간 24면으로 발행되었다. ‘이론과 실천’은 장상환, 황광우 등 당 내 이론가와 활동가 15인을 편집위원으로 구성하고 마이클 앨버트(Michael Albert) 등 해외 이론가들이 해외자문위원으로 참여하도록 진용을 구성했다. 민주노동당이 원외 정당이던 권영길 초대 당대표 시절에는 비록 박봉이지만 기자들과 현장 통신원, 그리고 편집진은 당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도 가감 없이 반영하는 등 독립 진보언론으로서 기관지를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다.
종이 신문과 기관지 말고도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의 인터넷 매체인 ‘판갈이.net’도 변화하는 매체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비판적 지지의 입장에 서 있는 ‘진보누리’와 같은 논객들 중심의 매체도 좌파 인터넷 매체로는 꽤나 독자층을 갖고 있었지만, ‘노사모’ 계열이 주도하는 ‘서프라이즈’와 같은 매체 파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에 ‘진보정치’와 연동해서 뉴스까지 제공하는 ‘판갈이넷’은 급속히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기관지위원회에서는 인터넷 매체 창간과 기관지 발전 방향을 두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6월 2기 당 대표체제가 출범하였다. 새롭게 선임된 정성희 기관지위원장이 ‘이론과 실천’의 최영민 편집장을 해촉하면서 기관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시화됐다. 인터넷매체 창간과 기관지 발전방향을 두고 기관지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면서 기관지를 둘러싼 갈등은 본격화됐다. 정성희 기관지위원장은 ‘진보정치’가 편향된 정파적 입장에서 기관지를 제작한다고 지적하면서 갈등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당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문제 삼아 이미 인쇄를 마친 ‘진보정치’의 배포 중단 사태까지 일어나는 등 기관지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져갔다. 뜻있는 여러사람들이 중재를 시도했지만, 기관지위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기관지 창간을 주도한 이광호 편집장이 2005년 1월 말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4명의 기자 중 3명이 동반 사퇴로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함께 동고동락해왔던 당 안팎의 편집기획위원들도 줄줄이 그만뒀다. 만평을 연재하던 만평가 이창우(필자)도 ‘진보정치’에 연재하던 만평 송고를 중단하는 등 독립언론으로서의 기관지 위상을 침해하는 일련의 공격에 대해 항의가 잇따랐다.
‘진보정치’ 이광호 편집장은 앞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미련 없이 떠났다. ‘진보정치’와 ‘이론과 실천’의 초대 편집장들은 모두 떠났다. 인터넷 매체 ‘판갈이넷’도 꺾였다. "이견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