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 ‘2군 후보’ 선수가 본선 무대에 올라 국민을 놀라게 하다
2002년 3회 지방선거에서 일약 3당으로 올라선 민주노동당은 쾌속 항진을 계속했다. 2002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대선후보 방송 토론에 진출했다. 5년 전 국민승리21 대선후보로 나서 2군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별 존재감도 없이 뛰던 권영길 후보가 당당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이다.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소박한 물음은 권영길 후보가 방송토론에서 선보인 말이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것을 권영길 후보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양 쪽에 놓고 권영길 후보는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당’이며 민주당은 ‘부패 신장개업당’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부유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가뭄의 단비 같은 공약을 쏟아내며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국민들의 귀에 쏙쏙 들어가게 설명할 수 있었다. 평소 제도 언론에서는 잘 눈에 띄지도 않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방송토론의 스타로 부상하고 있었다. 동료시민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대선 전 9월 5일 1.7%의 지지율이 선거 직전 12월 15일에는 4.7%로 뛰어올랐다. 양강 구도의 틈바구니에서조차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30만 표로 좌절했던 기억을 깨끗이 씻어내고 100만표 돌파는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최종 득표는 3.9%인 95만7,148표. 100만 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16대 대선 투표 직전에 정몽준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선언이 있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낙승을 예상하던 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유시민은 12월 19일 0시 50분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노무현의 승리를 예상하고 권영길에게 표를 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대거 노무현으로 돌아 설 것입니다. 이 사태로 인해 권 후보 득표율은 여론조사 지지도의 절반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근원이 쓴 <아빠의 현대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전주에 사는 민주노동당 당원인 J씨는 이름난 노동운동가이고, 한때 혁명을 꿈꾸는 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12월 18일 밤 10시 정몽준이 노무현과의 결별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잠을 설쳤다. 결국 그는 집사람과 함께 투표장에서 노무현을 선택했다. 그리곤 민주노동당에서 재정 마련을 위해 조직한 선거 참관인을 했다. 이 하나의 장면이 2002년 대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뒷날 조사해 보니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 36.8%가 권영길을, 47.4%가 노무현을 찍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른바 소신투표(선호투표)와 전략투표의 딜레마였다.
권영길 선거 캠페인을 하던 이들도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까 싶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던 많은 장면들이 보고되고 있었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진보적인 인사들 내부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대선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1차 투표에서는 소신투표를 하고 결선투표에서는 전략투표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갈등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갈등하고 결국 반목하는 만드는 것은 결국 제도의 불비 때문이다. 원래 제도화란 이런 국민들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되는 것이다. 물론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두 번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추가로 든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선진국인 프랑스가 왜 그런 비용을 치르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주의의 비용을 아낀 결과는 국민들이 원치 않는 정치적 결과를 보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40조에 이르는 자원외교 혈세 탕진 같은 경제적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불비한 제도를 탓할 수 없었다. 권영길 후보는 동요하는 동료시민들에게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며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 말라고 호소했다. 비록 절반의 표를 도둑질 당했지만 100표에 근접한 성공을 거둔 민주노동당은 대선 이후 괄목상대할 만큼 유명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