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가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라니?
: 정의당 서기호 의원, 박상옥 대법관 후보의 임명동의안 철회를 요구하다.
2015년 2월 3일 국회 법사위 소속의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가담자가 대법관?’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서 의원이 지목한 장본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제출한 대법관후보 박상옥 검사. 서 의원은 박 검사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검사였으며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노골적인 시도에 눈을 감았던 전력을 가진 자라는 것과 대법관 임명 동의안에 이 경력을 누락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는 1987년 1차 수사 당시 검찰은 ‘공범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고문에 참여한 경찰관 2명만 기소했다.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범을 폭로하면서 2차 수사에서 3명이 추가 기소됐다. 박 후보는 청문회에서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며 “검사로서 사건을 축소하거나 진상을 은폐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박 후보의 이 말은 비단 서기호 의원 뿐 아니라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의심을 샀다. 송승용 판사에 이어 실명 비판에 나선 박노수 판사는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 게시판에 “그토록 중차대한 사건의 수사를 송치 받은 날로부터 불과 4일만에 끝내도록 하고, 해당 피의자들을 검찰청에 부르지도 않고 현장검증에도 참여시키지도 않은 채 서둘러 수사를 종료하고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는 윗선의 황당한 조치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아무런 외압을 느끼지 못했고 그저 최선을 다해 수사했을 뿐이다?” 라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에 대한 결정문을 통해 “검찰은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다가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하여 결과적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 검찰이 외압에 굴복하여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수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유족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검찰이 헌법에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음에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진실 왜곡을 바로 잡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인 서기호 의원은 “대법관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양심을 대변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사법부 특히 대법원은 그 어떠한 권력 아래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상옥 후보자는 당시 담당검사로서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법관으로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아예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자체를 철회해야지 청문회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서기호 의원과 김기식 의원 등 두 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고, 5월 7일 새누리당 의원 158명만 참석한 가운데 찬성 151 반대 6, 무효 1로 임명동의안은 통과되었다. 새누리당은 무자격자를 억지로 밀어붙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의 “국정 발목을 잡느냐?”는 엄포에 짓눌려 맥없이 밀린 것이다. 박상옥 검사의 대법관 임명은 87년 6월민주항쟁의 불씨를 꺼뜨리려고 했던 자가 6월항쟁을 거쳐 탄생한 민주헌법 하의 대법관이 된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