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땅콩의 분노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늦췄다
: 정의당, 검증되지 않은 재벌 3세 경영의 위험성을 지적하다
2014년 12월 5일 새벽 0시 50분.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기 위해 탑승구를 떠나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갑자기 뒷걸음쳤다. 이른바 ‘땅콩 리턴(회항)’ 사건. 활주로로 가던 비행기가 다시 돌아가는 램프리턴은 비행기 정비나 승객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등에만 적용된다. 그런데 대한항공기의 램프리턴은 그런 게 아니었다. 승무원이 마카다미아 땅콩을 접시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분노한 1등석 승객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사무장과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욕설을 퍼붓다가, 결국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막무가내로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문제였음에도 스튜어디스와 사무장이 마치 서비스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처럼 인격을 무참히 짓밟아 놓고 기어이 사무장을 공항에 떨구어 놓은 것이다.
이 기상천외한 사건에 대해 영국 BBC는 ‘땅콩 분노(Nut rage)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늦췄다’며 한 개인의 분노가 모든 승객의 시간을 빼앗을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 가디언지도 “북한의 고려항공이 대한항공보다 나은 이상한 순간” 등 트위터 게시물을 함께 인용하며 보도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프랑스 AFP통신, 스페인 언론 La vanguardia, 독일 DPA 통신 등에서도 일제히 보도했고, 야후재팬에서는 최다 조회 기사 1위에 등극하기도 하는 등 대한민국 국호를 쓴 ‘KOREA AIRLINE’은 땅콩과 나란히 세계 토픽으로 장식되어 ‘국격’을 시궁창에 처박아 놓았다. 조현아의 ‘황제 갑질’ 소식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온 나라에 분노의 해일을 일으켜놓았다. 우리 사회 각종 갑의 횡포에 시달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재벌 사장 딸의 ‘개인적 일탈’로만 보지 않았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대담에서 “재벌대기업들이 3세 경영체제로 들어서면서 경영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세습경영을 하는 전근대적 기업문화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노동자들을 제 집 종처럼 부리는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되는 것도 기업문화가 그만큼 전근대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조현아의 ‘땅콩 회항’이라는 황제 갑질 사건은 정부의 개입만으로 하루아침에 해소되기 힘들고 “산업민주의의 관점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노동자의 대항권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면 이 같은 어이없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외신이 북한의 수령체제에 비기며 황당해 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 문화가 가진 후진성을 꼬집은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그저 책에 나오는 공문구일 뿐 현실에서는 재벌 3세에게까지 경영이 세습되는 것이 한국적 상황이다. 이것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조현아의 ‘황제 갑질’ 같은 일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은 재벌 3세라는 땅콩들에 발목 잡혀 한국 경제가 이륙을 포기하고 회항하는 우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