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두 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12월 21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조직차장 최강서씨는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맸다. 그 다음 날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초대 조직부장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이운남씨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진보개혁세력 대선패배의 충격은 이렇게 잔인하게 시작되었다.
최강서씨는 민주노조의 목줄을 죄고 있는 손해배상액 158억에 짓눌려 오면서도 대선에 실낱같은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개혁세력이 패배하고 한진중공업 조남호회장 같은 악질 자본가의 편인 박근혜 보수정권이 연장되는 걸 보자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으로 김진숙씨가 85크레인에 올라 장장 309일간의 고공농성을 진행했고, 5차에 걸친 희망버스로 수 만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을 실어 나르며 조남호 회장을 국회 청문회 자리에 불러낸 역사를 갖고 있다. 자본가 한 명을 청문회에 불러내기가 이리도 어렵다는 걸 보여준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나라에서 정리해고자들을 1년 후 재고용하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1년 후 92명의 정리해고자들은 복귀하자마자 ‘강제휴업’을 당했고, 회사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158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진보정의당은 2013년 1월5일 ‘AGAIN 희망버스-다시 희망 만들기’의 발을 떼었다.
당 지도부와 전국 각지의 당원들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자 농성장에서 출발해 울산 현대차 철탑 농성장을 거쳐 부산 한진중공업 최강서씨 영전에 꽃을 바치며 좌절 금지를 다짐하고 당원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모은 ‘희망미’ 300kg를 전달했다.
그러나 진보정의당 지도부의 마음은 무거웠다.
노조의 파업권을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묶어버리는 노동 후진국에서 ‘정리해고는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원의 입장을 바꾸라는 진보정의당의 외침은 무시되었다. 영국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로 나아간 계기가 파업에 손해배상을 때린 1900년 태프-베일 철도노조에 대한 판결이었다는 얘기는 그저 남의 나라 역사에 불과한 것 같았다. 파업권이 무력화되는 태프-베일 판결 이후 노동당 맥도널드 당수의 당원가입 서한에 호응해 몇 개월 만에 노동당에 가입한 조합원 수는 10만 명이 넘었고 1년 후에는 20만이 넘었고, 1903년엔 85만 당원을 거느린 거대정당으로 자라나 창당 6년 만에 29명의 의원을 당선시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노동기반의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진보정의당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노회찬, 심상정이 얼굴에 최루액을 맞으며 함께 싸우는 헌신을 보여도 노조는 그것으로 조합원들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업별로 파편화된 노동조합과 낮은 조직률,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노조활동가들의 불신이 노동 스스로의 자존을 낮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