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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강. 네트워크 정당론 비판
 

 

 

 

 

 

5부. 어떻게 하면 정당 정치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

 

36강. 네트워크 정당론 비판


1) 36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정당을 기존의 오프라인 조직 중심에서 온라인 네트워크 중심 모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살펴볼 생각이다.


그 전에 잠깐, 어제 중앙선관위가 선거제도 개정 의견을 낸 것과 관련해 본 강사의 생각을 말하고 싶다.

 

첫째, 선관위가 ① 선거사무를 관리하는 행정 기능과 ② 위법성 여부를 조사, 감독하고 경고장 발부 및 고소 고발을 주도하는 사실상의 사법 기능에 덧붙여 ③ 이번 경우처럼 사실상 법률 개정을 주도하는 입법 기능을 하는 것에 대해 왜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놀랍다. 특히 입법부와 정당들이 보인 수동적 반응은 스스로의 역할과 권한을 방기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 가운데 어디에서도 우리의 중앙선관위와 같은 기구는 없다. 우리의 경우 중앙선관위가 독립된 헌법기구라는 점에서 4권 분립체제라고 할 수 있고, 다른 3권을 가로질러 민주주의를 감찰하는 사실상 “관리된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 민주주의가 선관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된지 오래다. 지금도 투표용지를 정당들이 인쇄하는 프랑스 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둘째, 본 강사의 관점에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① 다당제를 유도해 야권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과 ② 야권 후보 단일화를 어렵게 하는 효과를 갖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은 정권교체 가능성을 합법적으로 축소시키려는 것에 초점이 두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지배의 기술은 누적되고 발전하나 저항의 기술은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이다. 중앙선관위가 순수 제도합리성의 관점에서 이런 개정안을 냈을 거다? 글쎄, 최고의 정치적 사안인 선거 경쟁의 규칙을 변경하는 문제를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본 강사는 1988년 선거법 개정 과정과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그러면서 야권이나 진보파들이 사안을 너무나 순진하게 이해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략적 의도 없는 정치 행위는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 선거제도는 정말 최고의 정치 전략일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정치권 특히 야권의 요구를 수용해 의도를 관철하는 것이 최고의 실력일 수 있다. 왜 그런 실력이 늘 야권이나 진보에게는 부족한지, 그저 눈앞의 작은 실리 때문에 쉽게 상황을 추수하고 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셋째, 개정안 내용으로 들어가, 비례대표제 확대를 중심으로 단체 및 법인의 정치 기부 허용, 지구당 부활 등등은 어떻게 볼 것인가? 아마 이런 문제들은 야당과 진보정당 내부에서 환영할 만한 사안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에 이런 개정안이 들어가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야권 내부에서 받아들일 만한 사안을 많이 추가해서 개정안의 수용 가능성을 높였지만, 핵심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역시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야권 내부의 작은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선거연합 내지 후보단일화의 유인을 덜 갖게 하는 한편 독자 세력화의 길을 열어주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중도에 후보 사퇴 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조항이 여기에 추가되면 사실상 야권 단일화나 연합을 장애하는 효과는 더욱 커진다. 야권 내부의 다당화를 유도해 집권당 중심의 1당 우위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1971년 대선에서 야권(김대중후보)의 강력한 도전을 경험한 뒤, 우리나라 집권세력의 항상적인 전략은 야권의 다당화였다. 야권의 분열을 위해서라면 진보정당도 육성할 수 있음을 유신체제는 보여준 바 있다. 민중당을 지원해 김대중과 그의 정당을 공격하게 했던 김영삼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넷째, 아마도 혹자는 집권당 역시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여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집권당의 분열 가능성은 주는 효과를 갖는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다당화의 효과를 갖는 개정안이지만, 그러나 그 효과는 모든 정당에 동일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집권가능성이 높거나 조직적 응집력이 강한 정당에게 다당화의 효과는 훨씬 할인되어 나타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야당에게는 훨씬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섯째, 선관위는 왜 자꾸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내는 것일까? 법과 제도가 바뀌면 새로운 예산과 기구가 필요해진다. 지금의 개정안에서 그 혜택은 선관위에게 돌아가게 된다.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 이후 선관위는 늘 제도 변화를 추구해왔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2004년의 선관위 입법안의 대부분을 스스로 부정하는 내용이 많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관계법은 선관위의 규제 능력을 약화시키는 내용만 빼고 나머지는 계속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어 왔다. “잦은 제도 변화는 관료제의 성장을 낳는다”는 것은 정치학의 기본 상식을 선관위만큼 잘 다루는 국가기구도 드물다.

 

여섯째,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은 선관위 안대로 실현될 것인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중요한 것은 상당 정도 야당과 진보정당들의 전략적 대응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것인가는 이제부터의 숙제가 될 것이지만, 각자의 좁은 관점에서 유불리만 따지게 되면 오히려 야권 내부가 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상황을 잘 이끌어가길 바라지만, 과연 지금 야권이 그럴 조직력이 있는지는 걱정이다. 아무튼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오늘 강의 주제인 “정당모델 교체론”의 문제로 넘어가자.


2) 낡은 정당을 새 정당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늘 단순해서 무모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그간 야권의 정당 개혁이 늘 그랬다. 결과적으로 정당을 바꾸기보다는 정당 스스로 자신의 조직과 기반만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제 남아 있는 당원도 없어서 당원을 중심으로 당을 운영할 수도 없기에, 국민/지지자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정당 개혁의 결과를 개선하기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인데, 이를 어찌할지 참으로 막막하다.

 


3) 사실 그간의 정당개혁이 ‘의도의 나쁨 때문’에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의도 자체부터 나빴다면 누구나 처음부터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듣기 좋은 의도와 선의를 앞세웠기에, 실제로는 상황이 나빠지도록 방치된 면이 있다. 따라서 좋은 의도만을 앞세워 민주주의론 내지 정당론에 반하는 일을 함부로 하는 것은 늘 조심해야 한다. 악마는 늘 선의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네트워크 정당론”을 말하는 것이 그렇다.


4) 이런 정당개혁론에서 이해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직 및 공직 후보자 선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정당이 자율적으로 행사해야 할 그 권한을 민주주의에서라면 어느 누구도 가져갈 수가 없다. 당연히 그걸 달라는 국민이 있을 수도 없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시민은 정당들이 내세운 공직 후보와 그들의 공약을 보고 최종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권자다. 정당들이 책임 있게 공직 후보를 내보내지 않으면 시민 주권의 의미는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해서 시민의 평가를 받아야 할 정당이 자신의 일을 시민에게 해달라고 한다면, 도대체 이런 민주주의는 무슨 민주주의인가.


5) 혹자는 시민의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하고자 정당 스스로 개방하겠다는데 그게 왜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시민 의사를 모으는 일로 본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선호와 의사를 모으는 것이라면 굳이 민주주의를 할 일이 아니다. 그런 일에는 시장원리가 더 낫고, 여론조사로 대신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손쉬운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 정당론’이 바로 그런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접근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6) 그러한 정치관이 최대로 실현된다면 당직이든 공직이든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의 평가가 거의 매순간 집약될 수 있을지 모른다. 시민이 온라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정치에서라면, ‘정치 주식시장’ 같은 것을 열어 모든 정치가들에 대한 시민 평가의 결과를 전광판처럼 보여줄 수도 있다. 굳이 돈 들여 선거운동을 할 일도 없고 정당의 역할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언제 네트워크에 접속해 평가를 하게 되지? 각자 하고 싶을 때 하나 아니면 같은 시간에 다 같이 접속해서 하나?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어떻게 하지? 그나저나 네트워크는 누가 깔고, 누가 관리하지? 확실히 이런 정치가 실현된다면 정당을 둘러싼 시끄러움은 사라지겠지만, 대신 “기술 전체주의”를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7) 민주주의는 정당 정치를 통해 시민의 의사가 논의되고 형성되는 긴 과정을 가리킨다. 시민의 의사가 주어져 있고 이를 모아 대표를 정하는 게 다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시민 의사의 결집과 그에 따른 대표 선발은 권위주의에서도 전체주의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들 비민주주의 체제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은 자율적 조직화 내지 다원적 결사에 있다. 특히 자율적 결사체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직체인 정당이 집권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복수로 조직된 정당들이 국가권력을 두고 경합하느냐에 달려 있고, 시민들이 주권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적 결정에 필요한 정보비용을 최소화해주는 것도 정당의 역할인데, 그것 없이 시민 스스로 상황을 따져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정보 능력과 지식 능력이 큰 계층 내지 이를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층에 편향적인 결과는 피할 수 없다.

 


8) 정당이란 특정의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공직 후보자를 지명해 선거 경쟁에 내보내는 것을 통해 민주정치의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당내 의사결정구조를 안정화하고, 이념·가치·정책을 체계화하고, 재정·사업·선전·교육 기능을 통해 당원을 질을 높이고, 당의 구성원과 지지자 사이의 연계를 잘 조직해야 한다. 이처럼 단단한 공동체·팀·조직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데, 네트워크 정당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당조직을 잘 만들고 다져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없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당과 조직, 당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대권과 재선을 위해서는 활용해야 할 가치가 있기에, 그들의 정당론에는 분열증적 심리가 가득하다. 사실 정당 연구자들에게 ‘네트워크 정당’이 생소한 말은 아니다. 원래 이 용어는 18세기 영국의 명사정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출신 가문이나 재산, 교육의 기준에서 특출했던 명망가들의 연줄 정당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의 네트워크 정당론은 그와 다르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당의 조직화된 대중 기반 없이 소수 명사들 위주로 추종자 동원에 전념하는 무정형의 여론정치만 심화시킨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9) 정당을 개혁하고 혁신하자는 것은 궁극적으로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중산층과 다수 서민을 위한 정치에 헌신하는 강한 정당,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정당, 일상의 시민 삶을 보호하는 생활 지킴이 정당, 당직자들의 얼굴에서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잘 조직된 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정당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일에 야당 스스로가 관심이 없다. 그저 차기 대권과 재선을 위한 수단으로써 정당을 보는, 일종의 ‘도구화된 정당관’이 그들의 생각을 지배할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오픈프라이머리니 네트워크정당이니 하면서, 당직과 공직 후보 선출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10) 온라인이든 인터넷이든 새로운 기술 환경에 적응하고 개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자. 그런 주장이 진심이라면 자신의 당 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주요 시·도지부 당 사이트는 더 가관이다. 지금 있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게 문제인데, 무슨 네트워크정당을 말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 실감난 경험을 하려면 직접 당원 가입을 시도해보라. 내가 아는 한 지인은 진땀을 뺐단다. 무슨 의도로 당원에 가입하려는지 의아해하는 통에 가입하겠다고 나선 자신이 당황했단다. 또 다른 지인은 탈당 신청을 했지만, 절차를 제대로 밟아주지 않아 수도 없이 전화를 해야 했단다. 오랫동안 당직 생활을 해 온 한 사람은 당내의 수많은 기구 가운데 작동되는 것은 지극히 소수라고 말한다. 청년위원회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당의 무관심 때문에 답답해했다. 당사가 어딘지도 모르는 의원은 수두룩할 뿐 아니라, 비례 의원 가운데는 당사 위치를 모르는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이도 있다. 자신들은 특별한 전문적 역할 때문에 의원이 되었을 뿐, 당과는 무관하다는 식이다.


11) 차기 대권을 위해 뛰는 사람과 그 주변의 행태가 이상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좋은 정당 만들고, 당내 다양한 계파들 사이에 좋은 경쟁과 협력의 체계를 이끌어내고, 정당 구성원들에게 자부심과 보람을 갖게 하고, 정치에너지를 최대화해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에 자신을 걸겠다는 정치인을 볼 수 없게 된 지는 오래다. 심심하면 온라인정당이다, 인터넷정당이다, 시민정치다 등등 뭔가 좋은 느낌의 구호를 여론시장을 향해 쏟아낼 뿐 정작 당내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당 안에서는 계파 간 소통도 공동의 의지를 모으려는 노력도 없다. 그저 당 밖에 대고 자신의 진정성만 외쳐대는, 참으로 이상하고 기괴한 정치만 한다.

 

12) 대권 주자 주변의 참모들은 한결같이 당에 가까이 가는 일은 정치적 상처만 입을 뿐이니 당과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늘려가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이런 습속만큼 정치를 나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정당이 가진 정치 자산을 사적인 목적에 전용하는 집단을 도당(徒黨)이라 부르는데, 이들이 대권에만 열정을 갖는 정치를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권력이 정치인 개인과 그의 계파가 배타적으로 품는 야심이 되는 한, 그들이 성공한다 한들 그건 민주주의에 독이자 해악이 될 수밖에 없다.

 

13) 소셜네트워크든 뭐든 소통 기술상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좋으나, 정당이 단단하게 응집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개방적이 되려 하고 시민 친화적이 되겠다고 해도 성과는 나지 않는다. 함께 땀 흘려 노력하는 실체적 협동을 경시하고 온라인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아무리 자신을 연호하는 추종자가 가상 세계에 넘쳐나도 그것으로 정치는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 언론과 세칭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정당을 싫어한다고 말하는데, 그것만큼 경박한 해석은 없다고 본다.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를 하는 정당들에 실망하고 비판하는 것이지, 그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제대로 된 좋은 정당이다. 제도화된 여론시장이나 가상여론의 세계 속에서 자기과시나 자기 홍보에만 몰두하는 일을 절제하고,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에 정치가로서의 소명을 다해주었으면 한다. 자신의 정당을 정당답게 만드는 일에서 승부를 보려는 정치가만이 대선에서도 멋진 승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 강의를 마친다. 다음 시간에 만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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