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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강. 정당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
 

 

 

 

 

3부. 정당의 민주적 기능과 역할

 

26강. 정당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

 

2월 10일 오후 4시, 박상훈 학교장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의당 중앙당 회의실에서 만납시다.

읽으시다가 궁금하신 점,
박상훈 학교장님께 직접 질문하세요! 

 


1) 26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정당의 기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바로 들어가 보자.

 

2) 정당은 ① 특정의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② 그에 맞게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 ③ 이를 통해 유권자의 선호 형성에 기여하고, ④ 지지자와 당원에 대한 정치교육자 역할을 하고, ⑤ 공직 후보자를 지명해 선거 경쟁에 내보내 선출직 공직자 집단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⑥ 공공 정책을 입안하고, ⑦ 갈등의 표출과 매개, 조정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 ⑧ 조직 구성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등의 기능을 한다.

 

같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즉, 일반 시민이 정치 생활과 관련된 가치와 태도, 신념 등을 습득하는, “정치사회화”의 주요 통로 역시 정당이며,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공공 정책”을 위한 의제(agenda)로 전환하는 것도 정당이며, 정당을 통한 정치참여가 시민참여의 중심을 이룰 때만 체제가 안정된다는 점에서 “참여의 제도화” 역할을 하는 것도 정당이고, 그밖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정당의 기능을 이렇게 저렇게 추가할 수도 있다.

 

3) 아무튼 위와 같은 수많은 기능을 잘 하기 위해 정당은, ① 당의 이념과 가치를 체계화하고, ② 리더십의 체계를 안정화시키고 결정의 절차와 과정을 잘 제도화해 조직 내 합의의 비용을 최적화하고, ③ 원내정당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입법, 예결산, 정부감독 등의 기능을 하고, ④ 재정, 정책, 선전, 교육, 사업의 기능을 구조화하고, ⑤ 지도부 - 대의기구 - 선출직 후보 - 상근 활동가 - 당원 및 지지자 - 유권자 사이의 연계를 관리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4) 모든 정당이 다 이상과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에 따라 특정 부분에 더 집중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집중하는 과제가 달라지면서 불균등하게 발전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당을 말하면서 지나치게 보편적인 발전방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때도 있다. 예컨대 19세기 말 대중정당의 충격이 강력했다 해서 그 뒤 모든 정당이 대중정당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몰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960대 말 이후 포괄정당적 특징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가 대중정당에서 포괄정당으로 옮겨간 것도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대중정당적 특성을 갖는 정당이 있고 또 새로 만들어진 정당 가운데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명사정당->대중정당->포괄정당->선거전문가정당->카르텔정당” 등과 같이 정당조직의 발전과정을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은 실제 사실과 너무 다른 이해방법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정당 개념들은 앞서 대충 살펴보았는데, 카르텔정당(cartel party)이란, 규모가 큰 정당들이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원을 정부나 국가에 의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국고보조금 같은 제도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넓게 보면 시민과 정당의 연계가 약화되는 대신 시민과 정부의 연계가 강화되는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의 정당 개념은 정당조직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현상의 등장을 상징하는 것일 뿐, 사실 지금도 명사정당의 특성이나 대중정당, 나아가 포괄정당과 카르텔정당의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정당조직에 보편적인 유형론보다는, 개별 정당의 차원에서 변화와 무변화의 선택과 그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왜 영국 자유당은 노동당이 등장해 지지기반을 급격히 침식하는 상황에서 대중정당으로의 전환을 하지 못했을까? 왜 독일 기민당은 형성기부터 대중정당의 길로 나서게 되었을까? 대중정당의 대표 모델을 구현한 독일 사민당은 전후 민주주의가 안정화되고 집권도 하게 되면서 어떤 측면에서 포괄정당적 특징을 수용했고, 또 어떤 측면에서 대중정당적 요소를 유지하고 있는가? 스웨덴의 사민당은 정기집권을 이어감에 따라 당 조직 차원에서는 어떤 변화의 압박에 직면했고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 갔을까? 왜 한국의 야당들은 이념적, 정책적, 대중적, 조직적 정체성 확립하는 단계 없이 스스로 정체성과 조직으로서의 응집력을 완화시키는 “(자해적) 정당개혁”을 했고 지금은 전형적인 명사정당적 특징을 갖게 되었을까?

 

5) 정당의 미래랄까 개혁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에컨대 대중정당을 지향해야 하나 아니면 포괄정당으로 나아가야 하나? 아니면 네트워크정당인가 온라인정당인가 인터넷정당인가? 어떤 정당 형태를 갖느냐 하는 것에는 그 어떤 보편적 답이 있지 않다. 정당이 처한 조직과 환경에 따라, 자신의 맞는 정당 형태를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정당은 당원과 지지자를 폭넓게 통합해내기 위해 어떤 이념과 가치를 체계화하고 있는가? 당내 합의의 비용을 최적화하기 위해 어떤 결정의 절차와 과정을 제도화하고 있는가? 책임 있는 대안정부가 되기 위해 원내 정당을 어떻게 운영해 유능한 예비내각을 조직하려 하는가? 조직 내 재정과 선전, 교육, 사업의 기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는가? 지도부 - 대의기구 - 선출직 후보 - 상근 활동가 - 당원 및 지지자 사이의 연계를 어떻게 튼튼하게 결합해 구성원들이 보람 있는 당 생활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여론을 형성하고 유권자의 선호를 구조화해내려 하는가? 지지자와 당원에 대한 정치교육 및 정치사회화 기능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실질적 답을 각자의 정당들 스스로 찾아가는 데 있지, 모든 정당들이 따라야 할 조직 형태나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온라인이 발달했다고 온라인정당이 되자고 하고 인터넷의 역할이 크다고 인터넷정당이 되고 네트워크정당이 답이라는 등의 즉자적이고 획일적인 정치 구호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 정당이 정당답게 되는 일을 회피해 온 것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6) 정당조직 이론에도 “형성기 특성의 지속성” 테제는 설명력이 강하다. 즉, 조직이든 체계든 일단 초기에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징이 그 이후에도 잘 안변하고 지속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조직은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어떤 기반에 의존해 정치적 자산을 극대화하려 해왔을까?

 

여당의 기원으로서 자유당과 공화당은 모두 “국가 파생적 정당”의 특성을 갖는다. 두 경우 모두 “반정당주의”를 내건 세력이 국가권력을 먼저 장악한 다음 정당을 사후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사회적 기반은 약했고, 국가의 자원에 의존하는 바는 컸다. 그러다가 여당이 사회 속에 지지기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정부 이후, 즉 “야당 집권기”였다. 국가권력을 잃고 나서야 사회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야당은 집권하면서 당 조직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정을 계속해왔다. 국가권력을 다시 잃고 야당이 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 조직과 당원을 “시민정치”와 “국민을 앞세우는 정치” 속으로 해체시켜 버렸다. 한나라당은 야당이 된 뒤 당 조직을 다시 강화하고 사회 속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과 대비되는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 여야 간 당 조직력이 지금에 와서는 확연히 여당 우위적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는 여당의 조직력이나 사회적 기반이 잘 조직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정부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정당정부 내지 책임정부를 이끌 독자적 힘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른 나라의 안정된 정당들을 염두에 두면서 객관적으로 말하라면, 새누리당 역시 정당의 사회적, 조직적, 이념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7) 야당의 기원은? 애매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 야당의 전형적인 특징은 제1공화국 당시 집권동맹의 일원이었던 한민당에서보다 이승만정권에 대한 반대당의 성격을 갖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의 민주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부터 분명한 것은 “누가 집권당에 맞설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민주당 구파/신파로 나눠졌고, 60년대 말 “40대 기수론”에서 양김의 대결도 그와 유사한 특성 가졌으며, 80년대 말 민주화이후에도 그런 특성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강한 국가중심성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성은 늘 여당에 프리미엄을 주었고, 반대로 야당의 경우는 그에 대한 “거울 효과”로, 누가 국가권력의 소유권을 둘러싼 도전에 나설 것이냐의 문제가 언제나 당내 갈등을 압도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어떤 차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정당은 “약한 사회적 기반과 강한 국가적 의존성”을 중심적인 특성으로 한다. 정당들이 왜 이념, 가치의 차원에서 차이가 약하고 쉽게 서로를 따라 모방할 수 있는지, 유권자 및 당원 교육 기능은 왜 체계화되지 않는지, 이런저런 세력 간 차이나 갈등이 왜 “1노/3김”, “친이/친박”, “친DJ/반DJ”, “친노/비노” 등 사인화된 형태로 정의되는 것인지, 계층과 같은 사회적 내용상의 차이가 빈약한 것은 왜인지, 등등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기반으로부터 설명되는 바가 빈약하다는 말은 반대로 국가나 제도에 매달려 있는 측면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제1야당은 역설적이게도 강한 국가중심성, 대통령중심제, 분단, 소선거구제 등의 최대 수혜자인 측면도 있다. 왜? 이 모든 것이 제1야당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반도 조직적 응집력도 안정된 대중기반도 없으면서도 늘, 사회 속의 모든 반대와 항의의 요소를 집중시켜 강한 집권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울 수 있었고 자신을 그 수혜자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9) 이상 살펴보았듯, 한국의 정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측면보다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의 측면에서 더 많이 설명된다. 그리고 그 핵심은 도대체가 정당들의 사회적 내용을 “특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확실히 이 문제는 한국에서 보통선거와 정당이 사회 속에서 긴 갈등을 거쳐 획득된 것이 아니라,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그리고 그 뒤 전쟁과 분단을 거치고, 강한 권위주의 국가를 발전시키게 된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민주화는 단지 선거경쟁의 민주화만 있었을 뿐 정당 정치의 하부기반을 민주화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랫동안 유예된 과제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제2의 민주화” 혹은 “두 번째 민주화 이행”의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당 정치를 민주적 가치에 맞게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한국의 정당 정치를 민주적으로 도약시키는 과제와 제대로 대면하게 될까? 이 과제를 초월해 한국정치가 민주적 가치에 맞게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정치 제1단계의 과제가 수평적 정권교체였다면 2단계의 과제는 확실히 제대로 된 정당 만들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0) 야당의 국회의원들이나 정치 활동가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대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글쎄, 본 강사의 역할은 정당론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에 있다.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조직해야 할 역할은 당사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제를 넓고 깊게 생각하고 나아가 각자가 처한 현실의 조건과 견주어 보는 긴 사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성급하게 답만 구한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내 문제의 협소한 관점에 갇혀, 경쟁 계파의 잘못을 알리바이 삼아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에만 열정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에게 좋은 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자신을 부각하는 일에만 골몰하지 말고, 좀 더 넓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열정을 발휘하게 되면 스스로의 인상부터 좀 더 밝아지고 또 주변에도 밝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발 그런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 강의를 마친다. 다음 시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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