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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강. 정당에 대한 잘못된 이해 : 국민 포괄정당론

 

 

제1부 왜 정당인가

9강. 정당에 대한 잘못된 이해 : 국민 포괄정당론
 
1) 9번째 시간이다. 지난 강의에서는 한국 정당체계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이끌어왔던 지역주의 문제를 다뤘다. 오늘은 정당조직론과 관련된 잘못된 해석을 이끌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다룰 것이다. 그것은 정당이 사회를 나눠서 대표하는 것을 오히려 잘못처럼 말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국민 포괄정당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 문제 역시 다루기 힘들다. 특정 사회집단이나 당원만이 아니라, 국민 일반을 대표하겠다는 것이 왜 문제냐며, 의아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2) 우선 “국민 포괄정당론”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주창한 것은 야당이었는데, 사실 야당이 정당 조직을 개혁한다고 할 때, 그것은 과거 권위주의시절 DJ와 YS라고 속칭되는 “양김 식 보스정치” 내지 보스 개인에 의존하는 정당조직을 좀 더 대중적이면서도 더 단단한 당 조직을 만들어 가는 데 있었을 것이다. 개인 보스에 의존하는 다소 전근대적인 정당조직보다 더 강한 조직으로 변화하는 것이 목표여야 했을 것이다. 당의 정체성도 좀 더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그에 맞게 정책 프로그램도 구체화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상근 당 조직에서 지역 당 조직에 이르기까지 내실 있게 운영했어야 했을 것이다.
 
3) 아마도 정당 개혁을 주도했던 사람들(본 강사가 보기에 초기 열린우리당을 주도했던 이른바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과 지구당 폐지에 앞선 섰던 김근태에서부터, 뒤에 민주통합당과 민주당에서 모바일투표와 국민경선제, 네트워크정당론을 주도했던 문성근, 문재인, 그리고 최근에는 정당공천과 중앙당 폐지를 주장했던 안철수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은 그렇게 의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되었다. 낡은 조직의 구조와 문화를 바꿔가는 힘든 노력 대신, 조직의 기반 자체를 없앰으로써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마도 개혁자들 개개인은 여론에서 인지도가 있으므로, 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문제를 조직의 기반을 없애서 해결한다? 그게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정당 조직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런 정당 개혁이 지금 남긴 것은 무엇일까? 지금 야당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조직으로서의 당보다는 의원 개인들로 이루어진 모래알 같은 모임처럼 된 것도 한 결과이지만, 과도한 여론동원 정치 역시 대표적인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의원들은 상임위나 당 조직에서의 역할보다는, 누가 먼저 (기자들이 몰려 있는) “국회 정론관”에 달려가 자신을 언론 보도나 기사의 주인공이 되게 할 것인가를 두고 필사의 경쟁을 하는 정치에 주력하고 있다.
 
그밖에도 하나 더 꼽으라면, 그렇게 개혁 조치를 쉬지 않고 해왔지만, 결국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직과 공직 후보 선정과 같은) 당내 권력 경쟁의 양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즉 경쟁에 참여하는 한 쪽은 구시대적인 듯이 비난되어 온 “호남”과 “호남향우회” 그리고 이들이 중심인 “기간 당원”에 의존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다른 쪽은 당 조직 밖의 “가상세계”와 “선거인단”의 동원에 의존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결국 서로 섞일 수 없는 “비대칭적 경쟁”을 당내 정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상 살펴본 정당 개혁론을 뒷받침했던 이른바 전문가 내지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중정당의 시대는 끝났다”거나 “이제는 포괄정당의 시대다”라는 테제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대중정당(mass party)과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무엇보다도 대중정당은 간부정당(cadre party)과 대비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대중정당과 간부정당 모두 초기 정당론을 집대성한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듀베르제((Maurice Duverger)가 발전시킨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간부정당은 (과거 영국의 보수당이나 자유당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명사들로 구성된 “원내의 의원들”이 선거의 필요성 때문에 만든 조직으로, 의원들의 개성은 강한 반면 정당의 기율은 약하고 정치자금도 의원들 스스로 직접 조달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사실상 원내에서만 활동하고 존재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대중정당은 무엇보다도 (20세기 초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과 같이) “원외 정당”에서 출발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으로부터 지지와 정치자금을 조달했고, 빈민 지역의 유권자를 동원하고 다양한 공제조합을 조직해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이념적으로도 매우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고, 기율은 강했으며, 일반 당원들이 납부하는 소액의 당비를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서구의 진보정당은 대부분 대중정당의 방식을 통해 성장했으며, 이를 통해 보수정당들이 대중정당으로 바뀌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포괄정당은 일반적으로 1960년대 이후 서구 정당조직의 변화를 가리킨다. 이 개념을 발전시킨 사람은 독일의 정치학자 오토 키르히하이머(Otto Kirchheimer)였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이를 다룬 자신의 논문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우리사회에서는 이 개념을 보통은 정당 이념이 더 이상 중시되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 종언론”이나, 산업화로 인한 풍요 덕분에 특정 계급이나 계층에 정체성의 기반을 두지 않고 좌우의 모든 계급에 호소하려는 “국민정당론”으로 해석하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던 (정당론의 마지막 패러다임을 만든 정치학자) 피터 마이어가 강조한 것인데, 무엇보다도 포괄정당은 대중조직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 대중정당이 새로운 정치 자원을 다른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고 있는 유권자 집단에게서도 찾고자 하면서 당 조직의 기능과 체계를 변화, 확대시킨 것을 가리킨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던 대중정당 조직의 자연스러운 변화 내지 유연화를 말하는 것이다.
 
5) 이 문제를 정당론의 또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자. 지금까지는 정당체계와 정당조직이라는 분야를 각각 따로 살펴보았는데, 그 둘 사이 즉, 정당체계와 정당조직 사이의 인과적 상관성을 다루는 것도 정당론의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정당조직의 변화 이면에는 정당체계의 변화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정당론을 체계화한 사르토리와 앞서 잠깐 살펴보았던 균열 및 정렬 이론을 체계화한 립셋·로칸(Seymour Martin Lipset and Stein Rokkan)만큼 이 문제를 강조한 사람도 없다. 이하에서는 이들 정당론의 핵심 논지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① 먼저 대중정당은, 새로운 종류의 정당이 등장해 기존 정당체계에 충격을 가하고 이를 매개로 다른 당의 조직에게도 변화를 강제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진보적 제3정당이 선거시장에서 급성장하면서 대규모로 하층 대중을 정치에 불러들이고 기존 명망가엘리트 중심의 명사정당들에게도 변화의 압박을 가했던 경우이다. 요컨대 제3정당의 충격이 명사정당 내지 간부정당이 중심이 된 정당체계를 변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개별 정당들에게 대중적/이념적 기반을 강화하도록 변화시킨 것을 말한다.
 
② 포괄정당은 대중 민주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 기존의 정당체계가 안정화된 다음, 그 내부에서 대중정당 스스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선거시장에서 대중동원이 주요 정당에 의해 대부분 소진된 이후, 달리말해 더 이상 추가적 정치 에너지를 증가시키기 어려워졌을 때 정당조직 상에 나타난 변화를 가리킨다. 앞선 대중정당의 경우가 정당들의 대중적 지지 기반 사이에 상호배타성이 큰 특징을 가리킨다면, 이 두 번째 경우는 그런 배타성을 약화시켜 다른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었던 지지 시장(support market)에도 다가가는 동시에, 기존과 같은 대중 조직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가면서 새로운 지지 시강에 적응하기 위해 당 조직의 기능을 변화시키게 되었음을 말한다.

  

6) 이상 살펴보았듯, 포괄정당을 정당체계의 변화와 무관한 정당 내적 현상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 방식이다. 다시 강조하겠다. 첫째, 앞서 강조했듯이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포괄정당은 대중민주주의 단계 즉, 정당체계의 안정성 이후에 나타난 변화라는 사실이다. 기존에 선거권을 갖지 못했던 중하층의 일반 대중들이 광범위한 지지 시장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으로 나뉘어 이들을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동원하는 과정 이후의 변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혹은 정당체계가 대중적으로 제도화된 이후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둘째, 대중정당과 포괄정당은 일종의 이념형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근 독일의 사민당과 기민당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정당이 얼마든지 대중정당적 측면과 포괄정당적 측면을 같이 가질 수 있다. 혹은 조건에 따라서는 대중정당적 측면이 더 두드러질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이상에서 살펴본 이론적인 검토 말고,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는가? 정당이 대중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응집적이 되는 과정 없이 그냥 처음부터 무작정 국민 포괄정당이 되고자 한다고 그게 잘 될까? 오늘날 명사정당 내지 간부정당으로 퇴락한 야당이 보여주듯, 국가 예산으로부터 정치 자금 지원받아 당 운영하고, 의원 개인들은 각자의 재정동원능력에 의존해 선거를 치루고, 모두가 여론을 매개로 국민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호소해 온 것이, 결국 정당의 정체성만 해체시키고 당 조직의 힘이 전혀 뒷받침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말고 뭐가 다를 게 있었을까?
 
7) 서구에서 대중민주주의의 안정화를 이끈 것은 정당들에 의한 “분할 조직화”의 단계를 통해서였다. 다시 강조하겠지만 이 단계 없이 포괄정당이 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 정당체계는 제도화도, 안정화도 되어 있지 않다. 대중조직적 기반은커녕, 명사정당적 현상만 심화되어왔고, 개별 의원들이 여론동원 정치에 더 깊이 침윤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유권자 가운데 스스로를 특정 정당에 일체감 내지 정체성을 갖는 존재로 정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균열이나 갈등은 뚜렷한데, 그러한 차이가 서로 배타적인 정당통로(party channelment)를 통해 대표되지도 통합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기에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해 강렬한 관심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기존 정치 모두를 부정하는 “유사 반정치주의자” 내지 “유사 반정당주의자”처럼 말하고 행동하곤 하는데, 이들의 태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정당은 이제 인기가 없다”라거나 “대중정당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하면서 계보 없는 정당론이나 이상한 정치론을 말하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비판적 무당파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 제대로 된 정당이지 정당이 아닌 정치 나아가 정치가 아닌 다른 수단이나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들의 열정이 새로운 정당의 출현에 의해서든 아니면 기존 정당의 변화에 의해서든 수용되고, 시민 집단이 전체적으로 서로 다른 정당들에 의해 나뉘어 통합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먼저 있기 전까지, 정당 스스로 비정당적 정체성 내지 이미지 정치에 의존하면서 당 조직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일은, 결과적으로 정당체계와 유권자 사이의 거리감만 크게 만들 뿐, 정치도 민주주의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8)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갖는 최대의 매력은 사회의 복합적 갈등을 몇 개 안 되는 소수의 대안으로 분할해서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그렇게 해야 갈등의 표출과 집약에 필요한 거대한 사회적 비용이 각각의 정당 안에서 내부화(internalization of social cost)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이 강해져야 사회가 전체적으로 통합되는 효과를 갖는다. 안 그러면 모든 사안과 모든 정책 쟁점마다 정치세력들이 새롭게 쪼개지고 나눠지고 갈등하게 될 텐데, 그럴 경우 정치는 끊임없이 혼란스럽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참여의 확대는 갈등과 통합의 비용을 증대시킨다. 조직은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을 최적화해서 그러한 갈등과 통합의 비용을 줄여주는 기관을 뜻한다. 따라서 “조직으로서의 정당(political party as a organization)”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과정 없이 개방을 통해 참여와 지지를 늘리려고만 할 때 통합의 비용은 해결 가능한 한계를 넘어 증대된다. 당 조직의 능력은 떨어지는 반면 통합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그것이 정당조직 내부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9) 정당도 하나의 통치체이다. 권위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에 구성원들을 따르게 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응당 참여와 개방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효과적 기능 통제와 갈등 관리가 가능한 조직으로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이 점을 다시 강조하면서, 오늘의 강의를 마친다. 다음 강의는 1부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강의를 총괄하면서, 2부 이하의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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