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가?
법치란 말 그대로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법, 그리고 법 집행이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이자 갈등을 조정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위정자들이나 보수집단들은 오랫동안 ‘대한민국=법치국가’임을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해 법치국가의 역사적 어원을 보면, 절대군주가 마음대로 행정을 하던 경찰국가에 대하여, 행정은 미리 정립된 법률에 의해서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의거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법치주의는 근대의 산물로 신에 의한 지배나 사람(절대군주)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 법의 지배로 넘어가면서 등장했다. 그것은 국가의 통치 행위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회에서 제정된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로,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 국가 권력의 남용 방지, 국민의 법 앞의 평등 실현 등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과 법질서란 시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자나 권력기관을 통제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안전장치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는 이런 법치의 대명제가 훼손되어 왔음을, 그리고 그런 법치주의 훼손의 중심에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찰과 검사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검사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며, 검찰은 감사들로 이루어진 국가조직이다. 법률은 검사에게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 범죄 수사와 기소, 재판과 형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아울러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를 보면, 대한민국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6-②)”고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익의 대표자란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피의자나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공익적 관점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에 적시된 규정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권한 남용, 편파수사, 표적수사야말로 검찰 수사의 대명사였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기보다는 오로지 정치권력의 잇속만을 챙기는 검찰,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만을 좇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골몰하는 검찰, 일종의 정치계급이 되어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특권을 향유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검찰 등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 검찰의 자화상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검찰이 보여준 역사였다.
2008년 3월 대통령 취임 직후 이명박은 법무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새로운 정권에서는 정치가 검찰권을 악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약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가 검찰에 개입하여 검찰권을 악용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지만, 검찰이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했고, 검찰은, 특히 이른바 ‘정치 검찰’은 아무 저항이나 이견 없이 대통령의 뜻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맘껏 챙겼다. 이명박 정부 하의 검찰총장들은 한결같이 이른바 ‘코드’에 맞춘 수사를 충실히 진행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절제와 품격은 말뿐이었고 검찰 권한은 남발되었다.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땅바닥에 추락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여전히 법에 의한 통제와 국민 감시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검찰입니다”(김두식의 << 헌법의 풍경 >>)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이명박 정부의 검찰 역시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스폰서 검사’ 파동
2010년 6월 11일. 검찰총장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 사죄했고, 검찰은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다짐했다. 2010년 4월 은 스폰서 검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렸으며, 현직 검사장 2명을 포함하여 향응을 받은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기록된 문건이 공개됐다. 파장은 컸고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PD수첩 홈페이지에는 5,000여건의 격려 글이 쏟아졌으며 언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이번 보도는 집권세력들이 왜 MBC를 장악하려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하기도 했다.
검찰은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고,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한 현직 검사 10명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당은 스폰서 검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압박했다. 여론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국회는 6월 29일 엉거주춤한 자세로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검찰의 자체 징계가 끝나고, 한 달 보름여 만에 스폰서 검사 특검팀이 꾸려졌다.
9월 28일 역대 9번째 특검팀은 24억여원의 국가 예산을 받아 67명의 수사진을 꾸린 뒤 55여 일간 조사를 끝낸 뒤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됐던 핵심인물 등을 대부분 무혐의 처분하면서 검사 4명만을 기소하였다.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박기준 전 검사장은 아예 모든 혐의가 무혐의 처리됐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조차 뒤집은 것이었다. 수사 결과에 대해 야권과 시민단체는 “국민의 혈세만 날린 특검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난했고, 특검 무용론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대법원은 지인에게 사건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스폰서 검사 제보자에 대해 징역 1년 6월 및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랜저 검사’ 파동과 검찰총장 한해 판공비 190억원
2010년 11월 16일 검찰은 이른바 ‘그랜저 검사’ 의혹을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뒤 수사 결과만을 보고하는) 특임검사제를 통해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랜저 검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스폰서 검사 특검팀의 수사가 종결된 지 딱 일주일만인 10월 5일로, SBS가 단독보도를 통해 ‘한 부장검사가 고소사건의 당사자로부터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즉 고급차를 대가로 후배 검사에게 청탁을 해 수사 결과를 왜곡되도록 했다는 의혹이었다. 언론보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여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든, 이명박 정부 들어 희귀해진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고 반전은 예고돼 있었다. 검찰은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로비 사건’ 수사를 명목으로 국회의원 11명의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사정정국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회기 중에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던 일이었다. 청목회 로비가 회기 중 압수수색을 할 만큼 악질적 범죄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검찰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갑자기 진행된 검찰의 청목회 수사에 대해 물타기 수사라는 비난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검사들의 비리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검찰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제도적 변화를 약속해왔다. 그러나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이후 발생한 큰 규모의 검사 비리 사건은 대부분 여론의 무대 뒤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단지 한 두 명의 사표를 수리하는 꼬리 자르기 정도로 적당히 무마해 온 관행은 계속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검찰총장의 판공비를 비롯한 260억원에 달하는 법무부의 판공비가 도마에 올랐다. 청목회 등 10만원의 소액후원금을 문제 삼아 정치권 전체를 부패집단으로 몰고 가는 검찰이 정작 자신들의 눈먼 돈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판공비는 영수증 처리 없이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점에서 투명성이 늘 문제가 되고 있었다.
2010년 11월 25일 진보신당은 논평을 통해 “검찰총장 한해 판공비가 19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19억이 190억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아닌지 다시 확인해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라면서 “검찰보다 조직이 훨씬 큰 10만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 판공비 5억 5,000만 원도 결코 적지 않아 보이는데, 이에 서른 배가 넘는 많은 돈을 검찰총장이 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땅에 떨어진 검찰의 도덕성과 대포폰 부실수사 등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는 때에 검찰총장 판공비가 190억이라면 과연 누가 이를 납득할 수 있겠냐”면서 “상식에 비추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검찰총장 판공비는 전액 삭감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신뢰를 상실한 이명박 정부의 검찰
지난 2011년 9월 27일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법무부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검찰 신뢰 저하 원인 분석을 위한 조사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사는 검찰 신뢰 분야를 ‘공정한 업무수행’ ‘공직윤리 준수’ ‘사회적 책임의식과 조직역량’ 등 3가지로 나눠, “부족하다”고 답한 응답자를 상대로 세부 원인을 재설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 검찰이 공정성을 잃은 이유(복수응답)로 ‘권력과 돈, 피의자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불평등한 수사’(53%)가 1위를, ‘정권에 편파적인 수사’(26%)와 ‘국민의 정의나 상식에 상반된 수사결과’(25%)는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검찰을 17%만 신뢰했고, 13개 공공기관 중 검찰의 신뢰는 10위에 그쳤으며, 또 ‘검찰이 잘하고 있다’는 질문에 일반인들은 18%만 동의를 했다. 일반 시민들은 검찰의 가장 미흡한 수사 분야(복수응답)로 공직비리(52%)와 기업비리(42%)를 꼽았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검찰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등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전문가 심층면접(FGI)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기자, 대기업 법무담당자, 중앙부처 공무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검찰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진단은 일반 국민과 검찰 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유사했지만 위기극복 방안에서는 엇갈렸다. 일반 시민들은 검찰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감시체계가 필요하다고 했고, 전문가 그룹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별도의 수사기구 설치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한 권한 분리도 나왔다.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제기된 검찰 개혁 방안을 시민들과 전문가들도 제안한 것이다. 반면 검찰은 검찰총장에 대한 선출제 또는 국회 동의를 통한 대통령 임명제 도입, 청렴도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외부의 민주적 통제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달리 검찰은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영원하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혀있다. 여기서 ‘법 앞에’의 현실태가 바로 검찰이다. 그랜저 받은 부장검사 한 명을 날리면, 법 앞에 평등은 입증되는 것인가? ‘법 앞에 평등한 것은 만인이 아니라 단지 만 명뿐’이라는 노회찬(정의당 전 대표)의 목소리가 울림이 더 큰 까닭은 이에 대한 이해력이, 아니 알고자 하는 관심조차도 대한민국 검찰과 이명박 정부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영원하다.” 이 한 문장에 대한민국 검찰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법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시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였다. 그 뒤바뀜의 실현에 검찰이 늘 선봉에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져온 권위주의 독재 시절, 그리고 그 직후까지도 검찰은 정권의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 당시 한 검사가 자조적으로 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민주화를 계기로 검찰의 위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검찰은 정치권력의 가장 중요한 통치기구가 되었다. 유신 시절 최고 사정기관은 ‘남산’이라는 별칭의 중앙정보부,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는 보안사였다. 민주화 이후, 특히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이들이 밀려난 뒤 검찰은 영향력을 확장하다가, ‘민주파’ 집권 시기에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 속에서 검찰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파워 엘리트 집단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즉 권력의 수족 노릇을 해왔던 검찰이 민주화 이후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정치적 힘을 행사하다가 이제는 공동의 통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 되었다.
사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까지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 정부는 처음으로 검찰개혁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경우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지만 실제로 검찰 개혁을 위해 진행한 일은 별로 없었고, 노무현 정부는 나름 시도는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역대 정부 가운데 검찰의 독립성을 가장 잘 보장해 준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검찰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였다. 그러나 선출되지도 교체되지도 않는 권력, 그것도 현실적으로 무적의 파워를 자랑하는 배타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권력집단에게 아무 견제장치 없이 독립성만 보장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는 ‘노무현의 비극’이 웅변해주고 있다.
두 개의 글을 인용하면서 다섯 번째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나는 유시민이 정리한 << 운명이다 >>에 실려 있는 노무현의 발언이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 이후 김대중이 자서전에 쓴 글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겨쳐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역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개탄스러웠다.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김대중)
출처: http://www.justicei.or.kr/239?category=553328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