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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2. ‘총체적 부패공화국’과 한국형 정치부패의 특성

 

                                                                                                                         


                                                                                                                                                                                                                                            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 소장)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취임부터 퇴임에 이르기까지 5년 내내 숱한 정치부패 사건과 의혹사건으로 점철되었다. ‘전과 14범’ 논란, BBK 주가조작 사건, ‘형님예산?마누라(영부인)예산’, 측근비리의 속출과 개국공신 ‘6인회’의 몰락, 비리의 온상 ‘4대강 사업’, 비리와 부패의 종합선물세트인 뉴타운 개발, ‘스폰서?그랜저 검사’ 파동….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정치부패와 한국형 정치부패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자.

 

정치부패에 대하여

사실 부패는 그 양상과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으나 거의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사회가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를 따라 형성됨으로써 독특한 성격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패의 양상 역시 사회마다 다른 특성을 보이고 또 같은 사회 내에서도 대단히 다양한 부패의 형태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부패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어떤 기준을 적용시키냐에 따라, 예컨대 부패의 정도(백색?회색?흑색)와 주체(정치?행정?기업?언론 등), 성격(축재형?생계형), 방식(거래식?강압식), 규모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 대체로 부패란 부당한 방법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도모하거나 실제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패는 그것이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빙산 모형(iceberg model)을 이룬다는 특징을 갖는다.

부정부패 현상의 원인도 매우 다양하다. 학연, 혈연, 지연 등 연고를 잘 따지는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적 배경,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만 하면 된다는 지나친 목표지상주의 그리고 황금이 행복의 척도라는 배금주의 등 여러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접근법 역시 다양한데, ①개인의 도덕적 측면에서의 가치관이나 심리적 특성이 부패행위를 유발한다고 보는 개인적 접근방식이 있는가 하면, ②국가의 특성, 자본주의 발전의 특성, 혹은 근대화 및 정치발전과 경제발전 등이 부패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보는 정치경제적 접근방식, ③아시아 국가의 부패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특성을 주요 원인으로 고려하는 사회문화적 접근방식, ④법령과 규제 등 행정제도적 측면의 한계와 역기능이 부패를 양산한다고 보는 법·제도적 접근방식, 그리고 ⑤개인이나 제도의 결함이나 실패가 아니라 부패현상을 정부와 국민의 상호작용, 개인에서부터 단위조직, 행정조직 전체, 나아가 정치구조 등에 걸쳐 있는 구조적 환경 등이 결부된 결과물로 보는 체제적 접근방식 등도 있다.

부패에는 정치제도와 경제제도의 거시적 구조로부터 시민들 개개인의 일상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의 제도나 문화요소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부패문제에 접근할 때 이러한 점은 더욱 강조된다. 한국사회에서 부패는 권력적 성격이 강하고,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부패이고 일종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다. 이른바 ‘정-경-관이 유착된 부패사회’, 부패에 대한 저항의식이 낮고 부패의 관용도가 대단히 높은 ‘부패문화가 만연한 사회’, 물적 관계 혹은 혈연, 학연, 지연 등 인적 관계로 맺어진 ‘부패 네트워크의 사회’ 등으로 한국사회의 부패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총체적 부패공화국’의 근원으로서 정치부패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는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라는, 즉 총체적 부패공화국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꼬리표가 붙여져 왔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가장 낮은 집단으로 줄곧 정치권을 꼽아왔으며, 그 근저에는 정치인들의 부패와 거짓말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신의 대명사인 정치인을 풍자한 씁쓰레한 유머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국회의원을 실은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절벽 아래 논두렁으로 추락했다. 때마침 폭우를 걱정하던 농부가 논을 살피러 나왔다가 그 현장을 목격했다. 농부는 땅을 파고 국회의원들을 모두 정성껏 묻어주었다.

며칠 뒤 파출소장이 지나가다 부서진 버스를 보았다. 국회 소속의 버스임을 알고는 농부를 찾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농부는 파출소장에게 국회의원을 전부 묻어주었노라고 말했다. 

“아니, 그렇담 국회의원들이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겁니까?”

농부 왈,

“뭐 몇 사람이 살아있다고 외쳤지만 그 사람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정치권력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패, 정치권력과 정치인이 부패의 주체가 되는 정치부패는 통상 정경 유착 또는 정-관-경 유착 속의 부정부패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또 대규모 부패이자 축재형 부패라는 성격을 지닌다. 정치부패는 총체적 부패공화국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즉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에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이처럼 정치부패를 통해서 소수의 사람들은 이익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비용은 사회의 다수에게 돌아가게 된다.

정치부패의 부정적인 영향은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정치 부패가 존재하면 사회적으로 정치적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 정치부패의 단기적인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부패가 횡행하면 상대방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행동할 것이라는 신뢰가 사이에 사라지고,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이 사회적 게임의 규칙에 대한 준수를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정치부패는 계속 악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정치 부패는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부패한 집단들의 성장을 도울 것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정당한 경쟁, 합리적인 의사 결정, 그리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정치 부패의 심각성은 바로 이처럼 그것의 부정적 효과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파급되며 질서와 게임의 룰을 해치고, 제대로 근절되지 않을 경우 계속 심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한국형 정치부패의 특성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문제는 이제 한 국가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뿌리 깊은 정치부패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 해방 이후 역대 정권 때마다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부정부패 문제에 관한 한 아직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부패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의 특징을 나타내왔다. 이것은 외국의 사례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특권층에 의한 정치부패의 만연이다.

한국의 현실을 보면 부패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부패의 성역은 없을 정도로 그 오염의 정도는 엄청날 정도로 심각하다.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특권층의 부패는 특히 문제다. 기성 정치권이나 관료사회의 경우 권력형 비리, 정치부패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독점재벌을 위시한 재계 또한 정경유착의 당사자로 인식됨과 동시에 오래 전부터 자본축적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계나 종교계, 학계도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둘째, 부패 관행의 사회화?대중화이다.

우리의 부패 문제는 단지 이러한 상류층, 특권층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민생 곳곳에 스며든 경찰 비리, 각종의 검은 상납 고리, 촌지에서 입시부정에 이르기까지 비리로 멍들어가는 백년대계 교육….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처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결탁에 의해 자행된 구조적인 비리와 부패의 먹이사슬은 사회 전체에 부패를 확산시키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마치 부패가 없이는 기업도, 출세도, 그리고 생존마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의 관행이 일종의 ‘삶의 방식(modus operandi)’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며, 이러한 구조화된 부패 현상은 사회공동체를 급속하게 해체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총체적 부정부패의 난맥상은 정신적 황폐화와 도덕적 규범 및 윤리적 가치기준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산, 새로운 역사적 비전과 희망의 창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해가 자연환경을 망가뜨린다면, 부패는 일종의 사회적 공해로 천민적이고 비도덕적인 지도층과 상류층을 양산해내는 반면에, 동시에 깨끗하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을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들며 이들의 삶을 파괴한다. 19세기 후반 영국 수상 글래드스톤(W. E. Gladstone)의 경구처럼, 부패란 한마디로 “사회공동체와 그 구성원을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부패 문제에 있어 한국형 정치부패, 한국적 특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특권층의 부패 및 부패 관행의 사회화?대중화라는 일반적인 특징 외에 한국형 정치부패라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에 대해 더 살펴보자.

 첫째, 용두사미로 끝나고만 취임 초기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사정 개혁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제69조가 명한대로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식 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면 언제나 부정부패 척결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면서 강력한 사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것은 하나같이 용두사미로 귀결되며, 기대-실망의 악순환 속에서 대중들의 정치 불신은 심화되고 반(反)정치화의 경향은 가속화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서 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등장한 민주주의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의 근간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어왔다. 즉 국민의 정치참여와 자유로운 선거경쟁이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부패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불변의 법칙으로서 대통령 본인 또는 친인척 비리와 측근 비리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5여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한 역대 대통령들은 현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 10명이다. 한결같이 본인 또는 가족이 모두 불명예를 안았으며 인간적 불행과 비운을 맛보았다. 망명(이승만)에서 출발해 중도사임(윤보선), 살해(박정희), 하야(최규하), 구속(전두환?노태우), 아들 구속(김영삼?김대중), ‘정치적 타살’로서의 자살(노무현)로 이어지는 대통령의 개인사는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미 많은 측근들과 친인척들이 감옥을 체험한 상황에서 이명박 역시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본인과 정권 비리 의혹에 대한 청문회-특검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왜 이런 불행이 반복되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헌법상 행정ㆍ입법ㆍ사법 3권 분립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권력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사권만 해도 그렇다. 권력 3대 축인 검찰총장ㆍ국세청장ㆍ국가정보원장은 물론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까지 대통령 뜻에 따라 결정되며, 그 밖에도 직접적으로는 1,500개, 간접적으로는 2만여 개 자리가 대통령 임명권 범위에 있다. 경쟁적으로 대통령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확실하고 달콤한 보상이 보장되다 보니 정치인은 물론 독립적으로 지위가 보장된다는 관료와 법조인들까지 대통령에게 줄을 선다. 이 과정에서 맹목적인 충성심 경쟁이 발생하고 온갖 청탁과 비리는 자연스럽게 움틀 수밖에 없다.

 


출처 : ?불행한 전직대통령 고리를 끊자?, 매일경제 장광익 기자 외 2009.05.24.

한편 대통령 본인 외에도 역대 정권 하에서 거의 예외없이 모두 대통령과 가까운 친인척과 측근들이 핵심으로 연루된 비리들의 발생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는 그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지켜봐 왔다. 대통령의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친인척과 측근 비리는 불변의 법칙처럼 계속되었던 것이다.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날까지 어떤 형태의 친인척 문제와 권력형 비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이명박 정부의 경우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셋째, 정경유착의 검은 먹이사슬 구조다.

한국에서 정치부패의 중요한 원인은 정경유착에서 연유되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정경유착은 ‘기업가는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정치인은 반대급부로 기업가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베푸는 것과 같은, 정치인과 기업가 사이의 부도덕한 밀착 관계’를 의미한다. 이를 기초로 정경유착에 대해 정의해 보자면 정경유착은 정치가는 돈을 받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기업가는 정치인에게 돈을 주고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는 정치가와 기업가의 불법적인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정경유착은 정치권이 기업인과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치의 개념을 공적인 차원보다는 사적인 차원에서 작동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깨끗한 정치보다는 부패된 정치가 만연되는 것은 거의 필연이다. 이러한 정경유착이 정착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이며 그것이 공고화되고 심화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발이다.

1948년 정부 출범 뒤 2010년까지 62년 동안 모두 98회의 사면(감형 및 복권 포함)이 이뤄졌다. 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는 “사면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입법부가 만든 법에 따라 사법부가 내린 유죄 판결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 의해 일거에 무력화되는 사면제도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특히 특별사면은 그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란 베일 속에 숨은 채 발표 때마다 남용과 법적 안정성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권층에 의한 정치부패의 만연과 부패 관행의 사회화?대중화, 용두사미로 끝나고만 취임 초기 대통령의 사정 개혁, 불변의 법칙으로서 대통령 본인 또는 친인척 비리와 측근 비리, 정경유착의 검은 먹이사슬 구조,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발. 이명박 정부 집권 5년의 기간은 정치부패와 관련한 그 모든 것의 전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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