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후보 중앙유세단 참여기
유세 마지막 날 심상정 후보와 함께! 심상정의! ©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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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본인은 제19대 대선 후보 심상정의 중앙 유세단 활동을 하였다. 유세단 활동 일정은 4월 17일 부터 5월 8일까지 21일간 진행되었고 나는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3일을 제외한 총 19일간 유세에 참여하였다. 대선이 뜨거웠던 만큼 유세도 못지않게 뜨거웠다. 이 기사에 유세단에 들어가게 된 시작부터 유세 마지막 날까지, 서울에서부터 부산, 목포까지 전국을 다녔던 중앙 유세단의 거친 이야기를 간략하게 기록했다.
심쿵 유세단의 모집
3월 말부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눈에 띄는 공고가 올라왔다. ‘심상정과 전국을 유랑하는 심쿵유세단 모집’이었다. 당시 나는 대선 후보들 중에 심상정을 가장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대선 공약이나, 대통령의 자질과 같은 것들을 신문이나 방송에서만이 아니라 유세 현장에서 직접 보면 어떨까 싶었다. 심후보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유세단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의 개념이 아닌 선거사무원 자격으로 수당을 받았다. 나는 대부분의 일정을 할 수 있었다. 정의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중앙유세단 지원서를 다운 받아 항목을 작성했다. 항목의 참고사항 중에 ‘악기 연주자, 문화예술인 우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예술인에 전혀 해당되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예술인만큼 흥과 열정을 다해 춤을 추겠습니다’라고 당당히 적어 지원서를 이메일로 제출했다. 사흘 후 유세단 최종 합격을 문자로 받았다.
춤 연습과 유세 시작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주 망원역에 있는 댄스 스튜디오에서 정의당 당직자와 열여덟 명의 유세단원들을 만났다. 유세단원들은 스물한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의 젊은 심상정 지지자들이었다.
유세노래는 총 세곡이었다. 노란 우산을 가지고 춤을 추는 ‘붉은노을’, 치어리딩 느낌의 ‘질풍가도’ 그리고 세월호 추모곡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였다.(후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유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유세에서는 빠졌다) 나는 평소 춤과 거리가 있던 만큼 몸부림에 가까웠다. 선생님의 손과 발이 100% 뻗어나간다면 나는 30% 정도로만 나가다가 노래가 지나가고 거듭해 몸부림을 했다. 대다수의 유세단원들도 헤매고 있었지만 선생님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 시간이 넘게 춤을 췄다.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느끼는 근육통과 생각나는 몸부림이 몹시 생경해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이틀 뒤 네 시간을 춤 연습을 했다. 이번에는 70%는 따라할 수 있었다.
4월 17일 구로에서 대망의 유세를 시작했다. 구로에서 미싱사로 들어와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심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뿌리가 어디인지, 또 어떤 사람들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될 것인지 당당히 드러내었다. 당일에는 비가 왔다. 유세 첫 시작에서 유세단 모두가 춤을 출 수는 없었지만 피켓을 들고 지켜보았다. 앞으로 후보도, 우리 유세단도 격렬하고도 뜨거울 시간을 예감해주는 시작이었다.
물오르는 유세와 후보의 지지율
심 후보의 슬로건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였다. 한 글자씩 쓰인 피켓과 청년사회상속제, 슈퍼우먼 방지법 등 공약들이 적인 피켓을 들고 “안녕하세요. 노동이 당당한 나라 심상정입니다”를 외치며 유세를 했다. 우리는 보통 출근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으로 하루 세 번이나 네 번 유세를 하였다. 유세 방법은 보통 다음과 같았다. 유세단원들은 피켓을 들고 서있고 우리를 담당하는 위원장님과 발언자가 심 후보 지지발언을 하였다. 유세의 시작과 발언의 중간에 유세단원은 주변의 이목을 끌기 위해 춤을 추었다. 심 후보가 직접 오는 유세에는 우리는 시작 전 주변을 돌아다니며 심 후보가 와서 유세를 할 것을 알렸고 유세 시작 전에 또 춤을 추었다. (여러 번을 추니 놀랍게도 몸부림에서 춤으로 진화했다)
후보가 있는 유세와 없는 유세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있었다.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면 보러오는 사람들도 더 많았지만, 기자들도 수십 명 혹은 백 명이 넘게 왔다. 셔터를 누르는 수많은 기자들을 앞에서 보는 것은 생경한 광경이었다.
후보의 연설은 공약에 대해서 친절하고도 밀도 높은 설명이었고, 현 정국에 본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매끄럽게 어필하였다. 특히 스물 살이 되는 청년에게 국가에서 자립금을 상속해 주는 국가상속제에 관한 설명에 가장 크게 시민들의 반응이 있었다. 또 비정규직은 결국 인권의 문제라는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 캍퇴근법,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짐없이 나왔다.
유세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후보들의 방송 토론이 시작되었다. 심 후보는 적은 선거자금으로 인해 선거사무원과 유세차량이 부족했다. 그러기에 TV토론이 더욱 중요했다. 토론이 있는 날에는 아침 출근 유세나 점심시간 유세에만 함께했다. 심 후보가 없으면 아무래도 있을 때보다 분위기가 뜨겁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힘나게 했던 것이 있었다. 우리가 가는 지역마다 해당 지역위원회의 당원 분들이었다. 당원 분들은 언제나 유세단을 반겨주셨고, 유세 끝에는 그 지역의 간식들을 주셨다. 간식도 좋았지만, 전국의 어디에도 심후보의 가치를 함께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는 당원 분들께 감사와 반가움의 마음을 담아 춤을 추었다.
심 후보는 방송토론에서 제대로 후보의 역할을 해냈다. 특히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기 위해 일분 찬스를 쓰는 모습에서 유세단은 모두 감탄했다. 후보의 지지율은 8%까지 올랐고 우리의 기쁨과 기세도 올랐다.
유세의 마지막으로
막바지에 다다르자 환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체 생활이다 보니 한 명이 걸린 감기가 삽시간에 유세단원들에게 퍼졌다. 버스 안에는 코 푸는 소리와 기침소리가 울렸다. 또 무릎과 발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유세단원도 나오기 시작했다. 몸살은 나에게도 찾아왔지만, 음악이 나오면 자동으로 얼굴이 밝아지고 춤이 춰졌다. 열이 올라 더 뜨거운 유세였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유세의 마지막 날, 심 후보와 우리는 신촌에서 12시간 유세를 하였다. 청년들, 성소수자, 여성들과의 대화를 가지는 시간을 갖고, 진중권 교수와 손아람 작가가 왔다. 10시, 마지막 심후보의 연설에서 후보의 목소리는 쉬고 갈라져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고, 우리는 후보, 당원들, 시민들과 마지막 유세의 춤을 추었다.
대선이 끝이 나고
최종으로 심상정 후보는 6.2%를 얻었다. 나와 지지하는 내 주변인들의 기대에 아쉬운 결과였다. 10%는 넘어야 선거자금을 절반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금을 보냈고 나 또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심 후보와 정의당이 내건 가치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작이 심 후보와 진보정치의 진정성을 알고 싶어서였다면, 나는 그 진정성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구로에서의 시작, 그리고 유세를 다닌 울산, 창원, 경기도 각 지역의 공장 앞을 생각하고 심 후보의 연설과 당원들, 토론을 보고 유세장까지 찾아와 후보를 응원하는 성소수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했을 때 진정성이란 차고도 남는 것이었다.
지금도 종종 유세송을 흥얼거리고, 어깨와 발이 들썩인다. 그리고 그때 외쳤던 가치들도 마음에서 춤을 추고 있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731?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