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왜 ‘대나무숲’에 기대게 되었나
#2. 대나무숲이 갖는 양날의 검, ‘독인가, 약인가?’
앞서 살펴본 기사에 따르면, 대나무숲은 학내 이슈는 물론 청년층의 고민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익명성’이라는 방패의 뒤에는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칼날 역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오늘도 대나무숲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속삭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0년대 유행어로 자리잡기 시작한 ‘중2병’은 다양한 매체에서 개그의 용도로 쓰이며 희화화됐다.
<출처 : TVN SNL코리아>
2000년대를 기준으로 유행처럼 번진 전염병으로 ‘중2병’이 있다. 일본의 한 개그맨이 자의식 과잉으로 과도히 겉멋을 부리는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을 일종의 질병 증상에 빗대어 표현한 것에서 출발한 이 용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러나 곧 ‘나도 그렇게 비쳐졌던 것은 아닐까’라는 화살로 돌아갔다. 이후 예능 형식의 개그로 대변되는 ‘쾌락에 기대는 문화’의 등장과 함께 진지함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중2병’이나 ‘진지충’으로 몰리고 싶지 않아 자신의 내면을 진지한 문체로 밝히지 않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습득이 빠른 청년층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고민 덩어리를 언제까지나 혼자 짊어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혼자 고민해서 해결이 시원스럽게 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속에 쌓이고 쌓여 그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댈 곳이 필요한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기댈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 중 청년층이 택한 장소는 바로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였다. 서로 얼굴을 대면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어느덧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하나의 물결이 되어 있었다.
대나무숲은 특유의 개방성은 앞서 살펴보았듯 해당 학교의 재학생 뿐 아닌 타 대학 학생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내가 염두에 두지 않는 누군가가 나의 생각에 지나치게 참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기사화와 함께 각종 커뮤니티로 퍼지는 경우도 많아 자칫 개인의 의견이 학내 구성원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학교 학생에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넘어 내가 모르는 어떤 온라인 공간에 알려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경우에 따라 사뭇 불편함을 자아낸다.
대나무숲은 상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호 교류가 독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출처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자대생을 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타대생의 이야기가 게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대해 간혹 불쾌감을 표하는 재학생들도 존재하는데, 엄연히 자대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페이지인 만큼 초기의 목적과 어긋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역으로 자대생의 제보글임에도 불구하고 타대생의 제보글로 오인 받아 원치 않는 비난을 듣는 경우도 존재한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의 경우, 제보의 범위를 자대생으로 제한하기 위해 제보 시 서울대학교 재학생들만 풀 수 있는 퀴즈를 제시해 제보를 받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다른 대나무숲 역시 상황은 엇비슷하다. 본교와 연관이 없는 제보는 게시하지 않는다고 공지하거나, 관리자의 판단 하에 제보자가 타대생임이 밝혀질 경우, 해당 제보를 게재하지 않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가계정 (페이스북 내에서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가명을 사용해 활동하는 계정)의 난입은 익명성의 병폐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가계정을 사용할 경우, 자신이 누구인지 들킬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악플의 수위가 높으며, 제보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을 던지는 경우도 많다. 불청객의 ‘어그로’는 제보자는 물론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거칠며, 결국 댓글 내 분쟁으로 번짐으로써 대나무숲의 토론 분위기를 흐리는 데 일조하게 된다. 해당 제보가 논란성을 띠는 제보라면 그 수위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 실제 지난 6월,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은 한 강좌에서 특정 커뮤니티를 옹호하는 뉘앙스의 강연을 한 강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던지는 제보를 올렸다가 댓글 내 분쟁이 거세져 해당 제보를 삭제한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 특정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성향을 내비친 강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제보글들. 이후 해당 제보의 밑에는 분쟁이 벌어졌으며,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측은 해당 제보를 삭제 처리했다. <출처 : 한양대학교 대나무숲>
익명으로 제보가 이루어지는 대나무숲의 특성상 해당 제보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도 익명성이 가지는 한계로 꼽힌다. 대나무숲 관리자가 모든 학우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니, 사실상 제보의 진위여부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상태나 다름없다. 때문에 대나무숲은 루머 생성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나아가 학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서로에게 화살을 겨눔으로써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초기의 목적은 사라진 채 공격성만 남은 대나무숲에 지쳐 떠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이렇듯 익명성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공해는 단순히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나무숲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자정 작용을 거치고 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내용을 선별하고,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한 제보를 모두 미제보 처리하는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분쟁 앞에서 대나무숲 관리자의 힘은 무력하다. 섣불리 같은 입장이라 해서 한 쪽 편을 들기엔 중립성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목포대학교 대신 전해줄게’를 운영하고 있는 관리자 중 1명은 ‘여러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문제, 학내 문제 등 다소 민감한 주제와 관련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며 ‘분란을 막고자 관리자가 개입하면 중립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어 해당 게시글 자체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대나무숲에 게시되어지는 담론들은 건전한 토론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반가운 것이면서도 언제 분쟁으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많은 청년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먹고 울창하게 자란 대나무숲은 그 크기만큼 수많은 고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나무숲이 단순히 고민 상담소나 청년층만의 안식처가 아닌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익명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616?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