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무엇이 문제인가
# 2016년 3월 15일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한 여성이 암매장 된 채 발견되었다. 한 달 전 실종된 22살의 A씨,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은 바로 A씨의 남자친구였다.
# 피해자 B씨와 술을 마시던 남자친구 K씨는 B씨의 휴대폰에 남자 동기가 카카오톡 메신저를 보낸 것을 본 직후 얼굴을 5-6회 때려 상해를 가했다. 며칠 후에는 B씨에게 집으로 올 것을 요구하여 도착한 B씨의 얼굴과 배 등을 가격했으며 8시간 동안 차에 감금을 했다.
# 여자친구 C양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L군은 헤어진 후 한달 동안 C양을 쫓아다니며 협박, 폭행 등을 저질렀다.
# 폭행 3670건, 상해 2306건, 강간·강제추행 510건, 살인 102건 등······.
이는 요즘 발생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의 사례들과 2015년 한 해 동안 연인 간에 발생한 범죄(=데이트 폭력)의 경찰청 통계 자료이다.
데이트 폭력이란 미혼의 연인 사이에서 한쪽이 가하는 폭력이나 위협을 지칭한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행위를 암시하면서 정신적인 압박을 가하여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나 언어폭력 등 비물리적인 행위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신고 접수된 사건만 7692건이며,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2014년 20-30대 미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데이트 폭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의 73.2%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더 이상 특정 누군가가 겪는 일이 아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연인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폭력적인 행위들이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둘째, 인식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당한 일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모른다거나, 셋째, 신고 후에도 적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가해자로 하여금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왜 데이트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가장 큰 문제는 신체적인 폭력이 동반되어야만 데이트 폭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20대 성인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데이트 폭력의 최하위 기준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67명이 물리적 폭행이라고 답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데이트폭력 피해자 28살 신씨 역시 “남자친구가 때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욕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사귀었어요”라고 밝혔다. 실제로 남자친구에게 6개월 간 지속적으로 욕을 들으면서도 연인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신씨는 “처음에는 욕을 하는 것을 단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심각성을 깨닫고 나서는 내 아픔을 치유해준다고, 결혼까지 약속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였었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욕을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싶었다. 그 친구가 욕을 하고 내가 화를 내면 그 친구는 다시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는 넘어가는 것의 반복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이제는 안 그러겠지, 다음엔 안 그럴거야’라고 자신을 위로한 것이 벌써 6개월이 흘렀고, 그 끝은 결국 이별이었다.”라고 말했다. 신씨의 경우, 일단 데이트 폭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고 연인관계라는 이유로 지난 간의 정을 생각해서 데이트 폭력임을 인지하더라도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여성긴급전화 1366기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 후 가정폭력 피해자의 60%는 이미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데이트 폭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 후의 대응 방법
폭력적인 행위의 강도가 심하거나 부정적 행위의 지속적 반복으로 인해 자신이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여성들은 많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나 20대 피해여성 10명 중 7명 정도는 친구들과 고민을 상담하는 정도로 이러한 고통을 끝내려고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500일 넘게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것을 말했다가 욕설을 듣고 뺨을 맞은 22살 김씨는 “내가 그 동안 많이 의지하고 좋아했던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하고 때렸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며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었다. 그냥 혼자 울거나 친한 친구들과 함께 남자친구를 뒷담화한 것이 끝이다.”라고 말했다. 또 가임기에 남자친구의 강요로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한 후 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을 먹은 24살 한씨는 “왜 남자친구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내 몸이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자친구에게 벌을 주고 싶은데 성관계 자체는 동의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남자친구가 강요해서 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이제는 단지 내 속상함을 털어놓을 데가 필요한데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여성들을 위해 서울시는 기존에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의 긴급전화상담을 해주던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고민도 상담이 된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1366으로 전화를 하면 15명의 상담원이 데이트 폭력 진단 방법부터 대응방법까지 상담을 실시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법률, 의료지원과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365일 24시간 상시 가능하며 상담전화를 통해 데이트 폭력 피해여성에게 다른 전문 상담, 의료,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기관과 연계해주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의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현재 한국에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총 645건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의 폭력은 당사자 간 문제로 간주되어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사법처리 위주로 처리하는 등 피해자 보호 등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밀접했던 사람에게,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던 사람에게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었는데 그 처벌이 아예 상관 없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한 것과 같은 수준이거나, 더 약한 수준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1366 서울지역 상담원 이씨는 “예전에는 이러한 문제 자체를 개인적인 문제나 가정사로 치부해 버려서 거의 합의로 끝내려고 했었기 때문에 해결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 법안을 발의할 것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며 “이러한 것들을 공론화, 이슈화 시키는 것이 과제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가 인식의 부족, 신고하거나 상담 받을 기관에 대한 인지 부족, 적당한 처벌의 부재라면 데이트 폭력이 더 큰 문제로 커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면 된다.
최근 서울시는 ‘안심서울 여성안심 캠퍼스’, ‘데이트 폭력 방지를 위한 토크쇼’ 등 데이트 폭력 예방을 위한 전문교육을 추진한다. 뿐만 아니라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는 동영상이나 브로슈어, 포스터 등 홍보물을 제작해 서울시내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또한 아직까지 데이트 폭력만을 위한 제대로 된 처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만 하면 해당 사안이 경미해도 구두경고, 또는 서면경고를 하고 형사입건 필요성이 있을 경우 바로 수사에 착수한다”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남자친구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사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1366 상담원 이씨가 밝혔듯, 이 문제에 대해 언론에서 많은 기사를 내어 이 문제가 공론화 되고, 이슈화 된다면 지금 현재 데이트 폭력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는 여성 단체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있다. 현재의 처벌 방법을 넘어선 법안이 생겨나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까지 고려한 색다른 처벌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614?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