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포미닛의 현아, 에프엑스의 엠버,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리고 김숙. 이 여성 스타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른 매력을 지닌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말이 있다. 바로 '걸크러시(girl crush)'이다.
(2012년 미국 애너하임에서 찍힌 크리스틴 스튜어트.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여주인공에서 '걸크러시'의 대명사로 변신했다. / 사진: Gage Skidmore,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759930)
다양한 여성상의 발산
'걸크러시'란 '소녀(girl)'와 '반하다(crush on)'라는 단어가 결합하여 여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호감이나 동경을 이르는 말이다. 유행어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 신조어는 최근 '언니 열풍'과 함께 더욱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여성이 여성에게 끌려 팬덤을 형성하는 일은 많았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활동한 여성, 혼성 그룹 가수들은 한 명 이상의 여성 멤버에게 '중성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전략을 흔히 구사해 왔는데, 걸그룹 에프엑스의 엠버나 과거 유피(UP)의 이정희, 룰라의 채리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작년에는 걸그룹 마마무가 <걸크러시>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마마무 멤버들은 내숭 없는 모습으로 영화나 광고를 패러디하는 익살을 보여준다. 판에 박힌 섹스어필 전략과는 차별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들은 '걸크러시'를 간판으로 내세우며 노랫말을 통해 "(내 고민은) 다른 여자들의 고민과는 좀 달라.", "그저 멋진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I just want to be (an) awesome girl.)", "머니(돈)는 나도 충분히 벌어"라고 이야기했다.
'걸크러시' 현상에서 여성을 매혹하는 여성의 구체적인 유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마무와는 다른 유형으로, 섹스어필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섹시가수' 현아 또한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걸크러시'의 대상에 관한 의견은 그만큼 분분한데, 영어강사 ㅇ(32) 씨는 여성으로서 전지현이나 오드리 헵번 등 본보기로 삼을 만한 외모를 지닌 매력적인 여성에게 '걸크러시'를 느낀다고 이야기한 반면 20대 직장인 여성 ㅂ(28) 씨는 서인영이나 김숙, 정치인 심상정 등을 언급하며 "여자를 대변하며 시원시원하게 발언하는 당당한 여성"을 '걸크 여신'으로 꼽았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하는 것에는 무관심할 만큼 자기애가 확고한 여성상"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에프엑스에서는 엠버와 달리 차가운 매력의 크리스탈 또한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다.
6월 18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서 낸 자료에 따르면, SNS상 '걸크러시' 언급량은 올 상반기만 해도 작년의 3배를 넘어섰다. 그만큼 '걸크러시'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성상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런 관심 뒤에는,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외모로 남성을 자극하도록 묘사되거나 사랑받기 위해 자기를 낮추고 억압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기존의 여성상이 있다. 소위 '여성스럽다'고 호명된 이런 특징을 벗어난 인물들이 주로 '걸크러시'로 지목되기도 한다.
오빠가 허락한 '걸크러시'
'걸크 여신'들의 속 시원한 입담과 닮고 싶은 아름다움, 당당함. 여성들은 통쾌함과 해방감을 느끼고, 대리 만족을 얻는다. 남성 직장인 ㅇ(29) 씨는 "여성 혐오 사건들이 두드러지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나 위축감을 '걸크러시' 문화가 상당 부분 해소해주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한 남성 패널은, '걸크러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으며, 여성들 사이에서 오가는 논의이기 때문에 남성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여성들만이 전유하는 문화현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온라인 상에는 짧은 유행이 지나면 (여성들은) 다시 연약하고 가녀린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당당한 여성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 뒤 스스로는 소극적인 여성에 머물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남성도 눈에 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걸크러시'는 '어차피 여성스러운 여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는 남성 중심적 사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걸크러시' 현상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폄하에는 '늘 모든 분야에서 주류의 위치를 점해왔던 이성애자 남성이 취향과 소비, 문화의 장에서 배제된 현상'에서 느끼는 당혹감, 불안 등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남성도 유능한 운동선수나 슈퍼히어로, 남성지 표지를 장식하는 멋진 남성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을 닮고자 한다. 이를 규정하는 단어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걸크러시'라는 용어는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여성상의 출현을 '소녀'들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취향으로 축소하면서 남성중심적 시각이 마주한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
문화 속에서 다양한 여성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거의 모든) 상황과 분야에서 항상 성적 객체로 자리 잡아온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과 상통한다. 문화를 향유, 소비하는 주체를 여성으로 설정하는 것은 여성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걸크러시' 현상을 일시적인 유행 정도로 일축할 수 없는 이유이다.
'걸크러시'의 두 얼굴
남성중심주의적 사고가 반영되었다는 한계점 외에, '걸크러시'라는 용어가 드러내는 또다른 경계가 있다. 바로 동성애를 배제하는 울타리다. 옥스퍼드 사전은 '걸크러시'를 정의하면서 '성적 감정이 동반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최근에 대두된 온라인 상의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발언들을 비판하며,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했다. 그런데 여성이 '걸크러시'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애착을 드러내는 것은 '난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저 여자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레즈비언 칼럼니스트 마리사 히긴스는 일찍이 2014년에 '걸크러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누군가 당신을 성소수자(LGBTQ)로 오해하는 게 그렇게 큰일인지" 반문하면서 동성애자를 고립시키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칼럼니스트 황효진은 '걸크러시'라는 단어 자체가 호모포비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유튜브 '걸크러시 메이크업' 캡처 화면 (https://www.youtube.com/watch?v=0o3M2fm1IyA))
여성의 해방구처럼 보이는 '걸크러시'라는 용어는 그 마케팅효과에 힘입어 가볍고 유쾌하게 회자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성소수자와의 선 긋기를 시도하며 타인에게 또 다른 울타리를 두르고, 여성이 문화 소비의 주체로 나서는 경향을 일시적 현상으로 축소하기도 한다. 가벼운 어감과는 달리, '걸크러시' 현상이 소환해 내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걸크러시 화장법'을 검색해보면 강렬한 색채의 입술과 스모키 눈화장이 많이 눈에 띈다. 과거 남성을 향해 상냥한 웃음을 날리던 여성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 자기표현을 더 중시하는 멋진 '언니'들의 덤덤한 표정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걸크러시' 안에서 코르셋을 벗은 여성들은 그 울타리마저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유행어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여성의 취향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편입시키는 지금의 흐름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602?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