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정치센터 청년기자단] (칼럼)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폐지안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 폐지안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미래정치센터 청년기자단 1기 한원석(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안 그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각날 수 밖에 없는 5월 16일이었다. 2016년 5월 16일, 이공계 대학생들의 메신저 단체 채팅방들이 하나 같이 과열됐다.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이하 전문연) 제도 폐지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문연 제도는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공계 남학생들이 박사 과정을 밟거나 기업부설연구소, 정부지원연구소에서 3년 동안 근무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다. 국방부는 ‘인구 절벽’을 이유로 들며 전문연 외에도 산업기능요원, 의무경찰, 의무소방대, 공중보건의, 예술체육요원 등의 전환·대체복무를 모두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연 제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KAIST 대학원 과정의 전신인 KAIS(한국과학원)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대체복무가 최초의 이공계 대체복무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정책 - 이론과 쟁점 (박범순, 김소영 엮음)’에 따르면, KAIS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 3년간의 군 복무를 20일의 훈련과 3년간의 정부 연구소 및 연구기관 근무로 대체할 수 있었고,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승인했다. 본인이 군인이고 군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박 전 대통령이었지만,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국방과학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계에 전폭적 지원을 했던 사람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그리도 칭송하는 현 정부의 국방부가 박 전 대통령의 모습과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안을 내놓은 셈이다.

 

다양한 위치의 많은 사람들이 전문연 폐지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공계 학생들은 즉각 집단 행동에 나섰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UNIST(울산과학기술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의 학생회들은 ‘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이하 특대위)’를 구성했다. 특대위는 여성과학자 출신이자 과학기술정책 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과 함께 5월 19일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전문연 폐지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이번 사태의 이틀째인 5월 17일에만 해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국방부가 문상균 대변인을 통해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니라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특대위는 6월 3일 국방부 청사 앞에서 추가 기자회견을 갖고 전문연 폐지안 반대 서명운동 결과(총 14,696명)를 국방부에 전달했다.

 

대학 총장들도 전문연 폐지안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학교의 총장들은 5월 30일에 공동 의견서를 발표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및 정부출연연구기관들 내부에서도 전문연 제도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내에서 전문연 제도를 통해 학연생이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등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학생이 그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남아서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수 연구 인력 잔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국방부를 제외한 다른 정부 부처들도 전환·대체복무 폐지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전문연 제도를 국방부와 함께 운영해온 미래창조과학부는 전문연 폐지안에 반대하며 전문연을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국방부에 전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마찬가지의 입장이며, 교육부도 전문연 폐지안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지역 전략산업에 대체복무 요원을 우선 배정하는 유인책을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방부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전문연 외에도 의무경찰, 의무소방대,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 등의 폐지안에 대해 각 당국들과 중소기업청, 보건복지부도 반대를 하고 나섰다.

 

과학기술계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입법부와 원내 4당도 특대위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청년·학생위원회는 이미 이공계 학생들과 만나 의견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했다. 또한 정의당 대전광역시당 이성우 공동위원장이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정의당 울산광역시당도 필요할 경우에는 학생들과 기자회견 등을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문미옥, 이상민, 박경미 의원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송희경, 이군현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의당에서는 신용현 의원을 중심으로 전문연 폐지안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문미옥 의원의 경우엔 전환·대체복무 조정권자를 병무청장이 아닌 국무총리로 바꾸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렇게 사회 전반적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전문연 폐지안이 여러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폐지안에 충분한 유예기간이 없다는 점이다. 국방부가 단계적으로 대체복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폐지안의 세부 내용에서는 2018년까지만 박사과정 전문연을 선발하고 2019년부터는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현재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이나 대학원 진학을 계획 중인 학부생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인생 계획이 틀어지는 셈이다. 어떤 제도에 대해서든 다양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당사자 및 관계 부처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갑자기 대체복무 폐지안을 들고 나온 것은 명백한 국방부의 잘못이다. 제도를 수정한다면 피해자가 없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

 

둘째로, 정말로 병력 수에 그렇게까지 집착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국방부가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월 19일에 기자회견을 가진 문미옥 의원에 따르면, 국방선진국들은 병력 정예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병력 수를 축소하고 있고, 병력위주의 군 체계를 국방 R&D 투자위주로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병력자원 감소를 예측하고 국방 R&D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군 체계 혁신을 지원해 국방 R&D 예산도 2006년 1조원대에서 2015년 2.6조원으로 증가했다. 다시 말해서, 전문연을 폐지한다고 해서 국방력이 증강된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국방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연을 폐지한다고 해도 늘어나는 병력 수는 눈에 띄지 않는 정도이고, 또한 전문연 제도와 함께 진행되던 국방과학기술 연구도 더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를 통해 대학원생들을 연구 인력으로 두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전문연 제도를 운영해왔다. 전문연 제도를 폐지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도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셋째로, 국가 과학기술 역량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전문연 제도는 한편으로는 군 복무 형태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정책의 일부이다. 과학기술 현장에서 실험 노동과 연구 노동을 직접 진행하는 것은 교수나 연구책임자보다는 대학원생들의 몫이다. 교수나 연구책임자는 강의, 행정절차, 연구비 수주 등 다양한 종류의 일 때문에 직접 실험 기구를 다루는 일에 시간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는 5년 이하의 단기간에 나오기 어렵다. 5년 이상의 장기간 동안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연구를 이어가야 하며, 이공계에 석·박사 통합과정이 일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서 존재하는 것이 전문연 제도인 것이다. 단순히 대학원생들을 배려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 과학기술 연구가 지속되도록 거시적 관점에서 존재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거시적 관점에서 존재하는 과학기술정책을 국방부가 단독으로 폐지한다면 국가 과학기술 연구가 일시정지 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넷째로, 4개의 국립 과학기술원들(DGIST, GIST, KAIST, UNIST)의 명운이 전문연 제도 존치 여부에 달렸다.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선발은 대학원 전과정 성적, TEPS 성적,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결정되는데, 과학기술원들의 박사과정으로 입학하면 이 선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문연에 편입할 수 있다. 과학기술원들의 석·박사 통합과정 또는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기가 유독 어렵기로 소문이 나있는 것은, 이렇게 전문연 선발 절차가 생략되는 만큼 대학원생 선발 과정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원들의 박사과정생이라는 것은 전문연 선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 있는 것이다. ‘인서울 대학’ 선호 현상이 한국에서 여전히 심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 위치한 과학기술원들이 국가와 각 지역에 기여하고 있었던 것은 우수한 연구 인력을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원 교수들의 기존 연구 성과가 뛰어나다고 해도, 전문연 제도가 폐지된다면 대학원생들을 유치하기가 어려워지고 과학기술원들의 미래가 어두워진다. 국가와 지역에 큰 공헌을 해왔던 국립 과학기술원들이 토사구팽 당하는 셈이다.

 

다섯째로, 국방부가 뒤늦게 대책으로 제안한 ‘한국형 탈피오트’도 정책의 일관성과 현실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전문연 제도와는 별개로 국방부는 이공계 학부생들을 국방과학연구소로 데려가서 근무하게 하는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를 불과 몇 년 전에 만들었다. ‘한국형 탈피오트’는 이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를 도입하며 국방부가 사용했던 레토릭이기도 했다. 새로운 복무 형태를 만든지 5년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대체 복무를 폐지하겠다고 하더니, 반발이 심하자 그 당시에 썼던 레토릭을 다시 들고 나와 둘러대는 것이다. 국방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전혀 없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설령 ‘과학기술전문사관’과 비슷한 형태의 대안을 찾는다고 해도 국방부의 계획대로 대체복무 폐지 직전까지 단기간 안에 그 대안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의 규모로는 전문연 제도의 인원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관과 새로운 연구시설장비를 갖춰야 할 것인데, 2019년까지 약 3년만에 그 정도 규모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다. 그리고 굉장히 큰 예산이 필요하기도 한 문제이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대학들의 연구 인프라만으로도 국방과학기술을 연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이를 놔두고 추가로 돈을 들여 새로 연구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낭비다.

 

여섯째로, 관련 부처와의 소통 부재를 국방부가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사태 이틀째인 5월 17일에 국방부는 이미 관련 부처와 이야기를 다 끝내놓은 것처럼 입장 발표를 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관련 부처들이 전환·대체복무 폐지안에 반대 입장을 내놓았고, 심지어 공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국방부에 전문연 폐지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부처도 있다.

국방부가 국방력의 측면에서 복무 형태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전문연을 포함한 전환·대체복무 폐지안에 대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보장한 후에 관련 부처 및 당사자와 관계자들에게 논의를 제안해야 한다. 국방부 혼자 갑자기 강행할 일이 아닌 것이다. 충분한 논의 이후엔 법률로써 제도를 보장하여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대체복무인 공중방역수의사의 경우 ‘공중방역수의사에 관한 법률’이 별개로 존재하며, 해당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모두 따로 존재한다.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작년에 임금피크제에 대해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반발했다. 임금피크제는 정부 방침이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민병주 전 의원조차도 눈물을 보이며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수십년 동안 국가 발전을 견인한 과학기술인들의 정년이 이미 짧아져있는 상태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시도로 인해 중견 과학기술인들의 사기가 저하되었다. 이제는 중견 과학기술인들 뿐만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마저 전문연 폐지안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다. 전문연 폐지안 역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원내 정당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임금피크제와 전문연 제도 폐지안 모두 이념이 아니라 과학기술정책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자 하는데, 우리나라 국방부는 과학기술계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핵을 개발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방에 있어서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과학기술에 대한 정계의 본격적인 관심은 전쟁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무기의 위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전문연 폐지안을 통해서 과학기술계를 낙담하게 만들려는 우리나라 국방부는 진정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과학기술계에 대한 국방부의 현재 태도로는 한국을 그 누구로부터도 지켜낼 수 없는 것이며, 성급한 전문연 폐지안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나 다름 없다.

 

*본 칼럼은 정의당과 미래정치센터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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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569?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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