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등록금은 어떻게 결정되었나②
◇ 울면서 넘은 등록금 고개
등록금 납부기간이 돌아왔다. 하지만 K대학교 중어중문학과 4학년 A씨(남·26)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 국가 장학금과 교내 장학금의 수혜 대상인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등록금 고지서를 보면 장학금이 반영되어 실제 내야할 수업료는 0원이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학기인데 등록은 무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는 2010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의 합격통보를 받고 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등록금 납부였다. 360여만원의 등록금에 더해 100만원이 넘는 입학금까지 추가로 내야 했다. 당장 그럴 돈은 없었다. 다행히 한 장학재단에서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등록기간이 지난 후에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우선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겨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스무 살의 세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집을 떠나 자취를 해야 했기에 월세와 식비만으로도 많은 돈을 써야 했다. 한 달이 지나자 선배와 동기들과의 만남은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대신 아르바이트 자리를 필사적으로 찾았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 일을 했다. 그런데 다음 학기에 돌아온 것은 성적 기준 미달로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끔찍하게 아끼며 모았을 돈을 그에게 건네주시며 이것이 줄 수 있는 마지막 돈이라서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다. 어쨌든 등록은 할 수 있었다.
2011년 1학기, 이제 그는 등록금 납부를 미루고 있었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은 300만원이었다. 60여만원이 부족했다. 납부기간이 끝날 때까지 돈을 구할 방법을 찾았지만 낯선 서울 땅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챙겨줄 사람은 없었다. 분할 납부 제도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원하지 않는 휴학을 했고 부모님에게는 학교 잘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친구들에도 티를 내기 싫어서 다른 꿈이 있어 휴학하는 척을 했다. 세상이 미워졌다. 남몰래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세상이 변할지는 모르지만 문이라도 두드려보고 싶었다.
그 후 군대를 다녀와 보니 세상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국가장학금이란 것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또 성적 문제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어서 먼 친척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래도 이제 다음부터는 부담 없이 등록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4학기 동안 국가장학금을 계속해서 지원받았고 성적도 차츰차츰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막막했던 미래 계획도 조금씩 그려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아직도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몸이 힘든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금의 그는 학교를 마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하다. 현재의 사립학교 등록금은 학생 개인이 감당해 낼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소위 흙수저 청년은 그 앞에서 좌절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생활비를 버는 성실한 학생이다. 하지만 높은 등록금에 잠시 꿈을 빼앗길 뻔했다. 그는 국가장학금 제도가 좋긴 하지만 소득분위 산정 과정에서 불합리하게 소외되어, 혹여나 자신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학생이 없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 자식에게까지 빚을 남게 하고 싶지 않다
등록금을 내는 시기가 다가오면, 한 사립 대학생 B씨(여·22)는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아 은행에 납부한다. 부모님이 등록금을 마련해주시지만, 그렇다고 A씨의 가정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반년동안 부모님께서 한푼 두푼 모아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 한 번에 목돈이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분할납부를 한다. 2월에 1차로 35%를 내고, 3월에 25%, 4월에 25%, 5월에 15%, 이렇게 총 4번에 걸쳐 등록금을 나눠서 납부한다.
B씨는 “부모님께서 자식에게까지 빚을 남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매번 마련해주신다.”며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표현했다. 대신 B씨는 부모님께 등록금을 제외하고는 일체 용돈을 받지 않는다. 죄송한 마음에 용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버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을 모아 등록금에 보태고 싶지만 밥값에 교통비에 식비까지 하면 남는 것이 없다.
게다가 학기 중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가장학금 외 성적장학금은 꿈도 꿔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장학재단에 생활비 대출이 있지만, 대출받지 말라고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대 주시는데 그럴 수는 없지는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B씨는 부모님의 부담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는 분할납부 자체도 매우 좋은 제도이지만, 신용카드 납부도 가능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용카드를 통해 할부로 낸다면 현재 막상 목돈이 없더라도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500만원이라면 분할납부를 한다 하더라도 175만원이라는 목돈을 내야하므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부터 대학 등록금 납부도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상정되는 듯 했으나, 지금까지 단 1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카드로 받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카드사에 내야하는 수수료 부담 때문이다. 이에 B씨는 대학이 손해를 봐가면서 카드사와 계약을 체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할 대학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대학과 은행이 노력만 한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대학과 국회가 대학생의 등록금 납부방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새기 때문에 진전이 없을 뿐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555?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