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2기] "실망(失亡)사회-희망과 낭만이 사라진 사회" 이현빈 기자

실망(失亡)사회 – 희망과 낭만이 사라진 사회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최백호 씨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의 일부이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며 낭만을 회상하는 이 노래는 발표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공유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날 낭만은 가요를 구성하는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문화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문화의 하위 분야인 대중가요는 특히나 사회 변화를 빠르게 포용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낭만을 품은 가요가 사람들의 삶에 때로는 사랑의 모습으로, 때로는 우정의 형태로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헌데 요즘은 어디서도 낭만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 발표되는 노래들은 여전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옛날식 다방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색소폰 연주를 감상하는’ 류의 가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대중가요에서 나타난 낭만의 실종은 변화한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낭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낭만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대는 바로 대학생들이다. 갓 성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여유와 낭만을 기대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소위 ‘명문대생’들도 취업에 수차례 실패한 후 9급 공무원 시험을 응시하는 현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청년들의 비보에 낭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민망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실제 대학생들의 현실 인식은 어떠한 수준에 도달하여 있는 것일까? 본 기사에서는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확인하고자 학교와 전공을 초월한 청년 20명에 대해 전공 선택 이유, 대학의 역할, 그리고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등에 대해 서면 및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특히 이 중 대표적인 사례 네 가지를 선별하여 재구성하였으며, 인터뷰 결과를 종합하여 청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의미한 지향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 이토록 여유 없는 삶이 진정 꿈꿔 온 대학 생활인가 싶어…. - 모 여대 경영학과 재학생 A양의 사례


경영학도인 나, 6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마친 후 오랜만에 돌아 온 학교는 예전 같지 않았다. 고작 한 학기 쉬었을 뿐인데 시험공부는 요원하기만 했고, 긴 시간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볼펜은 제 갈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 필사의 적응 훈련 끝에 차차 익숙해졌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번 시험기간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은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한 학기가 끝났다는 건 달리 이야기하면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니까.
 
저학년 때에는 정말 배우는 게 즐거워서 학교 수업에 열성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이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 학문이 아닌 높은 취업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나 역시 이와 같은 분위기에 맞춰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취업을 마주한 지금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를 버려야 함을 절감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은 때론 무모하면서도 결국엔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도전정신하나로 버텨온 나였지만 현실의 벽 앞에 과거는 모두 내려놓았다.

 

낭만이 무엇일까. 대학에 와서 연애는 했다. 꽤 진지하면서도 깊은 연애였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낭만이라 할 만 한 건 그게 다였다. 캠퍼스 라이프는 멀게만 느껴졌고 내 앞에 놓여있는 건 공부와 취업뿐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시절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를 발견했다. 대학에 진학하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죄다 대학에 와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항들뿐이다. 4년 전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꿈꿔왔던 나인데, 내 인생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체념이 일상화 된 현실 속에서 내 인생이 올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느껴지는 요즘이다.

 

▷ 겨울과 여름, 그 사이의 봄은 어디에? – 생명공학 전공생 B양


늦은 밤 독서실에서 나와 마주하는 밤공기는 차고 상쾌하다. 어느 덧 시험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 나는 약학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남들보다 입시를 1년 더 치렀지만 내게 큰 욕심이랄 것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큰 기대 없이 응시한 수능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는 거다. 스스로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던 시간이 어느 정도 희석된 느낌이었다. 그런 편안함도 잠시, 재수생 신분으로 대학에 입학하려 하니 1년을 손해 보는 것만 같아 가급적 빨리 진로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니 여자로서 별다른 경력 단절 없이 직업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나쁘지 않은 수입이 보장되는 약학대학 진학이 합리적인 선택지로 여겨졌다.

 

어쨌든, 공부는 힘들지만 마음은 가뿐하다. 처음엔 약대 진학이 무조건 약사로서의 미래를 의미하는 줄 알았지만, 진입해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연구원이 될 수도 있고, 기업에 취직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지만, 과도한 걱정이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전반적인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통일이라는 불확실한 과제와 사회 갈등의 확산이 우리의 앞을 막아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대학(大學)이란 무릇 큰 학문을 의미한다. ‘큰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대학에서 취업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학과를 통폐합하고, 학생들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이 쯤 되면 학교 측은 학생을 부속품 정도로 치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학 생활에서 여유와 낭만이 사라진 것도 아쉬운데,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다니는 학교에게 이런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더 심난해진다.

 

꿈 꿀 수 있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희망이 내일의 절망으로 바뀌는 가능성도 상존한다. 희망 아니면 절망, 양 극단을 달리는 세상은 실로 피 말리는 세계이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 아닌 온화한 봄에 새 생명이 싹트는 데에는 달리 거창한 이유가 있진 않을 것 같다.

 

▷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 교육학 전공생 C군의 이야기


군바리인 나, 끝날 것 같지 않던 군 생활이 어느 덧 절반 이상 지났다. 오지에서 고생하는 많은 친구들과는 달리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나름대로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교육학과 재학생이다. 교육학과라 하면 선생님이 되고 싶냐고들 하는데, 나는 애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인문학에 흥미를 느꼈고 그 중에서도 교육 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기에 선택한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지만 꽤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여러 단체를 오가며 세상 물정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러한 생활이 내게 주는 교훈은 분명했다. 사회는 개인을 단 하나의 ‘점’ 정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처음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허무함에 의욕을 잃었다. 하지만 거듭 고민을 해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했기에 우리 사회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등을 위해선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군가가 될 각오를 하고 있다.

 

여태껏 내가 성장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가까이는 부모님과 친구들, 멀리는 존재를 알 수 없지만 작게라도 연관성을 지닌 이들까지.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건 오롯이 나 혼자임이 아니기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자원이 너무나도 많다. 때문에 총대를 멜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더 나은 모습을 할 거라 믿는다.

 

암울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20대가 변해야 한다. 비록 기존의 제도가 구성원을 수동적 군상으로 만들었지만, 개방 사회의 문명에 수혜를 입은 청년 세대는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 옳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 여유롭고 따뜻한 모습이었으면 한다. 이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며, 합당한 노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 - 수도권 교육대학 재학생 D양의 사례


지금과 같은 취업난에 교육대학을 선택한 건 백 번 천 번 잘한 일이다. 서울 시내의 유명 대학과 현재의 학교를 두고 고민했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권유로 내린 선택의 결과물이었다. ‘취업이 대수냐’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부끄럽게 느낄 만큼 현재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소위 말하는 ‘취업 깡패’인 교대생 조차, 못해도 삼수 이상은 안 한다는 초등 임용 시험의 합불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부모님의 영향인지, 나는 ‘기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다. 대학 역시 그랬다. 대학은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공간이 될 수 없다. 전적으로 현실 친화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고, 그렇기에 대학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내가 이토록 현실적이고 약간은 비관적인 시각을 가져도 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늘 도달하는 결론은,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사명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 즐기면서 편히 사는 게 최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책 없는 자율성보다는 때때로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낭만이란 별 게 아니다. 비오는 날 창가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도 엄청난 낭만이다. 세상이 힘들면, 세상과 멀어지면 되는 거다. 굳이 사회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며 고통 받는 것보다 조금은 포기하더라도 한 발자국 밖으로 나와 여유를 즐기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훌륭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경영학을 전공 중인 A양은 지극히 현실적인 20대를 대변한다. 취업은 인생 최대의 목표이며 모든 삶의 자취는 취업을 향해 있다. 그녀는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으며 낭만이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지만 현재의 삶에 낭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답변을 주었다. 이에 반해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B양은 아직은 낭만이 있다고 믿는다. 현재 약학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학교를 떠나 있지만,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녀에게 학교 공부는 즐거운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최근 학교에서 발생한 일방적 학과 통폐합을 경험하면서 B양은 학문의 전당이 취업 사관학교로 변해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대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도 전했다.

 

한편, 교육학을 전공하는 C군은 다소 상기된 어조로 의견을 전해왔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산적한 사회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특히 개인의 역할이 미미해지면서 청년들이 자신감을 잃고, 낭만을 즐길 새 없이 시간 속에 매몰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타개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반면 D양은 ‘안정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긴다. 진로가 일찌감치 정해진 여타의 교대생과 다르지 않게 그녀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만 교대생이 아니라고 해서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는 않으며, 우리의 또래들은 수동적인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답변을 주었다. 미래를 그리기보단 현재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 아직은 의지가 남아 있는 시점, 극복 위한 노력이 필요함에 공감대 형성해야….


‘헬조선’ 논란, 수저론 등은 청년 세대의 비관적 현실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제는 헬조선에서 나아가 ‘탈조선’을 주장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기성세대의 일부는 청년들을 옹호하지만, 다른 이들은 청년 세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 세대 내에서도 저 두 주제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자칫 어려운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또 다른 갈등의 서막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난 여론의 다수가 문제제기의 원인에 주목하기 보다는 청년 세대의 절망과 자조, 무기력한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이 자조에 빠져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헬조선’에 공감할지언정, 모든 것을 ‘탓’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답한 20명의 참가자들은 이를 지지하는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현재의 전공을 선택한 계기에 대해 적성과 흥미가 아닌 취업에서의 이점을 고려한 이는 6명뿐이었다. 대학의 역할에 있어서는 9명이 학문이 아닌 취업 지원이라 답했다. 또한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에 있어 긍정적인 전망을 지닌 이는 20명 가운데 14명에 달했다. 비록 모집단의 규모가 작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내는 바는 분명하다. 다양한 이유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는 있지만, 여전히 취업이라는 현실적 측면보다 흥미와 적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고, 지적 성장의 주체로서 대학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부정적 상황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직은 남아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는 청년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대화를 통한 상호 간의 이해와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청년들의 부정적 현실 인식은 이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시스템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가 청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기성세대에만 전가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기성세대는 사회 변화에 무감각한 잣대로 청년 세대를 가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반대로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무턱대고 배척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소통의 부족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이것만 해소되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최백호 씨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등장한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허전함은 종잡을 수 없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청년에게 낭만을 찾아줄 수 있는 시간은 오래 남지 않았다. 현재의 자조가 체념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문제 해결의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청년 세대는 미래 사회의 주류 구성원이다. 이들의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게 된다. ‘이제 와 새삼’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직 청년들은 그러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소통과 대화, 이해와 공감. 이것이 바로 낭만을 되찾을 가장 빠른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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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540?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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