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주거 고시원 기획기사>
월세 40만 원짜리 '인생 고시생'
[진보정의연구소 블로그기자단] 서울 청년가구 30% '주거 빈곤'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중략)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힘껏 잡아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피… 쉬…."
1991년 고시원을 배경으로 한 박민규 씨의 단편소설 <갑을고시원체류기> 중 일부다. 하지만 소설 속 고시원은 2015년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 고시원, 입구에는 분리수거함이 있다. 복도의 적막감, 천장의 CCTV가 오가는 이들에게 눈치를 준다. 방으로 들어가니, 눅눅함이 피부에 먼저 스민다. 침대 폭은 성인 남자의 어깨너비였으며, 화장실 유리벽과 맞닿아 있다. 책상은 노트북 한 대만으로도 꽉 찼다. 화장실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비좁았다. 그나마 창은 화장실 변기 바로 옆이 유일하다. 창 크기는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뼘이다. '딸각!' 옆방에서 전등 스위치 켜는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 고시원. 김한주 기자
거주 공간에 따라, 1인 청년 가구도 계급이 나뉜다. 최상위층은 전세 오피스텔, 다음은 보증금 있는 월세와 하숙 순이다. 그리고 고시원은 최하위층이다. 그나마 고시생을 찾아보기 어려워, '고시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고시원은 사법고시나 임용고시 등 주로 국가에서 시행하는 고시(高試)를 준비하기 위한 곳으로 출발했지만, 1997년 경제위기 후에는 직장인들이, 다음은 일용직노동자로 대표되는 도시빈곤층이, 2010년 이후에는 보증금과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대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고시원은 '리빙텔' '룸텔'과 같은 저소득층 생활공간으로 상호를 바꾸고 있다.
'주거 빈곤'은 최저주거기준미달 가구뿐만 아니라 지하 및 옥상,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주택 이외에서 생활하는 가구를 포함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전체청년가구 중 30.6%가 주거 빈곤에 처해있다. 3가구 중 1가구가 일반적인 주택 외의 곳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1인 가구를 기준으로 볼 때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0년 1인 청년가구 중 36.6%가 주거 빈곤에 처해있으며, 2000년 31.2%, 2005년 34.1%, 2010년 36.6%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창문이 있으면 45만 원, 없으면 35만 원이다. 햇빛이 드는 것이 중요해서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지만, (창문 크기가) 제대로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다. 햇빛보다 심각한 문제는 좁은 공간에서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이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고시원을 나왔다."
- 서울 구로구 A고시원에서 3개월 동안 거주한 ㄱ씨(여·24)
"자유가 없다. 음악도 전화도, 심지어 알람을 틀어 놓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충분히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옆방에서 노크를 한다. 친구를 데려오면 CCTV에 걸려서 퇴실 조치된다. 좀 더 자유로운 자취방을 찾아봤지만, 1000만 원 단위 보증금에 포기했다."
- 서울 신촌 B고시원에서 9개월째 거주 중인 ㄴ씨(남·25)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조교 생활부터 과외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래도 월세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 2004~7년 하숙은 월에 40만 원이었다. 당시에도 보증금은 턱도 없이 높았다. 없는 형편에 돈을 아끼는 방법은 고시원밖에 없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가진 것이라고는 집 한 채밖에 없었다. 공공기관에 취직한 후에도 한동안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 3년간 서울의 여러 고시원을 전전하며 산 ㄷ씨(남·32)
무분별한 임대료 증가 규제 위해 "임대차보호법 강화해야…"
민달팽이유니온 정남진 사무국장은 "전체 가구의 주거 빈곤은 하락하고 있지만, 청년 주거 빈곤은 증가하고 있다"며 "대학가 주변 고시원(리빙텔·룸텔 포함)이 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청년 주거 빈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신촌의 경우 풀옵션의 월세 원룸, 고급리빙텔이 증가하는 반면, 저렴한 임대주택은 감소하고 있다"며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국장은 대책으로 "주택임대차 보호법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임대료의 적정 기준을 제시해 임대료가 급등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정 사무국장은 "헌법에 주거권이 명시돼 있듯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균등한 주거권을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핵심공약인 '행복주택(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비판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자격 요건을 기준으로 차등 적용되고 있다.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일 경우 취업 또는 결혼 5년 이내 무주택자로, 부모 또는 본인 소득이 평균 소득의 100% 이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가 주민과 갈등을 빚은 '행복주택' 목동지구 지정을 해제하면서 송파와 잠실 등에서도 시범지구 해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해당 주민들은 행복주택으로 거주민들의 집값이 하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중년층 대부분이 자가소유자다. 자산의 약 70%가 부동산이기 때문에 집값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행복주택 지구 지방자치단체들이 중년층 자가소유자와 청년 예비입주자 간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지역의 의원이 나서야 한다"며 "공공영역이 나서지 않으면 사적영역 다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등록금 1000만 원 시대, 전세와 월세 보증금마저 1000만 원대를 가뿐히 뛰어넘어 청년 주거 빈곤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활비를 마련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청년 주거 문제 역시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들은 오늘도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웅크린 채 잠들고, 눅눅한 공기를 마시며 일어난다. 고시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청년들, 언제쯤 월세 40만 원의 '인생 고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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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460?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