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청년 주거 관련 콩트(르포) "그 남자 그 여자" 이건호 기자

<청년 주거 관련 콩트>

 

그 남자 그 여자

 

그 남자의 이야기

 

1 . 2015년 2월 12일, 자취방

 

-야, 그 것만 입으면 얼어 죽는다. 가운 얇으니깐 코트라도 걸쳐.

 

머리에 왁스를 바르느라 정신이 없던 요한이 힐끗 희수의 옷차림을 보더니 충고를 해주었다. 이들은 오늘 대학교를 졸업한다. 09학번인 이 둘은 ‘90’년대 생의 맏이이며, ‘0’학번 대의 막내지만, 아버지 세대들이 ‘386’ 이니 ‘486’이니 숫자에 매달리는 것과는 달리, 그 누구도 ‘9’나 ‘0’ 같은 숫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 아니 어떤 면에선 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저 각자의 학점 ‘4.5’라는 숫자에 모든 사활을 걸었으며, 등수 ‘1’ 을 향해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숫자가 조금 더 작아지고, 세분화되어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애들 말이야…. 많이 오려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영수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졸업식에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종강하기가 무섭게 외국으로, 학원으로 또 아주 드물게 회사로 달려가는 친구들과 달리 이 둘은 바로 어제까지 학교의 사무처에서 국가근로를 하며 지내서인지 둘은 아직 졸업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올 사람은 다 오겠지 뭐. 그나저나 오늘만 지나면 진짜 백수네.

 

요한의 말에 키득거리며 웃던 희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야 대학원에 진학을 하니까 잠시나마 ‘취업유예’라고나마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요한은 말 그대로 백수신세다. 요한의 부모님이 어떤 눈으로 아들을 바라볼지 눈에 선했지만 어쩌겠는가. 지원한 여러 곳의 회사 중 단 한 곳에서도 요한을 부르지 않았다.

 

희수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넥타이가 너무 타이트하게 매여진 것 같아 손가락을 넣어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4년간의, 군복무 2년까지 합치면 총 6년 동안의 배움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이다. 앞으로의 걱정은 앞으로 하면 될 일이고, 요한의 미래는 요한이 걸어가는 것이기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양복을 입은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다. 양복을 입고 졸업을 하지만, 양복을 입고 일을 할 곳이 아직 없다는 것도 조금은 우습다. 지금 자신을 옭죄는 넥타이는 언제 다시 꺼낼 수 있을까. 아니, 아직 시간은 많이 있다. 오늘에서야 졸업을 하는 데 조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 입었냐? 가자. 기주랑 승화가 송림각에서 기다리고 있댄다.

 

구두를 신다말고 요한은 멈칫했다.

 

-송림각도 이제 마지막이야. 대박.

 

나중에 또 먹을 일이 있겠지라고 말하려던 희수는 말을 삼켰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격대비 맛이 별로라고 욕을 했던 송림각. 마지막이라고 하니 특별하게 세트메뉴를 먹어줘야겠다. 졸업식이 끝나면 짐을 빼기로 하며 둘은 문을 나섰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의 정들었던 투 룸도 이제 끝이다. 방음이 되지 않아 위 층 신혼부부의 잡음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막상 떠난다고 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부부여, 신혼의 달콤함이 오래가시길.

 

2 . 2015년 8월 11일. 혜화

 

-희수, 살아있네?

 

흰 반바지에 청남방을 입은 요한이 뒤에서 툭, 어깨를 쳤다. 가만보니 요한의 패션은 작년 이맘때와 똑같다. 희수가 패션을 지적할 수준은 아니지만 1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요한의 모습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간다 해도, 요한처럼 아직 그대로인 부분도 있는 것이다.

 

근황을 묻자 요한은 쿨하게 백수상태라고 말했다. 이력서는 여러 곳에 보내봤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한 곳도 없고, 겨울방학 때 벌어놓은 돈도 떨어져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차비도 없다는 것이다. 신세한탄을 하던 요한의 입에서 여러 번 들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야 그런데 너는 자취하는거냐? 월세는 얼마야?

 

나는 눈앞에 놓인 유리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하다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서울에 온 지 반 년가량 되었지만, 몇 번이고 받는 질문이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하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이 뒤를 이었고, 학사관에 산다 말하면 그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 또 꼬리를 물었다.

-나는 학사관 살아서 관리비만 내지. 교회에서 숙소를 마련해줘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거기서 지내고 있어. 그 있잖아 행정학과 우성이형. 그 형은 아버지가 군인이라 군인학사에 있었잖아. 뭐 그런… 비슷한 거야.

 

그런 좋은 일을 하는 교회도 있었냐며 신기해하는 요한에게 상경할 계획이라도 있냐고 묻자 피식 웃는다. 무슨 상경이냐고, 우선은 갚아야할 학자금이 있다고 말했다. 맞다. 요한은 대학 8학기 중에 4학기 가량을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다.

늘어나는 이자에 대해 겁먹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갑자기 적막감이 흘렀다.

-이것만 갚으면 나도 서울 가고 싶다야. 영상 쪽으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데, 대학원을 갈 형편은 아니고,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야지.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언젠가 영상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던 요한의 말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요한은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영상을 잘 만들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학교 축제나 홍보 영상의 대부분은 요한의 작품이었고, 아마추어 전국 대학생 단편영화제에 출품했던 단편영화는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얼른 빚부터 갚아야겠네…. 알바는 좀 하고 있어?

 

-PC방 알바 한 지 두 달 되었지. 힘들어. 올 겨울까지만 해도 국가근로 하면서 시급 만원 가까이 받다가 최저시급만 받아가면서 일하니깐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썩을.

 

옆나라 일본에서는 우리 같이 앞길이 막막한 세대를 사토리세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바만 해도 혼자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질 않는가.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6천원도 안 되는 판국에 파전 한 장이 만 원인 나라다.

 

-웃기지 않냐? 겨울까지만 해도 우리가 밤에 PC방 가서 놀면서 일하고 있는 알바 형들이랑 친하게 지내면서도 저 형들 어쩌다 저렇게 되었냐 하며 불쌍하다고 그랬는데, 내가 딱 그 꼴이네.

 

문득 유리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우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롱하게 빛이 나지만,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물방울. 열정으로 불타올라 수증기가 되어 하늘을 날 수는 없나보다.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아직 그 동네 사는거지?

 

창밖을 바라본 채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요한은 아직 학교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반지하 방에서 살고 있다. 말이 반지하지 1층이나 다름 없다고 웃던 모습이 오버랩 되서 희수는 말없이 스마트폰 액정 위에 떠있는 시간만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마침 얼마 전 읽었던 책은 ‘봉고차 월든’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미국에서 학자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집도 마련하지 못한 채 봉고차에 사는 월든이 있다면, 한국에는 반지하에 사는 요한이 있다. 지구 저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월든이나, 바로 앞에 앉아있는 친구 요한이나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탁자 위에서 까딱거리는 요한의 손을 살짝 잡았더니 쌍욕이 날아들었다.

야 임마. 그런 거 아니야! 힘 좀 내라고! 엉아 마음도 모르고….

 

-징글맞게 안하던 짓을 하니까 그러지…. 아 맞다 희수야. 근데 얘 어떠냐? 그치? 괜찮지? 얼마 전부터 사귀고 있는 앤데….

 


그 여자의 이야기

 

-2015년 7월 31일, 합정

 

-러브하우스요? 알다마다요. 신동엽 나오는 프로! 따라다라따~ 따라라라라~ 하는 그 음악 크으! 추억 돋네요. 거기 나왔던 건축가 아저씨가 누구였더라? 잠시만! 검색 해보려고요. 이런 거 궁금하면 못 참는 사람이라서. 여기있네. 양진석 아저씨! 와 대박이네. 건축가이자 대학 교수이며 저자이자 싱어송 라이터, 프로듀서, 영화배우? 언제 이렇게 유명해졌지? 아, 원래 대학생 때부터 가수였다고? 아무튼. 다재다능하네요.

 

아, 왜 이 아저씨 이야기가 나왔지? 집! 그래 집이야기하고 있었죠? 하하. 죄송해요. 말씀대로 서울에서 사는 게 참 빡세죠. 특히 집값이 가장 문제예요. 아니 원룸 하나가 1000에 40이라뇨. 허 참. 88만원 세대인데 40을 월세로 내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관리비 내면 88만원 중에 절반 이상을 집값으로만 내는 꼴인데 진짜 뭐 먹고 살라는 건지. 이래서 히키코모리가 생긴다니깐요? 돈이 없어서 밖으로 못나오는 경제적 히키코모리!

 

어찌되었건 부동산 경제가 얼어붙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한국의 부자들이 대부분 부동산 부자들이거든요? 부모님 세대들인데 부동산! 집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고. 자식뻘인 신혼부부, 청년들이 집을 살 능력이 없는데! 당연히 집값 폭락할 때가 올 겁니다. 일본처럼 1,2,3,4 bubble~ bubble~  시간문제예요. 누구 노래였지? 아 윈터플레이였나? 한가인 세탁기 광고 나오던 노래 맞죠? bubble~ bubble~ 아무튼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정부인데. 이… 하, 답답하네요. 하하.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귀신을 불러낼 생각인가보다. 혼자서 잘도 굿거리장단으로 북치고 장구 치고 있다. 그저 어색함을 깨기 위해 집이 어디냐고 물었고, 추억팔이용으로 러브하우스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그는 러브하우스에 나오던 건축가의 근황을 알려주었고, 새삼스레 우리가 88만원 세대라는 것을 인지시켰다. 또 세탁기광고에 나오던 노래가 윈터플레이의 노래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는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정작 집이 어딘지는 말을 해주지도 않았다.

 

이 사람, 본인 입으로 내성적이라고 했던 사람 맞나? 이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덧입혀지는 이미지가 너무 상반되어 어렵다. 밥을 먹을 때 까지만 해도 점잖고 구김 없는 모습이었는데, 알콜 조금 들어갔다고 첫 만남에서 이렇게 혼자 떠드는 남자라니, 신기하다.

 

-그나저나 제가 참 이사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다녔어요. 거의 1년에 한 번씩 돌아다녔죠. 아뇨, 아버지가 군인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쪽방살이를 좀 했던 거죠. 아버지가 노가다를 하셨거든요. 저어기 앞에 큰 상가 보이죠? 저 것도 저희 아버지가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리신 거예요. 사실, 어렸을 때는 노가다꾼 아버지가 참 창피했어요. 그래서 모르는 척 한 적도 있구, 아버지 일하고 계신 곳을 피해서 멀리 돌아서 집에 가기도 했는데, 이제와서는….  하하. 이런 얘기는 조금 그런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 남자는 벌써 취한 게 분명하다. 신부도 아닌데 왜 나한테 고해성사를 하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소개시켜준 지선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있어야하는데.

 

지선이랑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만 해놓고 살 곳이 없어 막막하던 20살의 겨울, 인터넷의 한 카페에서 지선이의 글을 발견했다.


‘룸메이트 구해요. C대학 후문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1.5룸입니다. 싸게 나와서 얼떨결에 계약을 하긴 했는데, 혼자 쓰기엔 조금 큰 감이 있네요. 술·담배 안하시고, 남자를 집에 끌어들이지 않고, 12시 이전에는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월세가 50이니, 반 띵. 관리비도 반 띵. 도합 30만원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생각 있으신 분은 연락 주세요.’

 

술과 담배는 물론 남자도 없는 나에게 아주 적합한 룸메이트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무엇보다 화면 안에서 어색하게 몸을 말고 있는 반 띵이라는 말이 매우 귀엽게 느껴져서 새벽에 다짜고짜 전화를 했고, 그렇게 4년을 룸메이트로 살아왔다. 가족 다음으로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한 지선이가 남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했을 때, 이 것 저 것 캐묻지 않고 바로 콜을 외쳤다. 그리고 그 콜이 고해성사가 되어 돌아왔다.

 

-아, 집이 어디냐고 물으셨죠? 저는 경기도에서 살고 있어요. 하은씨는요?

 

이제야 내 질문이 생각났다. 칭찬박수 짝짝. 고해성사를 듣던 신부가 말을 할 차례다.

 

-네, 저는 지금 왕십리에서 살고 있어요.

 

분명 곱창이야기를 하겠지

-와, 곱창 먹으러 한 번 가야겠는데요? 하하

 

왕십리에 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곱창이야기를 하거나 또 곱창 이야기를 하고, 혹은 곱창 이야기를 한다. 아주 가끔 청량리와 헷갈려 춘천행 기차를 타러 가봤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그 동네 알아요’라고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을 알고 있다. 나만 해도 누가 ‘벌교’ 하면 ‘꼬막’ 이라고 이야기를 할테니 말이다. 이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만 괜한 실망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 남자에게 약간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비춰져 흥미를 잃어가던 찰나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말을 했다.

 

-하은씨도 혹시 빈지노 좋아하세요? 오! 역시 빈지노는 인기가 좋네요. 빈지노 말고는 또… 아, 더콰이엇 하하. 힙합 좀 들으셨나봐요? 저도 빈지노나 더콰이엇도 좋지만 저는 하이라이트 랩퍼들이 좋더라구요. 네, 팔로알토가 있는 레이블이요. 그 중에 허클베리 피 라고 있는 데… 네! 하은씨 좀 아시는데요?

 

하하. 이 남자는 멋쩍은지 계속 하하 웃는다. 전혀 힙합을 좋아할 것 같지 않게 생긴 남자가 한국 힙합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는 모습은 기이했다. 공부만 할 것 같이 생긴 남자가 힙합이라니. 아니, 가만 보니 매드클라운을 닮은 듯하다.

 

-허클베리피와 소울피쉬가 피노다인이라는 팀을 결성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요. 사실 저는 이런 것이 진짜 노래고, 힙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 돈 많다. 내 차 봐라 비싸다 하는 것이 힙합이 아니라.

 

갑자기 힙합이란 무엇인가 강연을 할 기세를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두리번 거린다. 작은 공연장으로도 쓰이기도 하는 카페의 구석에는 스탠드마이크를 비롯해, 신디사이저와 기타가 놓여져 있었….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남자는 웃음을 보였다.

 

-요, 요한씨 진짜로 하시게요?

-네! 좋은 음악은 바로바로 들어야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손님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남자는 주인에게 눈짓을 했다. 자연스럽게 스피커를 통해 MR이 흘러나오고, 나는 4분 후 이 남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언덕 위에서 보면 이리도 많은데 내 친구의 집은 왜 없나요?
우리 모두가 의식주는 만인의 기본 권리라고 다들 배웠잖아요.
쑥쑥 자라나는 저 키 큰 건물들은 누구를 위해서 세워지나요?
내가 말한 친구가  당신의 친구라도 당신은 정말 괜찮나요?
내 친구는 자주 울어요. 이번엔 어디로 이사가냐고 물어도
아버지의 입은 무겁대요. 분위기만큼이나 나까지 무섭네요.
내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걸까요? 집값이란 게 왜 자꾸 오르는 건가요?
쉴 곳을 찾으려 쉬지 못하는 친구의 굽은 등을  다들 왜 못보는 척하죠?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야.
친구의 마음을 그저 헤아릴 뿐야.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이야. 돌아오는 건.

 

글씨 하나 없는 역사책을 읽었어요. 아주 오래 전 가난한 소년이 있었어요.
그 소년의 꿈은 서울에 올라와서  성공을 거머 쥔 채로 돌아가 고향 한켠에
부모님 이름 앞으로 된 집을 짓고 사랑하는 그녀를 닮은 아기를 낳고
그저 남들과 같은 하루하루를 스케치 하듯 사는 아름다움을 누리는 거였죠.
그게 뭐가 어렵죠? 소년이 어른이 되어도 그 꿈은 멀었죠.
서울의 건물은 조금씩 자라났고 집세라는 새는 하늘로 날아갔죠.
이제 5층 아파트는 몽당연필 같아요. 같은 아파트라도 어떤 애랑은 달라요.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는 내 친구의 별명은 임대아파트라죠...

 

빽빽한 건물 숲에서 마음 둘 곳 없어. 아무 죄책감 없이 사는 사람들의 변명.
마누라나 자식 핑계를 대는데 누군 가족이 없나?  아니 대체 왜 그래?
가끔 지하도를 걷다가 발견하는 신문지 덮은 아저씨.
이게 발전하는 세계 속은 서울인가? 도저히 알 수 없네.
저 사람들 맘 편히 뻗고 잘 수 없네.
다행인거지 난 월 75 낼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지지고 볶는 삶이라고 축복 받은거야 너무 감사해.
오지랖이 넓어서 불평등함에 맘 상해.
Xi Lotte Castle I Park. 이 편한 세상에 우리 보금자리가
왜 모자란걸까 누구 탓인가? 그냥 물어보는 거야. 궁금하니까.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야.
친구의 마음을 그저 헤아릴 뿐야.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야.
친구의 마음을 그저 헤아릴 뿐야

 

집 한 구석에 남겨 둔 추억들을 치우던 친구의 발걸음은
너무 무거워 내 마음보다 더.
이삿짐 나르기를 반복하던 친구가 흘린 그 눈물의 의미.
전부 알 순 없지만 우리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난 잘 알아요.
친구의 입에 미소가 자라나길 바라면서 밤 깊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그 분을 향해 모으는 손. 비단 친구뿐이 아닌 누구던가
기본적인 행복에 대한 추구권은 지켜져야만 해요.
우리가 지켜줘야 해요.  친구의 이사가 이번달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내 기도를 하늘에 매달아요...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야.
친구의 마음을 그저 헤아릴 뿐야.
어디 있나요? 내 친구의 집은.
어린 마음에 외치고 외쳐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뿐이야.
친구의 마음을 그저 헤아릴 뿐이야


피노다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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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457?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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