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실태 기획기사1> 근로장학생의 지위문제와 대학교의 불합리성
넌 장학생이니? 노동자니?
대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학생티를 풍기는 교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대학 도서관에서의 사서 역할부터, 각 단과대 학사지원부 행정업무, 건물 시설관리까지 다양한 일들을 맡는다. 대학이 돌아가게끔 하는 주요 축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적은 시급을 받으며,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을’의 입장으로서 언제나 ‘갑’에게 시달린다. 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은 바로 ‘근로장학생’이다.
말 그대로 이들은 ‘학생티를 풍기는 교직원’이다. 이들은 아직 대학생이지만, 학교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교직원’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교직원’은 아니다. 그러나 근로장학생들은 학교에 의해 고용되어, 학교의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다. 학교의 교원 및 사무직원이라는 ‘교직원’의 단순한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이들을 교직원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노동자(교직원)로서 인정받아야 할 근로장학생,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노동자(교직원)인가, 장학생인가? 아니면 중간자적 존재? 근로장학생의 지위와 그에 따라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에 대해서 학교와 학생들은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인다.
근로장학생=근로봉사를 제공하는 자?
근로장학생을 대학교 학칙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K대학교 학칙에 따르면 근로장학생은 교내 행정업무 보조 등 ‘근로봉사’를 제공하여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지급받는 학생이다. (K대학교 학칙 제3편 4장 27조) ‘근로’와 ‘봉사’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근로봉사’라는 이 해괴한 단어의 모순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학생들의 엄연한 노동을 ‘봉사’로 취급하는 학교의 처사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학교의 근로장학생 모집공고를 보면, 학교의 모순적 태도가 절실히 드러난다.
출처 : 모 대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근로장학생 모집공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오늘도 ‘장학생’들은 엄청난 대학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학교에서 ‘노동’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자성이 인정된다. 이때 ‘종속적 관계’의 여부를 파악하는 기준에는 업무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하여지는지,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있는지, 보수가 근로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고 있는지 등이 있다.
이 모집공고에 따르면, 근로장학생은 사용자에 의해 정해진 업무를, 사용자에 의해 지정된 근무시간과 장소에서, 고정된 급여를 근로의 대가로서 받고 일을 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근로장학생은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로부터 고용되어, 학교의 통제 하에,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다. 왜 이들의 노동을 봉사라고 칭하는가? 왜 이들의 급여를 노동에 대한 대가, 임금이 아닌 장학금이라고 칭하는가? 왜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장학생이라 칭하는가?
‘장학생’들의 노동실태
사실상 노동자로 인식되어야 하는 근로장학생은 다음과 같이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근로환경과 조건들을 보장받아야 한다.
▲ 주 15시간 이상 근무 시 주휴수당 지급
▲ 여성의 경우 월 1회의 생리휴가 보장
▲ 4대 보험 가입
▲ 근무 4시간마다 30분의 휴식시간 보장
▲ 1년 이상 근무 시 퇴직금 수령
근로장학생은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보장받으며 근무하고 있을까? 당연히 답은 ‘아니오’다. 알바연대와 청년유니온 등이 진행한 근로장학생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내의 근로장학생은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학교의 불합리한 처사들은 근로장학생이 노동자가 아닌 장학생이라는 부당한 이유 하나로, 합리화되고 있다.
단순한 근로환경과 조건뿐 아니라, 근로장학생의 시급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임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8개 주요대학 교내근로평균 시급은 5,737원이다. 이는 2015년 법정 근로 최저 시급인 5,580원을 가까스로 넘긴 시급인 데다, 2015년 1분기 알바 평균 시급인 6,910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급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등록금 부담을 덜 수 있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일한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학교에게 근로장학생은 남는 장사
학교의 입장에서, 근로장학생 고용은 사실 매우 남는 장사이다. 교직원을 채용하여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근로장학생을 통해 싼값에 처리함으로써, 학교는 인건비를 절약한다. 한편, 근로장학생의 급여는 장학금으로 취급된다. 다시 말해, 근로장학생의 급여가 대학교 평가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장학금 환원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학교 당국은 근로장학생을 고용함으로써, 인건비도 절약하고, 학교평가에서도 이득을 본다. 학교가 근로장학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로장학생을 장학생이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는 순간, 근로장학생의 급여는 장학금이 아닌 단순 인건비로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근로장학생 급여가 장학금 환원율 계산에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학교가 학생들에게 양보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노동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근로장학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교의 입장은 완고하지만, 근로장학생의 노동자 지위 인정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학생사회의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알바연대와 같은 단체들과 각 대학교 총학생회가 나서서 근로장학생 시급 인상과 노동자 지위 인정을 학교 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장학생 문제는 청년알바 및 노동문제 중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안은 아니므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학생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법적으로 봤을 때, 명백한 노동자인 근로장학생이 ‘장학생’이라고 불리며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이른바 대기업들의 ‘열정페이’를 떠올리게 한다. ‘열정’으로 열악한 근로환경과 낮은 급여를 합리화하고 포장한 대기업들의 인턴고용 실태와 ‘봉사’와 ‘장학금’으로 열악한 근로환경과 낮은 급여를 합리화하고 포장한 대학교의 근로장학생 고용실태 사이에는 유사성이 엿보인다. 장학생인지, 노동자인지 명확하지 않은 지위를 가지고 오늘도 땀을 흘리며 학교에서 일하는 근로장학생의 모습은 기업에 의해 대학이 장악되고, 대학이 기업화되어가는 안타까운 실태의 단면이기도 한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오늘도 ‘장학생’들은 엄청난 대학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학교에서 ‘노동’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403?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