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교육
  • 당비납부
  • 당비영수증
    출력
  • 당비납부내역
    확인

이사장/소장 칼럼

  • [미래정치센터-경향신문 공동게재] 정치인과 정치가

조성주 (미래정치센터 소장)

 

 

큰 선거가 있는 해이다 보니 사람들 입에서 정치인이 많이 거론된다.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이들도 마치 스포츠게임이나 연예 프로그램을 말하듯 정치인들의 행보와 말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치인’이라는 단어가 ‘연예인’ 또는 ‘스포츠 선수’와 같은 느낌의 단어가 된 듯하다. 정치인의 존재가 시민에게 더 가깝고 친근하게 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정치를 거대한 콜로세움 안에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혈투처럼 중계하는 사이, 시민들도 그것을 구경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말한 이래, 직업적 정치인의 존재는 현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마치 연예인과 같은 직업적 정치인은 많아지는데 시민들과 함께 세상을 개혁하는 ‘정치가’는 점점 퇴색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인을 시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일정 정도 맞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봉사라는 것이 도덕적 선의를 베푸는 것이나 또는 시민들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라면 그것은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를 지칭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주권이 시민에게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평등한 시민으로 관계를 맺을 때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원리일 뿐이다. 혹여 일부 정치인들의 권위주의적인 행태가 문제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개혁해 나갈 문제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지시하면 명령에 따르는 기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많은 비용과 갈등을 겪어가며 선거를 치를 필요가 굳이 없을 것이다. 말 잘 듣고 성실하기만 한 무색무취한 이들로만 의회를 채우면 될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을 다루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폭력’과 ‘강제력’으로서 매우 위험한 힘이다. 정치인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그 위험한 힘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모든 시민이 그 위험한 힘인 권력을 다루는 것에 참여하거나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가지는 가치관의 차이, 이해관계, 그리고 욕망. 우리는 스스로를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선한 시민들이라 상정할 수 없다. 이곳은 천사들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그렇게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없고, 공동체에 완전히 헌신하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완벽한 복종이나 도덕적 완전무결성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방안과 그에 대한 명료한 실천의지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명확한 책임을 묻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일 것이다.

 

정치인은 더 나은 시민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평등한 관계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이 시민들과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공유하고 권력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실천해 나가는 순간, 우리는 그를 ‘정치인(政治人)’이 아니라 ‘정치가(政治家)’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정치가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공유하는 시민들과 함께 존재한다.

 

얼마 전 청년들을 대상으로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한 청년이 질문을 했다. 20대 후반의 그는 극한의 경쟁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호소했다. 오직 불안하고 괴로운 미래만 그려진다며 정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 불안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담담했다. “정치는 인간의 불안이나 영혼을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우리가 겪는 인간세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비루한 현실세계에 살 수밖에 없는 당신의 삶을 아주 조금쯤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기에서 현실을 버틸 힘과 때로는 작은 행복을 찾으며 조금씩 세계를 좋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정치가는 무한의 행복이나 긍정, 구원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선거가 있는 올해 우리 사회에 더 좋은 정치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나 스스로도 그런 정치가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야 한다는 정치관과 사회개혁의 비전을 공유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싶다. 단 10명이어도 좋다. 그들과 이 설레는 정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정치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이에게 허락된 작은 행복일 것이다. 정치가와 시민의 관계로, 다가올 다른 정치를 맞이하자.

 

 

 

(2016년 1월 7일에 경향 오피니언에 게재됨)

 

 

sns신고
 


출처: http://www.justicei.or.kr/526?category=679169 [정의정책연구소]
참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