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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준 칼럼, 그래도 진보정치(한겨레)] 촛불의 다음 상대, 부동산 신화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촛불의 다음 상대,

부동산 신화

 

 

모든 병증의 근저에 부동산 불로소득이 있다. 촛불의 1차 승리 이후 미약하나마 사회 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이 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건물주와 집주인이 늘 승리하는 구조를 뒤엎어야만 다른 문제들도 풀려 나갈 수 있고, 역으로 이 구조에 손대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문제가 꼬일 수밖에 없다.
 

장 석 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요즘 비트코인으로 시끄럽다. 찬반양론이 격렬히 대립하는 탓에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왜 이토록 첨예하게 맞서는가?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기술이 본래 이렇게 갈등을 유발하는 쟁점인가? 아니다. 다른 문제 탓이다. 이 문제가 얽히면서 새 기술과 제도를 둘러싼 토론은 이내 세대 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한다.

 

실은 비트코인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구는 웬만한 논란거리는 다 이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다. 최저임금 논란이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을 훼방 놓으려는 자들은 자영업을 들먹이며 부작용을 말한다. 실제로 자영업 사정이 안 좋기에 이런 논리가 먹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곤란 이면에도 역시 비트코인 논쟁을 세대 간 쟁투로 만들어 버리는 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본을 불리고 불황을 견디며 신분 상승 사다리를 오르고 노후를 보장하는 요술 방망이 노릇을 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절정기였던 2000년대 중반부터 양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돈은 넘쳐나는데 제조업 투자는 세계 시장의 경쟁 격화로 매력을 잃자 부동산 투기나 임대 소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일부 86세대 중산층도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이 정체되고 고용이 불안해지자 자산시장 투자(투기) 수익과 노동 소득은 더욱 극적으로 대비됐다.

 

일부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이 판에서 조기 퇴출됐다.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여파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불황이 이어졌고, 사회가 그야말로 무너져 내렸다. 누가 보더라도 앞 세대가 살아온 방식은 더 이상 새 세대의 길이 될 수 없었다. 이런 각성을 바탕으로 스페인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서서 이른바 ‘분노한 자들’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열기 속에 창당한 새 진보정당 포데모스가 급성장해 기성 양당 구도를 혁파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은 스페인 같은 부동산 시장 폭락을 겪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경제 위기 속에 허우적댈 때에 우리의 골칫거리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었다. 퇴행이 문제였을망정 붕괴는 비켜났다.

 

그러나 이게 좋은 일이기만 할까? 촛불로 새누리당 불패 신화는 무너졌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하다.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갖다 바치느라 영세 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가 골육상쟁한다. 장사가 조금만 잘되면 임대료가 올라 임차 상인이 거리에 나앉는다.

 

비정규직이거나 세입자인 젊은 세대는 부동산 투기판의 불야성을 보며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비트코인 시장은 부동산 시장 대신 열린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들에게 가상화폐 규제론은 부동산으로 재미 본 앞 세대의 위선으로만 들린다.

 

이 모든 병증의 근저에 부동산 불로소득이 있다. 촛불의 1차 승리 이후 미약하나마 사회 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이 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건물주와 집주인이 늘 승리하는 구조를 뒤엎어야만 다른 문제들도 풀려 나갈 수 있고, 역으로 이 구조에 손대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문제가 꼬일 수밖에 없다. 벌써 강남 아파트 가격은 지금이 촛불 이후 시대라는 상식을 한껏 비웃으며 지속 상승 중이고, 단단할 것만 같던 촛불 시민 연합은 부동산 적폐와 얽힌 난관들 앞에서 처음으로 결정적인 균열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분발해야 할 것은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과 노동-사회운동이다. 정부와 여당이야 한꺼번에 여러 계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지만, 진보정당은 앞뒤 안 가리고 부동산 불로소득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서 늘 패배자인 이들을 배타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좀 더 과감하게 투기-임대 수익의 사회 환원과 임차인 권리 강화를 주장해야 한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다른 것 말고 부동산 신화와 싸우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개헌 토론에서 토지-주택 공개념을 부각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부동산 불패 신화를 흔들어야만 다른 모든 개혁이 제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다. 그래야만 촛불 시민 연합도 와해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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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796?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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