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정책연구소 칼럼]
화재로 인한 예고치 않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
막을 순 없을까?
고 광 용(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작년 12월 21일,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된 화재로 스물아홉 분, 지난 1월 20일, 서울 종로 한 여관에서 발생된 화재로 여섯 분이 예고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연이어 터지는 화재로 인한 죽음의 공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다중이용시설이나 대형복합시설에서 일어나는 화재는 곧 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 화재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주위의 평범하거나 잘 살지 못하는 가족, 친구, 이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다중이용시설이나 대형복합시설의 경우 소방시설 및 방화 체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노후화된 건축물일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시설의 주요 소비층이 주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화재 등 재난은 사회적 약자 계층에 특히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책무이니 만큼 정부와 지자체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건축 및 소방 관련 규제는 엄격하고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시설들은 대체로 오래된 건물이어서 규제적용 대상에서 벗어나거나 정기점검을 하더라도 형식적이거나 과태료를 물어주고 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최근 지어지는 건물이더라도 워낙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모든 소방관련 건축?시설물 규제를 완벽히 지키는 경우는 없다. 적당히 설비하고 나머지는 부실하게 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막상 화재가 발생될 경우 많은 다중이용시설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소방서에서 아무리 화재 진압장비를 완비하고 신속히 오더라도 이미 불길을 막을 수 없이 삽시간에 번지기 때문에 대형 참사는 불 보듯 뻔한 결과로 이어진다.
이번 제천 화재 사건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드러냈다. 재난단계별로 대한민국의 취약한 방화시스템을 보면, 첫째, 예방단계에서 불에 취약한 건물 외벽 마감재 드라이비트와 필로티 주차장, 승강기 방화구획 미비 등이 가장 큰 문제다. 필로티 주차장은 1층이 텅빈 채 기둥만 있는 상태로 지진 방재에서도 취약하지만, 화재발생 시 지속적인 산소 공급을 일으켜 아궁이 역할을 하고, 승강장을 통해 연결된 수직통로들이 굴뚝역할을 하며 불을 급속히 확산시킨다. 또한 건물외벽 드라이비트 또한 연소가 대단히 쉬워 상층부로 연소하면서 다량의 화염과 연기를 발생시킨다. 드라이비트는 해외 유명 건물마감재 제조업체의 이름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시공이 용이하여 상당수 건축물에 자주 쓰인다고 한다. 현재 2017년 4월 이후 신축건물에만 건물외장재의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전 건물에 대한 소급적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둘째, 대비단계에서 화재경보기가 작동은 했으나 상당히 늦게 그리고 층별로 다르게 울렸으며, 비상구는 선반을 설치해 통로가 좁았고 그 출입문은 정작 잠겨 있어 피난 불능 상태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2층 여자 목욕탕의 여성들은 유독가스와 농연에 노출된 채 비상구가 폐쇄상태가 되자 대피 지연 및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에 상당수의 인명피해가 여기서 발생했다. 반면 3층 남자 목욕탕에서는 이발사가 대피로를 잘 알고 있어 손님들을 신속히 대피시킴으로써 많은 인명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초기 화재 진안 장비인 스프링쿨러가 작동되지 않았다. 스포츠센터 주변 불법 주정차로 인해 굴절 사다리차 등 대형소방차 진입이 어려워져 초기진압 및 인명구조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다. 골든타임 내 화재 대비와 진압은 비단 소방청 만으로는 역부족이며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시민의식, 다중이용시설 운영업체의 상시적인 화재대비역량 또한 동시에 갖추어져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셋째, 대응단계에서 각종 불비한 여건에서 2층 여자 목욕탕 진입을 통한 인명구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무선통신 불량으로 인한 지휘소와 현장대응팀 간 상황공유 장애, 소방장비 조작경력 부족 등으로 인한 신속한 상황조치 등이 지연된 것이 문제였다.
넷째, 복구단계에서 소방합동조사단의 조사 및 개선대책 등은 상당히 신속하게 내놓기는 했으나, 소방합동조사단은 소방청 자체조사기구로 조사결과의 신뢰도가 100%가 되기 어렵다. 참사원인 규명이나 기존 건축물에 대한 전수 조사 및 개선 조치 등 해당 기관만으로 할 수 없는 구조적 측면의 원인규명과 개선대책 마련·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난단계별 문제점 및 쟁점사항을 정리해 볼수록 화재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의 예고치 않은 죽음을 막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물론 약간의 규제를 신설·강화해야겠지만, 현재 법령체계는 비교적 규제가 엄격하고 잘 되어 있는 반면, 실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역시 재난단계별 향후 개선대책을 검토해보면 다음고 같다. 예방단계에서 다중이용·대형복합시설의 건축 외벽 마감재 규제(불연재/난연재) 강화, 필로티 부분 및 출입문·승강기 방화구획 기준 마련과 더불어 상시점검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대비단계에서 화재경보기·스프링쿨러·불법 주정차(소방차량 통행) 등에 대한 상시점검체계 및 시정조치·처벌규정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피난통로(비상구·비상계단)의 정상 작동(층별 담당자 배정 및 정확한 피난로 인지) 여부를 정기(분기→격월)·상시(겨울철)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대응단계에서 사건접수 후 현장도착 5분 이내 단축, 지휘본부와 현장대응팀 간 소통·연락 네트워크 점검 및 상황별 대응 시뮬레이션 훈련 강화가 요구된다. 초동조치·현장 대응 매뉴얼에 지역별 주민연계 및 참여 방안을 포함하고 안전한국 훈련에서 작작동될 수 있게 화재에 취약한 다중이용시설은 특히 준비해야 한다. 즉, 민관 안전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지역별 주요 시설 안전관리 네트워크 지도 작성 및 점검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복구단계에서 사후조사 시 유가족, 전문가, 시민단체, 민간업체 등이 포함된 범정부 합동조사단 조직 체계를 갖추고 원인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이 성역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적폐청산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국가가 공권력을 쥐고 수행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임무라는 것을 정부(청와대·부처)와 여당(더불어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들 또한 화재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니 무분별한 불법 주정차는 지양하고, 지역사회 화재 및 인명구조 등에 더 많은 관심과 협조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주민안전공동체를 꾸리는 것이야말로 화재로 인한 예고치 않은 사회적 약자들의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794?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