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석(미래정치센터 부소장)
대학생이 되어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 밑에서 취업을 준비하다 직장인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전세금대출을 받거나 주택을 구입하여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해 결혼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할부로 차량을 구입한다. 빚의 릴레이 경주가 우리 인생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대다수 대한민국 일반인의 이야기일 것이다.
금융권은 대학생 신분과 소정의 서류만으로 학자금을 대출해 준다. 캐피탈 회사는 차량을 담보로 차량 구매대금을 대출해준다. 직장인은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급여를 담보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준다. 돈이 없어도 매매대금의 30%(2014년 8월 이후 LTV 70% 일괄 적용)만 있으면 구입할 아파트를 담보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게 없다면 보통 40대 전에 이 정도의 빚은 누구나 갖고 있다. 심지어 생활필수품으로 인식되는 휴대폰으로도 대출이 가능하다. 이 모든 대출의 전제는 경제적 수입 면에서 ‘내일도 오늘과 같다.’ 라는 것이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로 수입이 줄어든다면 이미 받은 대출금은 어떻게 해결하나.
이런 이유로 정부는 성실하나 불운한 채무자를 위한 제도로 개인회생, 개인파산이란 제도를 만들었다. 과거부터 이 제도는 존재하였으나, 그 활용 면에서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였으나 2004년을 기점으로 증폭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 증폭한 이유는 1997년 경제대란 이후, 정부 주도하에 내수활성화를 위해 거리에서조차 카드를 발급해 준 이유가 크다. 필자도 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증보여주고 카드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현금을 받아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 부양가족을 포함한 최저생계비용 이상의 수입이 있다면 최저생계비용을 제하고 나머지를 5년간 변제하면 다 갚지 못할지라도 변제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회생이다. 최저생계비용 이하를 버는 사람이라면 파산, 면책해주는 것이 개인파산이다.
개인회생제도보다 개인파산제도가 채무자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파산은 벌어서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벌어서 갚을 만큼의 돈을 못 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실제 먹고 살 돈도 없는 채무자는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결론적으로 채권자는 채무자를 심적으로 괴롭히는 것 외에는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파산의 요건을 갖춘 자는 파산, 면책해주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추세는 파산 신청의 수요는 적어지고 회생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개인파산 신청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꾸준히 낮아져 2014년에는 55,467건에 머물르는 반면, 개인회생 신청은 같은 시기에 꾸준히 증가해 2014년에는 110,707건에 이르렀다 한다. 회생사건이 파산사건의 두 배에 다다른다.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연구 자료는 없지만, 파산신청의 면책율이 낮아진 것이 주원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파산신청을 하면 법원의 회생권유가 있다. 벌어서 갚으라는 판사의 말을 듣고 어느 일반인이 싫다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대부분의 회생 권유를 듣고 채무자들은 파산이 아닌 회생으로 전환한다. 파산신청을 했다 면책을 받지 못하면 파산자로 살아야 하는 불이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것은 옷처럼 유행이 있다. 제한적으로 법 조문을 만든 탓에 법은 항상 해석이 뒷 따른다. 면책불허가 사유를 좁게 해석하면 그만큼 면책율이 높아 지는 것이고, 넓게 해석하면 면책율은 낮아지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 파산으로 면책받기는 힘들어 졌기에 파산 신청율은 낮아지고 회생 신청율은 높아진 것이라 해석된다.
파산과 회생의 긍극적인 목적은 면책이다. 면책이란 채무자의 변제 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은 채무자에게만 있는 것인가. 길가에서 신분증 하나로 카드를 발급해 주고 카드 하나로 모자라 모든 카드사에서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결국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은 더 쉬운 소비를 했고, 심지어는 일명 돌려막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집 값의 30%만 있어도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했고, 부동산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격이 상승할 거라 미디어에서는 호언장담을 했다.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이들을 모럴헤저드라며 비난했다. 채무자들 조차도 윤리적 책임감을 넘어서 죄책감에 시달리곤 하였다. 그러나 주식을 한 주라도 사서 돈을 날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대원칙을. 주식에서 돈을 날린 사람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를 욕하기 보다는 투자를 잘못한, 경제 흐름을 제대로 파악 못한 본인을 탓 할 것이다. 금융권은 채무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투자자인 것이다. 그들이 채무자의 신용을 판단해서 투자한 것이다. 그런데 왜 채무자를 탓한단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제대로 갚을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준 본인을 탓해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돈 못 갚는 사람을 편드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경우에 같은 규칙을 적용하자는 소박한 주장이다. 면책받은 이들은 넘어졌다 단지 일어난 것 뿐인 것이다. 남들은 저 멀리 앞에 달리고 있는데, 이제 면책 받은 이들은 출발선에 선 자들인 것이다. 출발선보다 더 뒤에 출발하던 이가 이제 출발선에 선 것 일뿐이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 파산, 회생으로 면책받은 이들이 있다면 비난하지 말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와 아이라 한다. 가장 힘없는 자들부터 피해를 보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가장 힘없는 채무자들일 것이다. 망하려 해도 망할 수 없는 사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헬조선.
출처: http://www.justicei.or.kr/528?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