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한 (미래정치센터 연구실장)
작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국회의원 지역선거구별 인구편차 3:1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현재까지 이를 둘러싼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논란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기존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로부터 파생하는 대량의 사표발생과 기형적 기득권을 강화하는 양당체제의 60년 장기존속, 유권자와 괴리된 국회의 정치행태 등 선거구 획정 문제는 선거제도 개혁과 연계되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선거구 획정, 선거제도 개혁의 정치적 기회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6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새누리당이 ‘모르쇠’로 일관함으로써 정치개혁의 핵심인 선거제도 논의는 단 한 발자국의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지금 국회는 ‘누구의 지역구가 남고, 누구의 지역구가 폐지되느냐’라는 개인적 이해관계만이 적나라하게 격돌하는 장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의 비례대표 무용론을 필두로 비례대표 1석을 제외한 지역구 전환이라는 사실상의 비례대표 폐지론,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위한 비례대표 축소론 등 마치 비례대표가 우리 정치의 절대악인양 선동정치에 열중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새누리당은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단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계산을 만천하에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가치와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를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은 새누리당에서 주장과 같이 비례대표를 줄여 지역구를 확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사이의 표의 등가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라는 것이다. 즉 국회의원 정수가 고정된다면, 현행 지역구 국회의원 정수 246명 내에서 지역선거구 인구편차를 3:1에서 2:1로 조정하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농어촌 지역대표성 보장’이라는 가치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2:1의 인구편차 내에서 지역선거구를 획정하라는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고 농어촌 지역대표성이 아닌 인구수만을 고려하여 지역선거구 기준을 정한다면, 국회의원 지역구의 인구편차는 1:1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문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가치와 의미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300명 정수 중 246명을 뽑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와 54명을 뽑는 비례대표제를 기계적으로 이어붙인 병립식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대량의 사표가 발생하여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게 된다. 13대 총선부터 19대 총선까지 매 선거마다 당선에 기여하지 못한 사표는 평균 1000만표 이상 발생했다. 현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가 얼마나 터무니 없이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례대표제는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대다수 국가들의 핵심 정치제도이다. 유럽의 대부분 정치선진국들은 권역별 완전비례대표제나 비례대표가 과반을 넘어서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에 비례한 의석보장)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 유권자의 투표와 그 가치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산술적 범위에서 정확하게 의회에 반영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는 핵심적인 사표 방지와 보완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적 가치와 의미을 지닌다. ① 계층, 직능 대표성의 반영으로 의회 전문성 향상 ②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회세력의 이해와 요구 대표 ③ 고질적인 지역주의 완화 ④ 군소정당의 의회 진입 활성화로 정당 간 정치경쟁을 확대하여 정치의 질을 높이고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 ⑤ 정당의 책임정치 실현 ⑥ 국민의 정치 무관심과 불신을 넘어 정치 효능감과 신뢰 강화 등에 기여한다.
따라서 비례대표제 무용론과 폐지론, 축소론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발상은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단 하나의 ‘정치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물론 최근에 학계, 전문가,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상관없이 제기되는 공천의 문제는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거대양당에서 국회의원 공천은 각 정당별 공천심사위원회를 빙자한 계파 지분 나누기의 다름 아니었다. 즉 밀실 공천이 관행화된 것이었다. 그래서 공천시기만 되면, 극심한 내분을 겪어야만 했다. 공천 후에 어김없이 ‘공천 학살’이라는 듣기 민망한 용어가 언론방송 매체를 장식하곤 했다.
각 당에서 지도부의 공천 기득권을 내려 놓으면, 국회의원 공천을 투명하게 진행할 묘수는 존재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선거의 상식을 따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다. 즉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지도부가 아니라 당원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여기에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를 일정부분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의 경우에도 지도부 공천권을 당원과 유권자가 가질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순위 명부를 당원과 유권자에게 개방하여 당선자 결정을 당원의 직접선거 50%와 유권자의 비례명부 후보에 대한 투표 50%를 반영하여 최종적으로 혼합형 비례명부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 당의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밀실 공천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많아지면, 많아 질수록 우리 정치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양당의 기득권에서 벗어나 유권자의 다양한 요구에 친화적인 다원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등 진보개혁세력의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보다 단호한 실천과 대응이 요구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487?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