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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정의연구소 칼럼] 정의당 3기, ‘조성주’가 남긴 것: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가능성’

정의당 3기, ‘조성주’가 남긴 것: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가능성’
- 정의당이 해답이 될 수 있는가

 

 

 

정미나(진보정의연구소 전문위원)

 

 

 

당 대표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 비록 결선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단연 ‘조성주’일 것이다. 2세대 진보정치를 내세우며 당 안팎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그 바람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과연 그 바람의 실체는 무엇일까. 얼핏 보면, 조성주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역시 출마선언문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청년유니온’은 세대별 노조라는 차이가 있을 뿐 기존의 노동운동이 해왔던 방식대로 ‘노조’를 결성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그가 쟁취해 낸 여러 가지 노동의 권리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이 해왔던 ‘투쟁’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던진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제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됐고, 그가 제시한 정책 대안 중 하나인 ‘고용보험’ 역시 마치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주목받았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했을까?

 

필자는 그 대답을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 그리고 이것을 성공적으로 제기했다는 것에서 찾는다. 성공적인 정치적 담론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이에 부합하는 정책처방이 유기적으로 담겨있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담론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정치적 자산이 담론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 조성주가 이번 선거에서 던진 화두는 바로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정치적 담론’이었고, 그가 일으킨 바람을 고려해보면, 이는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새로운 정치적 담론이었을까.


1. 새로운 문제의식, ‘노동운동 밖의 노동’: 비정규직을 넘어서 ‘불안정한 사람들’

 

‘노동운동 밖의 노동’, 이 자체가 새로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노동 운동이 조직노동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보다 열악한 처우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차별철폐, 나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까지 주장해 온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성주가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프레임을 조직노동과 대비되는 노동자들, 혹은 세대론과 결부시켜 ‘청년 세대’의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면,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문제제기이다. 차이가 있다면, 청년세대이면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 낸 ‘조성주’, 당사자가 제기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에 보다 신뢰할 수 있다는 정도, 즉, 인물에서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도 파급력을 보일만큼 진보정치가 정체돼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조성주의 바람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성주가 던진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프레임이 진보진영에, 나아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이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을 역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을 넘어섰다는 데에서 찾는다.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는 비단 조직노동을 대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조직노동과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고 나름의 정책대안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 대안들, 즉 비정규직 차폐철폐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든 최저임금 인상이든 결과적으로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투쟁’들이었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을 넘어서는 노동자 전반에게 필요한 ‘안정적인 삶’의 문제와 그에 맞는 대안을 전면으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특히, 청년세대의 노동현실에 비춰봤을 때, 이런 방식의 기존 문제의식과 대안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다. 기존 노동운동은 이 세대 청년들에게 ‘정규직’ 자체가 현실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을 넘어서 노동자 전반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을 외면해왔다.

 

젊은 세대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운 좋게 대기업 들어갔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으며, 그 마저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지어 좋은 기업을 다니는 선배들도 10년도 채 못 버티고 그만둔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어도 취업이 안 돼 알바를 전전하고, 운 좋게 좋은 기업에 들어갔어도 학자금 대출 갚고 나면 전셋집 하나 마련할 돈 없이 그만둔다. 어제의 공무원이 오늘은 녹즙배달 알바생이 되는, 어제의 정규직이 오늘의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점점 흔한 일이 되고 있다. 꿈의 직장에 ‘운 좋게’ 들어간 청년세대 정규직들도 이러한데, 대부분의 청년세대들은 어떨지 뻔하다. 청년실업률, 임금상승률, 평균근속년수, 청년저임금 실태, 결혼률, 출산률 등 각종 통계 지표들은, 심지어 정규직이 되더라도 이것이 삶의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불안에 떠는 청년 세대의 잔인한 현실을 냉정하게 ‘숫자’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조성주가 제기한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비단 청년 비정규직이 아니었다. 기존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공간에 있다고 느끼는 ‘모든 불안정한 우리 세대 사람들’이고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비정규직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들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리 보다 더 근본적으로 ‘안정적인 삶’이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이 더 이상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성주는 88만원 세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외치는 대신에, 이 시대의 노동현실에서 한 순간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함에 주목하고,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를 넘어 자신이 바로 이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 새롭게 다가온 이유일 것이다.

 

 

2. 새로운 처방, ‘고용보험’: ‘가능성’의 공간

 

만일 조성주가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대안으로 기존의 노동운동이 외면한 자들, 민주주의 밖에 있는 자들에게 ‘투쟁’을 요청했다면, 과연 그의 문제제기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을까? 조성주가 정책 대안으로 내세운 것 중, 고용보험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자신이 던진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정책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 개혁방안 자체는 새로운 정책대안은 아니다. 기존 진보진영에서도 고용보험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주가 말한 고용보험이 새롭게 해석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성주가 던진 새로운 문제의식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개별정책은 그 자체로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각각의 개별정책들이 하나의 큰 정치적 지향을 담은 문제의식과 결부돼 해석될 때, 이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각 개별정책들을 자신들의 삶의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개별정책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이를 아우르는 큰 비전, 그리고 개별정책들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담론을 제공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 조성주는 바로 그 해석의 틀을 제공했다.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을 통해, 그가 제시하는 개별정책들이 노동운동 밖에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동안의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치적 담론을 생산해 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성주가 주장한 고용보험은, 비단 실업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직장이 있든 없든 혹은 그 직장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든 직장인들의 적극적인 권리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고용보험 개혁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실업에 처할 까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실업을 두려워하지 않을 숨 쉴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에게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권리’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실업 그 자체가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잠시 이탈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아무 직장이나 ‘구걸’하지 않을 여유를 주는 정책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용보험뿐만 아니다. 연금문제에 관해서도 조성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과 결부시켜 보면, ‘기초연금’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현 세대 노인빈곤만을 위한 정책을 넘어서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즉, 고용이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직장인들에게 유리한 국민연금 강화방안보다는 기초연금이 보다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고용이력이 불안정해도, 이것과 상관없이 노후에 적어도 기본적인 삶의 모양새는 갖추고 살 수 있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될 때, 조금이나마 당장의 실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일까? 정규직 일자리, 임금인상, 비정규직의 차별철폐 등 노동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지위, 그리고 처우개선,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노동시장에서의 내 처지와 상관없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한 순간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이다. 노동시장에서의 내 처우가 개선되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장에서의 고용이력과 상관없는 사회안전망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야 투쟁이라도 할 수 있는 작은 기력나마 얻을 수 있다. 고용보험이나 몇몇 정책 대안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조성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사람들은 단순히 고용보험이라는 개별정책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그가 해결하고자 한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의 ‘권리 찾기’, 그 문제의식과 처방에 공감한 것이다.
 
 
3. 조성주, 그리고 정의당에게 남겨진 과제

 

조성주가 정의당에 남긴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이처럼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과 이에 적합한 정책대안으로서 사회안전망을 주장한 정치적 담론일 것이다. 이로써 향후 정의당에서 내놓는 개별 정책들이, 기존의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으로 삶의 불안정성을 해결해주는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비단 고용보험을 넘어서,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그 어떤 정책도 새롭게 써내려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성주는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비단 청년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연화 된 노동시장 속에서 ‘불안정한 사람’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시대에 맞는 정책대안을 새롭게 해석하고 제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제 정의당은 그 가능성의 공간에서, ‘삶의 불안정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대안들을 내놓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정책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문제의식이 확고해진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대안의 공간은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날 필요가 있다. 유연안정성이든 시간제 일자리든 우리는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위해 적어도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 여백이 모호하고 불안해보일지라도 이를 가능성의 공간이라 생각하고 열어둘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제2의 조성주, 제3의 조성주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주, 그리고 정의당에게 남겨진 과제는 바로 ‘노동운동 밖의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을 더 확고하게 하고, 정책적 가능성의 공간은 보다 확장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정의당이 이 시대 불안정한 사람들, 안정적인 삶을 바라는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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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442?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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